<멀리서 다가오는 단상> 계곡(溪谷)
<멀리서 다가오는 단상> 계곡(溪谷)
  • 성광일보
  • 승인 2020.06.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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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기/시인/칼럼리스트
김삼기
김삼기

전철 출입문 상단에 30개가 넘는 노선과 680여개 역들로 빼곡히 차 있는 수도권광역전철노선도가 한국인의 대단한 열정과 한국의 발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서울역과 청량리를 연결하는 매우 짧은 1호선이 우리나라 지하철의 최초이자 전부였었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니 감회가 새롭다.

육상교통 체증은 날로 심각해지고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다 보니, 지하철, 전철의 연장과 새로운 노선 확장이 날로 필요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의 광역전철이 거미줄처럼 형성된 것도 수도권에 거주하는 2,600만명(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반)의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니 그럴 만도 하다.

얼마 전 1호선 월계역(月溪驛)에서 6호선 월곡역(月谷驛)까지 이동하면서, 두 역명이 계곡(溪谷)의 계(溪)와 곡(谷)으로 나뉘어 명명된 이유가 궁금해서 전철노선도를 보고 수도권에서 계나 곡으로 끝나는 역을 찾아봤다. 계(溪)로 끝나는 역은 덕계(1), 석계(1,6), 상계(4), 중계(7), 하계(7)로 5개 역이 있었고, 곡(谷)으로 끝나는 역도 역곡(1), 월곡(6), 상월곡(6), 중곡(7), 발곡(의정부 경전철)역으로 5개 역이 있었다. 그리고 계나 곡으로 끝나는 수도권 전철 10개 역 중 부천 소재 역곡역을 제외한 9개 역이 도봉산과 수락산 자락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계곡(溪谷)은 산과 산 사이에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말하며, 여기서 계(溪)는 물이 흐르는 내(川)를 의미하고, 곡(谷)은 산과 산 사이에 V자나 U자로 파인 골짜기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월계(月溪)와 월곡(月谷)을 비교해 볼 때, 월계(月溪)는 시냇물이 흐르는 낮은 천이 있었던 곳이고, 월곡(月谷)은 꽤 큰 골짜기가 있었던 곳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지금은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가 7-8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오래 전에는 두 산이 한 지맥으로 이웃하면서 깊고 큰 골짜기를 이루고 있어, 도봉산과 수락산 계곡 아래 지역에 계나 곡이 들어간 지명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서울에는 도봉산과 수락산 외에 인왕산, 남산, 용마산 등이 있지만 이들 산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큰 계곡을 이루지 못 했기 때문에 그 산자락 아래에는 계나 곡이 들어간 지명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 같다.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의 계곡이 처음에는 깊은 계곡이었지만, 수많은 산사태와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넓은 계곡으로 형성되었고, 결국 도봉산과 수락산의 흙이 계곡 하류지역에 모여서 넓은 평야를 이루었을 것이다.

고전에서는 몸이 비어 있어 잡을 수 없는 존재를 신이라 했는데, 바로 노자는 도덕경에서 본래 꽉 차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어 있는 공간으로 변한 계곡을 가리켜 곡신(谷神)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골짜기를 지키는 신은 죽지 않는다는 '곡신불사(谷神不死)'를 주장하면서, 계곡처럼 비우고, 부드럽고 낮아져야 죽지 않고 오래 간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도봉산과 수락산의 사이가 비워지면서 낮아지고 낮아진 흙들이 모여 만들어낸 평야에 도시(도봉구, 노원구, 성북구)가 형성되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도봉구와 노원구와 성북구가 노자의 곡신불사처럼 비움과 낮음의 계곡정신(溪谷精神)을 지켜가면서,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르는 계곡처럼 오래오래 보전되는 도시가 되면 좋겠다.   

도봉산과 수락산이 동서에 위치하면서 한 형제의 모습을 보여주듯이, 앞으로 한반도의 통일문제도 대치국면의 남북 프레임보다 형제애가 깃들어 있는 동서 프레임에서 더 많은 해답을 찾아야 한다.

한편 도봉산과 수락산 계곡이 합류하여 형성된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는 하류지역에 위치한 성동구는 삼국시대 때부터 토지가 비옥하고 농경이 발달하여 평화롭기로 유명한 곳이다. 성동구가 계(溪)나 곡(谷)으로 끝나는 지명은 없지만, 도봉산과 수락산이라는 거대 산이 만들어낸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화합의 상징적인 곳임을 생각할 때, 성동구의 평화와 화합이라는 전통의 가치에서도 통일 대한민국을 만드는 해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도봉구와 노원구와 성북구에 모여 있는 계(溪)나 곡(谷)으로 끝나는 9개 역을 보면서, 그리고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는 성동구를 생각하면서 대한민국 통일의 비전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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