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6.25참전 유공자회 이철옥
<인터뷰> 6.25참전 유공자회 이철옥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0.06.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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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생, 내 고향은 장진호 바라보던 함경남도
어머니는 왜 나를 남쪽에 두셨을까? 평생 질문
 6.25참전 유공자회 이철옥

 

지난해 나는 청와대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초청 오찬', 6월 24일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해 주신 여러분께'라는 헌사가 높았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자유를 위해 싸운 세계인에게 우리는 자유와 번영을 선사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라 선언했습니다. 그날 나는 대통령의 오른편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대통령은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있었던 일을 있었던 대로 적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청와대로 초청받아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기념촬영을 했다.
지난해 청와대로 초청받아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기념촬영을 했다.

장진호 바라보던 함경남도서 태어나
대통령의 부모님은 1950년 12월 24일, 흥남철수의 마지막 날에 거제행 배에 올랐다 알고 있습니다. 2년 후인 1953년, 대통령은 태어났습니다. 저는 1934년, 함경남도생입니다. 한국군과 유엔군의 흥남철수를 위해 헌신적으로 방어전을 구축한 1950년 장진호 전투를 물론 아시겠지요? 저는 그 장진호 골짜기로 석양이 비껴드는 모습을 보며 자라났습니다. 

어릴 적 고향엔 석탄이 흔했습니다. 원산까지 이어진 소철 철로에 석탄을 두면 바짝 눌렸죠. 그걸 껌처럼 씹기도 했습니다. 집마다 전기도 들어왔습니다. 500촉 전구를 켰습니다. 장진장에서 감자 전분가루를 포대째 사와 전을 부치고, 국시(함흥냉면)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명태며 가자미, 고등어도 흔했습니다. 형들 누나들과 함께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아버지가 일군 땅의 주인이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주로 몰렸습니다. 집단체제가 되면서 재산을 몰수당하고, 소도 빼앗겼습니다. 황소는 다음날 새벽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소를 다시 신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여기서는 못 산다. 데려다 줄 테니 남으로 가거라.”
남으로 내려오는 친척 아주머니들을 따라 저도 내려왔습니다. 연천까지 경원선을 탔습니다. 한탄강은 경비병에게 사정을 해 겨우 건넜습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난간 그늘로 걸어라!" 경비병이 우리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전곡서 다시 붙잡혔습니다. 동네 노인들이 '보내주라!'고 우릴 도와주었습니다. 4월 한밤중, 아직 얼음이 덮힌 소요산 북쪽을 왼편으로 돌아 겨우 남쪽에 닿았습니다. 첫 마을은 동두천이었습니다. 

1947년 어머니가 삼팔선 뚫고 남으로 데려다 주었다
동두천서 처음 우리를 맞은 건 미군이었습니다. 옷을 벗기고, 온 몸에 하얀 가루를 뿌렸습니다. 살충제 디디티였습니다. 당시 남쪽은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전기로 모터를 돌리던 북한과 달리 남한은 전동기를 썼습니다. 소리도 크고, 검은 연기가 났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좋았습니다. 드디어 자유를 찾았으니까,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할 자유. 

어머니는 나를 강화에 데려다 주고 다시 북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직 북에는 형과 누나들이 있습니다. 모두 내려올 수는 없었습니다. 이후 나는 가족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1950년 강화도에서 전쟁을 맞았습니다. 그날 6월 25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캄캄하고 비가 올 듯한 검은 하늘에 불꽃이 일었습니다. 천둥소리가 났습니다. 그게 김포 문수산성으로 쏟아붇는 포탄인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당시 강화엔 다리도 없었습니다. 전쟁이 난 날 아침에 모든 배가 강화를 떴습니다. 우린 피난도 가지 못했습니다. 노란 완장을 두르고 민청의 좌익 청년들이 '피난을 가지 말라! 인민해방군이 온다!'고 선전을 했습니다. 퇴각을 하는 개성쪽 우리 군인들을, 진격해 오는 4열종대 인민군들을 차례로 강화서 맞았습니다. 

3개월쯤 뒤, 이번엔 북한군이 밀려나면서 우익계 청년들이 특공대를 조직해 강화도를 지켰습니다. 완장들과 청년들은 서로를 누나 언니 오빠로 불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고발과 폭행이 이어졌습니다. 맞았기 때문에 때렸고, 때리면서 점차로 증오가 심해져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36년의 비극보다,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이 서로를 증오했던 이 삼년이 내게는 더 큰 비극으로 다가왔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죽였던 6.25가 식민지보다 더 비극적
흥남철수가 한창일 때, 남쪽 인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진격해 오는 중공군들에게 쫓겨 배에 올랐습니다. 도착한 곳은 제주였습니다. 제주에서도 육지에서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좌익은 보리밭 안에서 돌담 안 군인과 경찰들에게 총을 쏘았습니다. 우익도 산으로 숨은 이들을 좌익으로 토끼몰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은 일상이었습니다. 집에는 어른 남자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아이어른으로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제주서 인천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군번도 계급도 없는 채로 헌병대 소속이 되었습니다. 거제 포로수용소로 가 업무도 맡았습니다. 그 안에서도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1953년초, 반공포로가 석방되면서 내 일도 끝났습니다. 나는 이제 정식 입대했습니다. 인천과 강경서 군사 기초훈련을 마쳤습니다. “할 말이 있다면 하고 가라!”고 신병의 배치를 맡았던 대령이 말했습니다. “배우질 못했으니까, 만약 내가 살아 돌아온다면, 살아갈 수 있도록, 그걸 배울 수 있는 부대로 가게해 달라!” 나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부산 병기창으로 가서 정비와 운전을 배웠습니다. 춘천으로 배치받았습니다. 세상에선 휴전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습니다.

지난 역사에서 배워야 미래 맞을 수 있다
유월 가까운데도 춘천엔 한기가 흘렀습니다. 방한복을 입을 정도로 추웠습니다. 배가 고팠기 때문일까?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습니다. 시신이 널려 있었습니다. 반은 해골이 되고, 반은 물에 잠긴 시신도 있었습니다. 환자들 있던 병원을 지붕 채 내려앉히고, 북한군과 중공군은 후퇴를 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시신을 수습해 불태웠습니다. 나는 그때, 우리는 그때, 참 겁도 없었습니다. 유골을 안고 다니다, 그걸 끼고 잠들곤 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한 없이 불쌍했으니까요. 나도 언제 그 신세가 될지 몰랐으니까요. 

군사분계선이 그어졌습니다. 전선에는 이제 완전히 적이 된 동포 형제들이 코앞에 있었습니다. 나는 김화로 철원으로 고성으로 수없이 차를 몰았습니다. 그 길다란 길처럼 포성 없는 전쟁도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물론 그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 어머니가 나를 남쪽에 두고 갔을까? 왜 나를 천애고아로 두셨을까? 그건 내 평생의 질문이었습니다. 평범한 시골 할머니였지만, 어머니를 난 언제나 믿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옳았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피와 땀을 바치며 배운 것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합니다. 내 삶을 걸고, 나는 그 답이 평화와 번영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자유를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또 힘을 잃지 말자는 다짐에 도달합니다. 

성동구 응봉동 자락서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한 노인이 인사드립니다. 현충일 아침에 자유와 평화를 위해 죽어간 모든 이들을 기억합니다. 오는 여름 늘 모두 강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0년 6월 6일 현충일 아침에 6.25참전 유공자 이철옥

원동업
원동업

<정리=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3bigpictuee@naver.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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