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다가오는 단상> 극중(極中)
<멀리서 다가오는 단상> 극중(極中)
  • 성광일보
  • 승인 2020.06.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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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기/
시인/칼럼리스트
김삼기
김삼기

좌파는 정치적으로 혁신적인 정파를, 우파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정파를 뜻한다. 
좌파(좌익)와 우파(우익)라는 말이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혁명 때부터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볼 때,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자코뱅당이 왼쪽에 앉고,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지롱드당이 오른쪽에 앉은 것이 그 기원이다. 

그 후 영국에서도 자유당이 왼쪽에 앉고, 보수당이 오른쪽에 앉음으로 '진보^왼쪽', '보수^오른쪽'이라는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자코뱅당은 혁명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뜻에서 반란을 상징하는 붉은기를 사용하고, 지롱드당은 이와 반대로 청색기를 사용하면서 붉은색은 좌파를, 파란색은 우파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좌파인 더불어민주당은 파란색을, 우파인 미래통합당은 붉은 색을 시용하고 있어, 외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보수 우파로, 미래통합당을 진보 좌파로 이해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정당은 좌파와 우파 그리고 중도파 정도로 구분되어 있지만, 좌파 정당 내의 극좌(極左, far-left)와 우파 정당 내의 극우(極右, far-right)도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극좌와 극우는 좌파나 우파에 비해 상대 진영을 무조건 비판하는 경향이 있고, 사상도 지나치게 편향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극좌와 극우는 사상의 극단성이 여타 다른 분파들에 비해 심하며, 폭력적 행동이 동반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극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같은 혁명가가 있으며, 극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돌프 히틀러'가 있다.
극좌든 극우든 '극(極)'이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폭력과 전체주의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극좌나 극우가 아닌 극중(極中)이라는 정치용어가 자주 등장하면서 우리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극중은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가든스'가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극중주의(極中主義)' 시대가 도래했다고 1994년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극중주의는 좌파와 우파를 뛰어넘어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합리적인 정치이념을 표방하는 대화정치와 생활정치가 그 핵심이다.
'앤서니 가든스'는 좌파와 우파를 뛰어 넘는 가치를 중도라 하지 않고 극중으로 표현한 점은 아마도 극좌나 극우를 무시하고 중도를 최고의 가치로 올려놓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앤서니 가든스'의 영향을 받아 1997년 영국 총선거에서 승리한 '블레어' 전 총리와, 사회당 출신이지만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프랑스의 '마크롱' 현 대통령이 극중주의를 추구하는 대표적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한국에서도 2017년 대선에서 패배한 모 후보가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당에 대항하여 가치 중심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강조라면서, 바로 “그 가치가 극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 대선 후보는 극중주의는 좌파나 우파의 이념에 경도(기울어 넘어짐)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에 치열하게 매진하는 것, 즉 중도에 대한 극도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언급되고 있는 극중(極中)은 26년 전 '앤서니 가든스'가 언급한 합리적인 극중이나 3년 전 모 대선 후보가 언급한 치열하고 극도의 신념이 깃든 극중과는 다른 것 같다.

바로 최근 등장하고 있는 극중은 좌파나 우파의 중간 영역인 중도를 지키고 중도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극좌나 극우처럼 강력한 사상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폭력도 동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좌와 극우가 외면당한지 꽤 오래 됐고, 극중도 3년 전 이미 우리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극중이라는 정치용어가 다시 언급되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으론 우리나라 최근 정치 환경이 대선과 총선에서 보수(우파)가 무너지고 진보(좌파) 세력이 강해지자, 우파가 동력을 잃었다고 생각한 중도파가 극중이라는 새로운 세력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좌파-중도-우파'나 '극좌-극중-극우'의 도식관계를 보더라도, 중도는 분명 존재감이 있지만, 극중은 우리 사회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될 나쁜 중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국민은 접두사 극(極)이 '정도가 심한'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명사 극(極) 역시 '어떤 정도가 더할 수 없을 만큼 막다른 지경'의 뜻을 가지고 있어, 양극과 음극, 남극과 북극이라는 용어는 있어도 중극(中極)이라는 용어는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용어 차원에서도 극중(極中)은 존재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정치용어가 확실하다.

더 이상 우리 정치사에서 극좌(極左)나 극우(極右)처럼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극중(極中) 세력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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