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의 노포> 금호동 금남시장 제일기름집
<성동의 노포> 금호동 금남시장 제일기름집
  • 성광일보
  • 승인 2020.06.2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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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 양심 기름을 판 금호동 깨장사

<금호동 출신이 추천하는 노포를 만나다>
지인 중에 금호동 출신이 있다. 지성과 미모가 뛰어나다. 하지만 서울깍쟁이다.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좀 까칠하다. 그런 사람에게 금호동 노포를 알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곧바로 답이 왔다. 세 곳이었다. '갑자기 저도 기름집 아저씨가 보고 싶네요. 찾아가 봐야겠어요.' 끝에 이런 글귀를 덧붙여 놨었다. 서울깍쟁이를 녹여버린 곳은 기름집이었다. 거기 뭔가 있을 거야. 
6월 16일 저녁 무렵, 금남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 들어서니 재래시장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가게는 금남시장 4번길에 있었다. 뽀글파마, 흰 마스크, 검정 앞치마를 두른 분이 가게에 계셨다. 황숙자(76세) 사장님이다. 가게 내부 분위기는 시장 골목과 다르지 않았다. 투박하고 소박한 모습들이 푸근하게 다가왔다. 

<금호동 깨장사, 기름집과 인연 70년>
“아버지는 기름을 짜고 나는 깨를 털었어요. 엄마는 엄마대로 기름집 일로 바쁘니까.”
황 여사님의 초등학교 시절 얘기다. 대전 근교의 시골에서 자랐다. 나이가 차서 시집을 왔다. 신랑이 돈을 벌었다. 서른이 되자 돈이 끊어졌다. 노점을 시작했다. 금남시장 도로변 유명한약국 앞이다. 
마흔에 기름집을 열었다. '배운 도둑질'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가게보다 안쪽이었다. 이때부터 신랑과 같이 일했다. 
말씀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황 여사의 경험과 기술을 믿고 기름집을 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사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말은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 

<기름이 아니라 양심을 파는 가게>
깨장사 시절 얘기 한 토막.
노점에서 깨를 팔았다. 시장 아주머니가 물었다. 
“새댁아, 그거 팔아서 얼마나 남아?”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단다. 그랬더니 장갑을 팔아보라고 하더란다. 10원씩 남더란다. 황 여사는 '깨' 박사였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문을 남기지 못했을까. 어떻게 팔았는지 짐작이 갔다.
기름집을 36년 정도 했다.
그런데도 황 사장님네 기름은 별로 고소하지 않단다. 
“잘 씻은 깨로 기름을 짜서 그래요”
씻어서 기름을 짜면 덜 고소하단다. 그래서 기름집들은 씻지 않는단다. 일이 편하고 손님들까지 고소한 걸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여사는 지금도 그렇게 하지 못한단다.
“안산, 인천, 홍제동 같은 데서도 와요. 우리 집 걸 먹다 이사 간 사람들이에요.”
덜 고소하지만 먹어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는 단골들이 멀리서 온단다. 전화 주문받아서 택배로 보내기도 하고. 그게 보람이라고.
이곳에서 오래 살았던 이들은 안다고 한다. '금호동 깨장사' 황 여사를.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어요>
2002년에 남편이 세상을 떴다. 그 후로 여사 혼자서 기름집을 꾸려 나왔다. 등산 한번 가지 못했다. 오로지 기름집에 매달린 인생 그것이었다. 한때는 번듯한 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하에서 산다.
누가 보더라도 황 여사의 삶은 신선하다. 그런데도 이상했다. 여사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아침 예배 가서 헌금 안내도 하고, 집에서 하나님 방송도 듣고 …….”
그랬다. 황 여사가 발견한 행복은 신앙생활과 더불어 양심이 이끄는 대로 참기름, 들기름을 짜서 손님에게 드리는 일 그것이었다. 
당신은 혹시 불행하다고 느끼시나요? 그렇다면 금남시장 4번길 제일기름집에 가서 아무거나 하나 사면서(잡화도 있음) 여사님과 얘기를 나눠보세요. 
 ☆   ☆  ☆   ☆
나에게 기름집을 알려준 서울깍쟁이에게 뭐라고 하지. 기름집 아저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사진 찍을 때마다 이렇게 기름병을 들고 찍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보다 기름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천생 기름집 사장님이셨다. 기름 짜는 기계를 작년에 들여놨다. 노후를 생각해서 5년짜리 적금을 붓는데 끝낼 수 있을지 염려된다고. 그것 말고는 걱정이라곤 없다고.)
◆제일기름집 (02) 2235-6439  
성동구 독서당로 297-12 금남시장 4-2구역

                                                      <서성원 작가> it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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