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정신인지저하증 검사를 받다
<수필> 정신인지저하증 검사를 받다
  • 이기성 기자
  • 승인 2020.07.14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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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 / 성동문인협회 이사
홍성모
홍성모

일전에 엽서 한 통을 받았다. 00 종합건강센터에서 보낸 것인데 그 내용을 보면 제목: 어르신 기억력(치매)무료검진안내문 내용: 올해 기억력 검진을 안 받으신 분은 치매예방이 중요한 나이이므로 꼭 검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대상: 70세 이상 필수(60세 이상 검진가능) 준비물: 신분증. 그리고 시간과 장소를 명기한 안내문이었다. 

원래 공공기관에서 오는 우편물이란 반가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이나 돈 내라는 고지서일 경우가 많다. 그러니 비록 엽서라도 냉큼 읽기보다는 다른 우편물과 함께 섞어 마지막에 보는 것이 보통인데, 역시 기분이 영 아니었다. 재작년엔가의 엽서도 '치매'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어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는데, 이번에는 좀 찬찬히 읽어 보고 나서 나도 기억력(치매) 검진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금방 들은 내용이나, 잘 보관해 둔다고 한 서류 봉투 등을 찾지 못해 온 책상 서랍을 들쑤셔놓는 일이 생기니, 치매인가 건망증이 심한 탓인가 의심하게 됐기 때문이다.

치매란 후천적으로 병이 들어 바보가 된다는 말과 다름없다. 늙으면 노망(老妄)이 들어 실없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癡-병들병 부수 안에 의심할 疑(의) 자와 사람이 기저귀를 차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어리석을 매자를 쓴다>
그러나 이 말은 적절하지 못한 표현임을 지인의 치매 환자를 접하고 있는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낱말을 만들어 쓰고 있는 중국을 제외하고 일본은 2000년대부터 '인지증'으로, 대만은 '실지증'으로 사용한다고. 

우리나라도 때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18대 국회에서 '정신인지저하증'과 '정신인지장애증'으로 논의하던 중 탄핵정국으로 일단 보류돼 이번 19대 국회에서는 둘 중 하나로 선택할 것이 예상된다. 

같은 말과 뜻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마구 사용되던 단어 중에 '간질'은 '뇌전증'으로, '정신분열증'은 '조현병'으로 명칭을 바꾼 후 의사는 물론 주위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단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도보로 00종합건강센터로 갔다. 입구에 들어서니 3층까지 엘리베이터나 계단으로 오르게 되어 있었다. 아직까지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잘 앉지 않는 터라 계단으로 가기로 하고, 첫 계단에 발을 디디니 '도'소리가 울린다. 어린이나 어르신들을 위해 멜로디로 만들어진 계단이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검사실로 들어갔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서류작성을 지켜보고 있으니 검사의 취지와 방법을 얘기해 준다. 동, 주소, 번지와 생년월일 등을 묻고 나서 첫 질문이 검사실의 층수를 묻는다. 아마 내가 엘리베이터를 탔으면 기억을 못 했을 뻔했다. 다행히 계단으로 '도레미파솔라시도' 멜로디와 함께 올랐으니 확실히 대답했다. 다음은 숫자 빼기였다. 100에서 7을 빼면 93, 다시 7을 빼면 86, 79, 72, 65. 그리고는 단어 (사과, 모자, 바나나) 3개를 기억하게 하고는 오늘이 몇 월, 며칠이냐, 요일은, 질문을 했다. 

평소 나는 달력과 자주 씨름을 해서, 월중 계획이나 병원 예약, 모임 등을 표시하고 실행 여부를 일지에 기록한다. 
오늘도 검사를 받으러 갈 예정이라 잘 알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억해 둔 3개의 단어를 말하게 한다. 2개의 단어는 금방 생각이 나기에 대답 하고, 1개는 좀 뜸을 들여 생각해 냈다. 

주의력과 집중력을 검사하는 신경심리 검사의 사례라고 든다. 
다음은 5각형을 그리라고 볼펜과 종이를 내 준다. 인지기능과 시(視) 공간 감각 평가에 적용하는데, Bourke라는 분이 1998년 뇌졸중 환자를 진단하는데 유용하다 하여 척도화한 것이란다. 

평가는 2개의 5각형을 그리되 다르게, 각도도 다르게, 하나는 4각형을 겹치게 그리되 겹치지 않으면 초기 치매 단계로 여긴다.
나는 1개만 그리게 하여 나름대로 5각형을 잘 그리고 마칠 수 있었다. 25점 이상이면 정상이고 만점은 30점이란다. 정상이라는 판정과 함께 정신인지저하증과 건망증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대체로 건망증은 큰일보다는 작은, 일부분을 잊거나, 귀띔을 해 주면 금방 알아채지만, 정신인지저하증이나 장애증은 큰일이나 작은 일도 자체를 모두 잊고, 귀띔해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기억력의 문제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끝내면서 관련 책자와 유인물과 함께 선물을 하나 쥐여준다. 손아귀에 들어가는 작고 노란색의 고무 공이다.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손아귀에서 놓지 말란다.

돌아오면서 아직은 내 기억력이 떨어지지만, 나이에 비해 많이 상(傷)하지는 않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암, 치매 같은 무서운 질병에 대비하여 늘 건강에 유념하면서 지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오복(五福)하면 수(壽), 복(福),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이 다섯 가지를 든다. 
치아의 건강을 오복에 하나로 포함하자는 사람도 있지만 강녕의 의미 속에 들어간다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고종명이란 제 명(命)대로 고통 없이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이니 가장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잔병치레야 하겠지만 큰 병 없이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제일의 부자인 모 그룹의 회장은 3년간을 심근경색으로 병원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도 고종명의 오복은 못 갖고 태어나신 모양이다. 

난 심심풀이로 매일 신문에 게재되는 오늘의 운세(運勢)를 본다. 그런데 요즘은 잘 안 본다. 내 나이부터 일부 신문에는 실리지 않는다. 이젠 더는 오늘의 운세를 안 봐도 다 좋다는 말인지, 아니면 죽을 날 멀지 않은 이가 운세를 봐서 무엇하냐는 뜻인지, 지면이 부족해 못 싣는 건지 원,  공연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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