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쓰다> 과거에서 온 편지
<청년, 쓰다> 과거에서 온 편지
  • 성광일보
  • 승인 2020.07.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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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 문화기획자
leesang3002@gmail.com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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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작가가 타자기로 당신의 초상화를 써드립니다.”
무엇이 내 마음을 흔들었을까?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 평소의 나였으면 신청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였는지 이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글로 쓰는 초상화' 프로그램에 직접 신청을 하고 나는 거리작가를 만나기 위해 인사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타자기로 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초상화를 선물 받은 날. 나는 작은 용기를 낸 스물아홉의 청년이었다. 

사실 그날 만난 거리작가들은 초면이 아니었다. 그들을 처음 만난 건 혜화동 콘텐츠코리아랩에서 열렸던 '아이디어 융합공방'이라는 창업 프로그램이었고, 우리는 아이디어 융합공방 참가자로 어색하게 먼저 인사 나눈 사이였다. 거리작가 팀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거리로 나간다”고 했다. 어쩌면 스물아홉의 청년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그들을 찾아 갔을지 모르는 일이다. 

2015년 3월 21일. 인사동의 어느 가게에서 거리작가를 만나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30분 남짓의 시간이었고, 거리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진솔하게 답하기 위해 온전히 나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 가게에서 타자기로 A4 종이에 빼곡히 채워진 글 초상화를 받았다.

“상국씨가 '글로 쓰는 초상화'에 신청하셨을 때, 살짝 놀랐습니다. 그 동안 봐왔던 상국씨의 모습은 조금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면이 있어 보였거든요. 그런데도 저희 행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중략)…

“10년 후 자신의 모습이 컨텐츠를 만들고, 사회를 따뜻하게 하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10년 후에 일이 잘 되어 있을 수도 잘 안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냥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분명 삶을 이롭게 하는 방법인 거 같습니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30분 동안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고마운 시간이었다. 그것만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럼에도 실제 글로 쓴 초상화를 받았을 때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지낸 나란 사람을 타인의 시선에서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무엇을 좋아하세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10년 후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거리작가가 나에게 던진 이런 질문들이 당시 눈앞에 펼쳐진 삶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여전히 나는 방황의 시간을 되풀이 했고, 내가 선택한 길이 올바른 길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디어 융합공방'에서 도전했던 '방과 후 홀로 소외되어 있는 아이들을 위한 소셜 교육 플랫폼'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고, 현실을 바라보니 아무것도 손에 넣은 것 없이 불안해하는 곧 서른의 청년 백수만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부족한 역량은 인정하되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글쓰기를 일로 시작했고, 우연한 기회에 대학의 구성원이 되어 새롭게 주어진 역할과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작년에는 나의 배움을 기록한 독립 출판 책이 세상에 나왔고, 그로 인해 감사하게 또 다른 배움의 기회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2020년 지금 바라본 '글로 쓰는 초상화'는 현재의 시점으로 읽는 과거에서 온 편지다. 과거에 타인이 써 준 글이 현재의 인생에 특별한 이유는 미래의 삶을 더 이롭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스물아홉의 청년은 미숙하고 결점도 많았다. 스물아홉의 청년이 지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지난 세월동안 나의 글에 영향을 끼쳤던 여러 친구들과 인생의 어른이신 선생님들 덕분이다. 때로는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말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주인공 청년들이 누군가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서 써 보낸 편지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다른 등장인물들의 서로 인생에 힘이 되어 주듯, 현실 속 현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청년과 어른이 커뮤니티 내에서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청년, 편지로 어른을 만나다> 프로젝트는 이렇게 기획되었다.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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