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만나는 곳
<수필>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만나는 곳
  • 이기성 기자
  • 승인 2020.07.29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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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숙 / 광진문인협회 회원
전해숙 / 작가
전해숙 / 작가
·2016년 한국수필 등단
·참 좋은문학회 편지마을 회원
·광진문인협회 회원

집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거리에 나서니 폭염에 오가는 사람마다 축 쳐져 인상을 찌푸린다. 얼른 전철을 타니 한결 살 것 같단 생각이 드는 순간 금방 강변역에 도착이란다. 아쉬운 마음을 떨치지 못하며 전철에서 내린다. 동서울터미널을 내려다보는 순간 줄지어선 수 십대의 버스들이 내뿜는 열기가 하늘의 태양만큼이나 숨막힐 듯하다. 정말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미련이 담벼락을 뚫는다.'더니 가까운 거리인데 택시를 타고 오면 좋았을 것을….

테크노마트에 오려면 2호선 강변역에 내려 지하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된다. 더워 못살겠다며 아침부터 계속 전화하는 어머니께 가져다 드릴 선풍기를 사기 위해 오늘도 강변역에 내려 이곳엘 오게 되었다.

강변역은 한강 제방을 쌓을 때 함께 조성된 역사(驛舍)이다. 1980년 10월에 개통됐는데, 한강변에 있으니 '강변역'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바로 앞에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이 있어 사람들은 '동서울터미널역'이라고도 한다.

중요한 쇼핑을 할 때면 테크노마트에 가기위해 강변역을 자주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워낙 많은 사람들이 동서울터미널에 가기 위해 강변역을 이용해서인지 지인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때로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부딪히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을 보고서도 아는 척도 안 하고 지나갔다고 야단치며 서운해 하는 언니도 있다.

어느 해인가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중년 남자가 양손에 가방을 들고 전철에서 같이 내린다. '누구지? 많이 본 사람인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만일 저분이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저 분을 못 알아보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궁금하면 참지를 못하는 성격이 나도 모르게 그 양반을 빤히 쳐다본 모양이다. 그분이 민망했는지 웃으며 하는 말이“저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에요.”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 전원일기 응삼이!”하며 놀랐다. 

고향인 강원도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왔다면서 자신의 본명은 '박윤배'라며 총총히 계단을 내려간다. 뒷모습을 내려다보며 무안해서 나 혼자 한참 웃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아침에는 모임에 가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별로 친하지않던 노래교실 언니가 아는 척을 했다. 정말 그녀는 부딪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기획부동산을 다니는지 볼 때마다 사무실에 한 번 놀러오라며 재촉을 했고 막무가내로 투자 한 번하라며 권유했다. 권유가 아니라 강요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피해 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또 언젠가는 정말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헛헛한 웃음이 나온다.
그날도 역시 테크노마트에 가기 위해 전철에서 내리는 중 낯선 남자가 아는 척을 한다. 옛 동창을 만났다. 정말 오래 전의 친구인데 나를 알아본 것이다. 마음이 급해 계속 걷는데 졸졸 따라오며 잠깐 얘기 좀 하면 안 되냐고 해 가까운 곳에 들어갔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는데 학교 다닐 때 나를 좋아했다는 둥, 나를 만나기 위해 십 년 가까이 친구들을 통해 수소문 했다는 둥 귓가에 맴도는 듯한 소리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접대성으로 들어주고 맞받아주고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돼서 일어서자고 했다. 결국 그 달에 있던 동창회에 가지 않았다. 계속 빠질 수 없어 나가게 되면서는 서로의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되어 나도 그 친구도 편안해졌다. 

또 어느 때 인가는 잠시 잠깐 몸담았던 다단계의 고수와 부딪혔는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며, 잠깐 얘기 좀 하자며 놓아주지를 않아 한참이나 애를 먹은 적도 있다. 그 후로 강변역에 가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걸음을 빨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녀는 지금도 가끔 뜬금없는 문자를 보내 나를 놀라게 한다.

이렇듯 강변역에서는 단 1%의 안면만 있어도 반가워하는 사람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만날 수 있고, 그 모두가 반가운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상대를 어렵고 불편하게 생각하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일테니 이젠 가능하면 맘 편하게 대하려 한다.
오늘은 그곳에서 또 누구를 만나게 될지 기대 아닌 기대감으로 강변역을 향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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