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항아리
[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항아리
  • 성광일보
  • 승인 2020.08.1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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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杉基 / 칼럼리스트
김삼기
김삼기

어렸을 때. 항아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를 보면서 모자 쓰고 배가 나온 어른들의 모습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불룩 나온 그릇의 하나로, 특히 목 부분이 넓고 아래가 좁으며 배가 몹시 부른 항아리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과 달리 먹을 게 부족했던 농경사회에서는 배가 나왔다는 자체가 부의 상징이자 풍성함의 상징이었기에 곡식이나 음식을 담아 저장하는 항아리에도 부와 풍성함의 의미를 담았던 것 같다.

국가마다 지역마다 항아리의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우리나라 항아리는 대부분 원형으로, 배 부분의 지름이 가장 크고, 다음으로 목 부분 그리고 바닥 부분의 지름이 가장 작은 편이다.

어제 저녁 뒷베란다 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간장을 가득 담아둔 항아리를 열어봤더니, 항아리 안의 간장이 1/3만 남아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항아리 높이 1/3쯤 되는 항아리 벽에 미세한 금이 나 있었고, 그래서 그 금이 난 곳 위의 간장이 다 샜던 것이다..

나는 바닥에 금이 났다면 간장이 다 빠져나갔을 텐데, 1/3이라도 남은 게 다행이라 생각하고 남은 간장을 다른 그릇에 옮겼다.

할머니가 시골장에서 항아리를 사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항아리에 구멍이 있나 없나를 살펴보기 위해 항아리를 땅에 엎고 볏짚에 불을 지펴 연기로 점검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사람도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존감을 받쳐주는 가장 기본이 되는 가치가 있는데, 그 가치가 무너지면, 항아리 바닥에 구멍이 나, 간장이 다 새듯이 그 사람 자체도 다 망가지고 말 것이다.

또한 어제 아파트 뒷베란다의 항아리처럼 1/3쯤 높이에 미세한 구멍이 나면 위에 있는 2/3 간장이 다 빠져나가듯이, 우리에게 정체성이나 자존감을 받쳐주는 가치 다음으로 중요한 가치들이 무너지면, 역시 우리 삶의 2/3라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9/10쯤 높이에 있는 사소한 가치 정도는 그 가치가 무너진다 해도 1/10만 잃어버리게 때문에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제일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정체성이나 자존감의 가치는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정체성이나 자존감의 가치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항아리의 밑바닥의 정체성의 가치를 돈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는 돈을 잃으면 인생을 다 포기하게 될 것이고, 명예나 권력을 정체성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가 명예나 권력을 잃으면 인생 전체를 포기하고 말 것이다.

내 인생의 항아리 밑바닥에 어떤 가치를 가지냐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절대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자신의 인생 항아리 밑바닥에 두어야 한다. 

[단상]
나 자신의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점검해보는 하루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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