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의 노포> 간판 없는 갈비탕집
<성동의 노포> 간판 없는 갈비탕집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0.08.13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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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이쁜 여자가 갈비탕을 배우러 왔더라고!”
40년 갈비탕 끓여온 마장동 금호식당 현경엄마
주인장 현경 엄마는 고기는“마장동은 어디서나 대도 된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주인장 현경 엄마는 고기는“마장동은 어디서나 대도 된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칼국수와 갈비탕은 겨울에 낸다. 여름엔 콩국수와 갈비탕을 낸다. 메뉴가 딱 세 개인 이 집의 주력메뉴는 그러니 갈비탕이다. 

홀에는 네 명이 앉으면 좁을 탁자가 둘 뿐이고, 방에도 많지 않게 앉는 탁자가 들었다. 
맥주 소주도 냉장고에 보이지만, 메뉴판엔 없다. 음료는 결명자차가 먼저 나온다. 아주머니는 “물은 싱거워서”라신다. 

갈비탕을 내오기 전에 다대기와 매운 간장고추피클, 김치와 깎두기가 세팅된다. 후추는 이미 탁자에 놓여있다. 파랗고 하얀 네모 격자무늬 비닐보 위에 스텐(리스) 재질의 그릇에 담긴 갈비탕과 공기밥이 놓였다. 송송 썬 파가 가득 갈비탕에 떴다. 
마장동 청계천박물관 뒤편, 간판 없는 갈비탕집의 풍경이다. 

칼콩갈 문이 쉬임 없이 열리고 닫혔다

고깃국은 맑고 뜨겁다. 순전히 고기와 뼈에서만 우러났을 게 분명하다. 당면사리가 넉넉하고, 고기는 박하지 않게 들어있다. 

냄새 없이 깔끔한 이 집의 고기는 어떤 설렁탕집 마른 고기도 아니고, 어느 감자탕집 푸석한 고기도 아니다. 보기에 색이 발갛게 먹음직하고, 부드럽고 적당히 씹힌다. 

매운 고추짱아치와 고기를 곁들여 한 입 넣고, 김치를 밥에 얹어 쌀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든든해진다. 이밥에 고깃국 아닌가. 무엇이든 해낼 수 있겠다는 평온한 온기가 이미 몸에 충전돼 있다. 늦은 점심밥을 먹는 곁에서 주인장과 그녀의 젊은 직원(물으니 조카딸)이 소박한 밥 -가져온 잡채와 백반- 을 먹고 있었다. 

= 식사로 갈비탕을 드시는 적도 있으세요?

“나는 안 먹어요. 물에 말아 먹어요. 벌써 질려 갈비탕 이야기를 하면. 벌써 40년을 했으니까. 아이구~.”
진짜 식당 주인들은 그렇게 먹더군. 물에 만 밥에 된장 찍은 고추. 반면에 조카딸은 거의 매일, 4년째 갈비탕을 기꺼이 맛있게 먹고 있단다. 그 갈비탕 만드는 법이야 나도 좀 알지.

= 갈비탕은 일단 찬물에서 핏물을 오래 빼고, 처음엔 센 불로 끓이고, 다음 약한 불로 우리는 거죠? 

“끓는 물에다가 얼은 걸 넣어. 그래서 펄펄 끓여서 아주 진짜 그러면 물이 말도 못하게 나와. 그럼 그걸 냅다 다 버리고, 고기를 박박 보리쌀 씻듯이 씻어. 씻어갖고 그걸 다시 물에 끓여가지고, 고기는 건져서 다라 같은데 넣어서 다시다, 미원, 소금 꿀렁꿀렁해서 자루에다가 넣고 묶어 놔. 간을 많이는 안 해. 그리고 물을 끓여 다시 고와. 별짓을 다 해요. 그때서부터 네다섯 시간을 끓여야 돼. 네 시부터 하면 아홉시면 먹어요.”

= 아니 막 비결을 가르쳐 주시네?

“채소도 넣어요. 무하고 다마네기하고 생강….”

조카가 거든다.
“나는 다 가르쳐 줘요. 그거 배워서 나가서 식당 차린 사람도 많아요. 나는 그걸 하다보니까 배웠지만. 일본서도 와 배워 갔어요. 이쁜 여자들이, 날씬한 여자들이 계속 오더라고. 그런가보다 했지. 한가할 때, 당신마냥 나한테 물어봐. 일본에서 식당을 하는데. 갈비탕을 배울 수 있느냐고. 일본은 갈비탕을 하는 셰프가 없대. 나는 장냥으로 '할라면 4시에 오라'고 했지. 그랬더니 새까만 그랜저를 끌고, 새벽에 왔어. 배울라면 들어와서 배우라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택배원 한 사람, 동네를 들른 젊은 연인 둘, 근처서 정육집 아저씨, 돈을 서로 내겠다고 다투는 중년 남자 둘…, 그렇게 쉼없이 문이 열리고 닫혔다. 

넉넉히 내어주는 마음, 아들도 손녀도 닮았다

“근데 갈비가 끓으면 할 일이 없잖아. 일을 할 걸 달래. 그래 그럼 파나 썰으라고. 그래서 봤더니 칼 써는 게 기가 막히더라고. 

밥도 안 먹고 갔는데, 가고나서 보니까 봉투가 하나 있더라고. 돈이 삼십만 원 들었어. 나중에 전화가 왔어. 그 식대로 했더니 진짜 잘 된다고. 그러니 일본에 꼭 오시라고. 근데 이걸 하는데 내가 어딜 가? 그래 연락처도 안 적어놨어.”

고기 대는 집을 가르쳐 달라고 한 이도 있다. 그때 주인장의 대답은 이러했다.
“마장동은 어디서나 대도 된다고.”

주인장 현경 엄마는 한 10여년을 한 곳서 댔었다. 외상도 없고, 그날그날 현찰로 줬다. 한우는 비싸고 육우 젖소를 쓴다. 

“고기장사가 나한테, 이 고기로 이런 맛을 내는 게 신기해요?”그랬단다. “깨끗하게 씻어라!”집세 안 나가고, 직원에게 인건비를 주고…, 나가는 돈이 없어 단돈 칠천 원을 받는다.

“난 몇십 년을 했어도, 딱 그 솥. 딱 그 만큼만 한다고. 그러니 맛이 변하지 않죠. 이제는 나도 팔십이 넘었거든요.”

이곳은 현경엄마 자신의 집이다. 처음 식당을 낼 때, 청계천이 복개도 되지 않았던 때였다. 하꼬방이 즐비했다. 그녀는 시내 신세계백화점 뒤 중앙우체국 직원이었다. 남편은 고등학교 선생님. 도도한 여인이었다. 남편이 가신 뒤, 복직을 할까 했지만,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하려니 그네들 '꼴이 보기 싫어' 접었다. 그때 옆 여인이 제안했다. '자신이 모든 걸 할 테니, 함께 식당을 하자'고. 그렇게 15년을 함께 했다. 그녀도 황망히 떠나고 뒤를 이었다. 새 이름을 지어야 할 텐데…. 

“동네에 강원도 도사가 있었어요. 어떤 이름이 좋을까 물었더니, 금호식당으로 하래. 금호타이어도 있고, 금호가 돈도 많이 벌었어. 그게 좋은 이름이야. 그래 그렇게 시작한 거지.”

식당에선 한때 삼계탕도 했다. 한 솥에 열다섯 마리씩 넣고 고왔다. 손님이 와서 주문을 하면, 끓이던 솥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가끔 아들이 친구를 데려와 닭들을 건져가, 솥은 마당깊은 집처럼 푹 꺼져있곤 했다. 손녀는 영화를 찍었고, 지금은 예술의 전당 어디서 일한단다. 

천명쯤 지원한 영화제서 스무 손가락 안에 들었던 손녀 황유정은 그 전주영화제 상영회에 온 사람들에게 한턱씩 쐈다. “이 표를 갖고 마장동에 가면, 우리 할머니가 갈비탕 한 그릇씩 줄 거예요.”마구마구 주는 게 낡아가는 이 집 할머니가 물려준 전통인가 보다.

“이 집이 낡았어요. 한 오십 년 됐으니까 그렇지. 사람 운기가 있으니까 버티지, 나만 저기하면, 무너진대.”

과거 금호식당이었던 여기 '칼콩갈'서 열두 시간, 나머지 열두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내 집'은 실은 한 집이다. 방에 가면 '여섯시 내 고향'도 모르고 현경엄마는 잠을 잘 것이다. 다음날 네 시면 다시 솥에 불 켤 생각을 하면서. 

주소 : 성동구 청계천로 10가길 10-7.  
          청계천박물관 뒤편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3bigpictu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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