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쓰다] 오늘 하루 잘 살았나요?
[청년, 쓰다] 오늘 하루 잘 살았나요?
  • 성광일보
  • 승인 2020.08.1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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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효은 / 기자, 작가
어효은
어효은

가끔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와 역할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하고많은 땅덩어리 중 한국,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한국 중에서도 남한, 많은 지역 중에서도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을까. 실제로 나는 어떤 활동을 하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가고 싶은 걸까. 연극과 퍼포먼스 활동을 하며 글쓰기 모임을 여러 차례 진행해왔다. 연극 놀이 강사, 팀 리더, 배우, 극작, 칼럼 기고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해온 활동들이 조금씩 연결되는 것 같다. 아직 구체적이진 않지만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기도 하고 더 자주는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안과 조급함, 두려움을 느끼면서 지내고 있다. 하루가 참 길다 싶을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대부분의 하루는 늦은 밤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고도 무언가 아쉬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곤 한다. '오늘도 정말 잘 살았다. 재밌게 보냈다.' 생각하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본다. 

초등학생 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강아지와 놀고 해 질 녘까지 친구와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동료들과 매일 새로운 놀잇거리를 만들어냈다. 호수와 바다, 산을 내달리면서도 지칠 줄 몰랐다. 오히려 힘을 얻었다. 이렇게 원 없이 하루를 보낸 날은 잠도 달았다. 자책하거나 후회로 괴로워하며 잠드는 날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을 맞는 것이 두렵지도 않았다.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며 집중하고 충실히 살아낸 하루는 뿌듯함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준다. 많은 걸 한 하루가 아니라, 가고자 하는 방향에 한 걸음 다가간 날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무리 많은 활동을 해도 오히려 에너지가 생긴다. 그렇게 살았던 나날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늦은 밤 집에 가는 길에 아파트 경비초소를 지나쳤다. 2평 정도 되어 보이는 공간에 경비아저씨가 앉아계셨다.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경비 일을 수십 년간 해오셨다. 집 근처 바다 옆 규모가 큰 콘도에서 빌라 경비 일까지 했다.  

온종일 일하고 다음 날은 쉬는 격일로 일했다. 아빠가 일을 쉬거나 빠진 것을 본 적이 없다. 몸이 아파도 출근을 했고 심지어 폭설이 내려 버스가 끊겼을 때도 걸어서 5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를 걸어갔다. 하루는 언니랑 아빠에게 삼계탕을 포장해가기로 했다. 근무 장소를 실제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빠의 근무초소는 너무 작았다. 

1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 에어컨도 없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난로를 놓아야 하는 곳이었다. 새벽이면 새우잠을 자야 하고 그마저도 전화가 울리면 바로 일어나 출동해야 했다. 주변 정리부터 다툼이 일어나면 말리는 일도 아빠의 몫이었다. 

지금까지 고생한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새삼 삼 남매를 키워낸 것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내 나이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30여 년 온갖 일을 다 겪어내며 살아오셨다. 이런 삶을 바라진 않으셨을 테지. 우리를 낳은 것을 후회하진 않으실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님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는 생각을 가볍게라도 해본 적이 없다. 부모님 세대와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떤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 그려가고 있나.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오늘도 잘 살았다.'라고 기분 좋게 말할 수 있으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일을 해온 부모님의 삶은 부모님이 선택한 삶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한 삶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든 자신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스스로 인정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된다. 각자의 삶은 누군가와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그림이다. 주어진 삶을 책임지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글을 써야겠다. 인간의 감정과 마음에 대한 공부와 탐구를 하며 창작 활동을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삶을 따듯하게 채워가고 싶다. 온기가 필요한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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