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쓰다] 일의 기쁨과 슬픔
[청년, 쓰다] 일의 기쁨과 슬픔
  • 성광일보
  • 승인 2020.08.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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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 문화기획자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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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새로운 회사 면접을 보면서 생긴 일이다. 면접관으로 참여한 청년들과 대화 나누며 일의 즐거움에 대한 화두가 던져졌다. 면접관 한명은 나에게 팀원 모두가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내게 지원한 직무가 스스로에게 정말 즐거운 일인지 물었다. 그러면서 이직 사유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스스로 원하는 일이 아님에도 현재 힘든 순간을 도망치기 위해 새로운 일을 찾는 것 아니세요?”면접관의 날카로운 질문에 면접자의 입장에서 당연히 아니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질문에 딱히 스스로 만족스러운 답변은 하지 못했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직장인 시절의 어두운 단면을 회상해보면 답답한 사무실 공간에서 상사의 폭언을 듣는 일이 슬픈 일상이었다. 상사는 우월한 위치에서 폭력적 언어를 내뱉었고, 고요한 사무실은 차가운 냉기로 가득 찼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가득한 사무실. 모두 혼자 일당백으로 활약해야 하는 바쁜 일개미였다. 용기 내어 내뱉는 의견은 조용히 묻혀 버렸다. 의견이 무시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자연스레 일의 의욕은 떨어졌다. 살아있음을 느낄 수 없는 시간도 하염없이 계속 흘러갔다. 그러다 내가 회사를 나오는 순간에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의 의욕은 다시 충만해졌다.

퇴사를 하고 평일에는 집 근처 매봉산 공원에 올라 치유의 숲길을 걸었다. 가끔 한 달에 1번 정도는 청계산, 남산 등 가까운 곳을 찾아 주말 등산을 했다. 공원에서 천천히 걸으며 사색의 시간을 가졌고, 산에 오르며 운동도 하니 일상의 활력이 다시 생겼다.

이켜보면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동일한 목적을 갖고 함께 움직일 때였다. 몰아치는 비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산 정상에 올랐던 순간순간에서 나는 살아 움직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올겨울 횡성 태기산에 올랐을 때가 그랬다. 일출을 보기 위해 떠난 산행에서 예상치 못한 폭설이 새벽에 내렸고, 일행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개인의 부족함을 서로 채워줬다. 지인은 나에게 필요한 스패츠(신발에 눈 유입을 막아주는 장비)를 나눠주었고, 나는 산에서 처음 인사 나눈 사람에게 등산 스틱을 빌려줬다. 결과적으로 흐린 날씨 때문에 원래의 목적과 달리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무사히 산 정상에서 함께할 수 있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함께 도우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발견했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을 벗어나 산에 오르면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일상의 현실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풍경이 산에 펼쳐져 있고, 누군가에게 관심 갖지 않고서는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도 산의 매력이다. 비록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도 정상을 향해 오르는 일이 즐거운 것은 공통의 연결고리로 새롭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때문 아닐까. 태기산에 오르는 과정에서 나와 음악적 취향이 비슷한 지인을 새롭게 알게 된 것처럼. 움직이면서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순간과 공통의 연결고리로 새롭게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이 나에게는 곧 콘텐츠 만드는 일의 슬픔을 이겨내는 기쁨이자 즐거움이었다.

전설적인 등반가이자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의 설립자인 이본 쉬나드는 그의 책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에서 산에 오르는 것을 인생의 성장에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산을 오르는 것은 사업과 인생의 본보기 역할을 하는 일이다. 산에 어떻게 오르느냐가 정상에 이르는 것 자체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도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일하는 과정에서 산에 오르듯 자주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지만, 항상 도움을 주고받는 동료들이 존재했다. 어쩌면 일의 기쁨은 서로의 필요를 나누는 일에서 시작되는지 모르겠다. 차가운 사무실에서 나누는 따뜻한 말 한 마디, 동료들과 점심 식사 후 나눠 먹는 아이스크림. 모두 일의 슬픔을 이겨내는 기쁨의 필요조건이었다. 직장 생활은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우리의 일도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험가가 산에 올라 새로운 존재 가치를 발견하듯 하루하루 움직이는 발걸음을 즐거움으로 도장 찍고 싶다. 슬프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일의 기쁨을 느낄 수도 나눌 수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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