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김정호는 혼자가 아니었다
왕십리 김정호는 혼자가 아니었다
  • 성광일보
  • 승인 2020.08.1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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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⑤ 고산자로의 김정호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도선동 왕십리 문화공원 

왕십리에서 김정호를 만나다

나는 왕십리에 가야 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다. 왕십리 가려면 지하철이 그만이다. 2호선, 5호선, 경의중앙선, 분당선을 타면 된다. 승용차로 가도 편리하다. 단 주차비는 내야겠지. 사통팔달 왕십리역은 오가는 사람이 무척 많다. 하루 7만 명이라든가. 

김정호는 왕십리역 2번 출구 밖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전에 김정호를 얼핏 보았던 적이 있다. 왕십리 문화공원이었다. 김삿갓인가 했었다. 여행자 거리라는 안내판 옆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김삿갓이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다. 왕십리에 '고산자로'가 있었다. 고산자(古山子)가 김정호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사람 말이다.

왕십리에 살아야 했던 고산자 김정호

조선 말기다. 지도쟁이 김정호는 어쩌다 왕십리 사람이 되었는가. 그는 한양을 자주 떠나야 했다. 지도(地圖)나 지지(地誌)를 만들려면 수많은 현장 조사가 필요했다. 충청이나 강원도 방향은 전관교(살곶이다리)를 건너 뚝섬나루나 광나루를 이용하는 게 나았다. 황해나 평안도 방향은 양주 방향으로 나갔다. 

지도쟁이에게는 후원자가 있었다. 신헌(申櫶)이다. 신헌은 1828년에 무과에 급제해서 훈련원 주부부터 시작했다. 훈련원에서 광희문을 나오면 신당이다. 그 지역을 하대라고 했다. 주로 하급 무관들이 거주했다. 신헌은 1849년에 금위대장까지 올라갔다. 고산자가 지방에 급하게 다녀올 일이 가끔 있었다. 그때 말을 제공해 주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사람의 눈을 피해서 비밀리에 도와주었다. 그러려니까 왕십리가 적격이었다. 주막이 있고 과객들이 많았으니까. 도움받아야 했던 김정호는 아예 그곳에 눌러앉았다. 왕십리는 왕심평 이라고 불렀는데 채소가 많이 나서 살기에 좋았다. 지방 출장(?)도 출장이지만 육조거리까지 멀지 않았다. 십 리였다.

세월이 흘러 김정호가 마흔여덟이었다. 당시에 그를 후원하는 이는 훈련원 판관 최성환이었다. 어느 날, 최성환이 보내 주기로 한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아랫사람이 말을 몰고 올 터였다. 사흘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김정호는 걸어서 갈 생각으로 봇짐을 메고 주막을 나섰다. 

“어허, 한발 늦을 뻔 했구만, 미안하이.”

키가 훌쩍 크고 어깨가 딱 벌어진 최성환이었다. 김정호의 눈이 커졌다. 최성환이 주위를 둘러보고 다가와서 나직하게 말했다.

“일터가 경복궁으로 바뀌었네. 눈치 봐야 할 사람들이 좀 많아야 말이지. 그래서 늦었네.”
“전에는 사람을 보내시더니 웬일이시우.”

김정호 역시 주위를 둘러보고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철종의 신임을 받은 거군요.”
“말도 말게. 헌종이 붕어하신 게 재작년 아닌가. 싹 바뀌었네.”
“신헌 대장님은 …… 어떻게 지내는지.”

김정호는 전라도 바다 위에 있을 녹도를 그려보았다. 금위대장 신헌은 그곳으로 유배되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뜨는 태양이 있으면 지는 태양도 있었다. 무반도 정치판과 다르지 않았다. 

왕십리 문화공원 여행자 거리에서 나는 고산자를 만났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아직도 지도를 모으나요?”
“아뇨, 요즘은 이것만 있으면 돼요.”

나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나는 지도를 좋아했다. 지도를 지니고 있으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어 좋았다.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났다. 그래서 이런저런 지도를 모았었다. 이번엔 내가 물었다.
“여행자 거리에 서 있는 건 어때요?”

여행자 거리의 김정호는 생뚱맞다는 얘기들이 꽤 있었다. 
“어허, 여행자는 지도가 필요하지요. 성동구의 발상은 괜찮았어요. 게다가 나는 버려진 개새끼잖아요.”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어요? 개새끼라뇨.”
“아하, 그렇지, 강아지. 먼저 데려가는 사람이 주인이 되지요.”

김정호는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유기견 김정호, 재밌네요.”
“고산자로가 있는 성동구는 날 데려가기에 유리한 입장이죠. 여행자 거리는 아직 ……. 그건 그렇고 날 찾아와 이것저것 캐묻는 당신, 뭔가 꿍꿍이가 있어. 그렇죠?”
“헤헷, 들켰나 보네요. 사실은 고산자 님의 진짜 모습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내 실체를?”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걸요. 두고 보세요.”
“뭔지 모르지만 기대해 보죠. 그럼 그때 봅시다.”                                                                   

서성원 작가
서성원 작가

<글, 사진 서성원>
※다음 호에는 소월 김정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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