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이변을 예언한 시인이 살았던 왕십리 그리고 소월의 편지
기상 이변을 예언한 시인이 살았던 왕십리 그리고 소월의 편지
  • 서성원
  • 승인 2020.08.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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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⑥ 소월 김정식
2020년 8월 15일 광복절, 54일 장마 마지막 날, 소월을 만났다. 소월이 속삭였다. “길 건너편 소녀가 당신을 보고 있소.” 역광장의 소녀상을 만나고 가라는 말이었다. 서성원ⓒ
사진 왼쪽 ; 2020년 8월 15일 광복절, 54일 장마 마지막 날, 소월을 만났다. 소월이 속삭였다. “길 건너편 소녀가 당신을 보고 있소.” 역광장의 소녀상을 만나고 가라는 말이었다. 서성원ⓒ
사진오른쪽:  한때는 가요에 소월의 시가 많았다. 1997년 성동구에서 소월 시비 세움. 2010년 왕십리 광장으로 옮김. 서성원ⓒ

○ 소월 시비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 

 

남산에 '소월길'이 있다. 유명하다. 다음으로 '소월아트홀'이다. 성동구는 소월 관련 행사가 많다 - 소월백일장, 가야금 연주단'소월에서 소월을 만나다', 뮤지컬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소리극 '꽃이 피네 꽃이 지네'서성원ⓒ
남산에 '소월길'이 있다. 유명하다. 다음으로 '소월아트홀'이다. 성동구는 소월 관련 행사가 많다 - 소월백일장, 가야금 연주단'소월에서 소월을 만나다', 뮤지컬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소리극 '꽃이 피네 꽃이 지네'서성원ⓒ

노래로 만났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 빛/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다. 사람들은 동요로 알고 있다. 옛날에는 라디오 같은 데서 가끔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강변에 살자고 했을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쓴 시다. 당시에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왜 엄마와 누나만 같이 살자고 했지? 아버지와 형들은 어떡하고? 일제에 징집되었나, 아니면 돈벌이하려고 집을 떠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런 노랫말(시)을 쓴 사람이 누구야!

 기상 이변을 예언한 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天安)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山)마루에 걸려서 운다. 
                                           <왕십리, 김소월>

비오는 왕십리
비오는 왕십리

올해 장마가 며칠이었지. 54일이다. 기상을 관측한 이래 가장 길었다고 한다. 그래서 홍수 피해를 많이 입었다. 소월은 수재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시를 썼다. 비가 와도 한 닷새만 왔으면 좋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가도가도 (구례읍) 비가 오네. 가도가도 (화계장터) 비가 오네. 소월은 이런 세상이 올 것을 알았나보다. 
소월은 배재고보를 다녔다. 왕십리에서 하숙했다. 무학과 도선이 조선의 수도가 될 곳을 예언한 바로 그곳이다. 소월은 이곳에 살면서 그들의 예언 능력을 물려받았던가 보다.

소월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왜? 그는 14살에 결혼을 했었거든. 게다가 성격까지 소심했다. 그는 심약한 소시민으로 시를 썼다.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하는 이들

소시민 동지들에게.

코로나 세상에 안녕들하시우. 오늘은 내 얘기를 하려 하오. 경성에서 학교 다닐 땐 행복했다우. 시를 발표하고 그랬지요. 학업을 마치고 귀향했지요. 고향 평북에서 신문사 지국을 열어야 했지요.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웬걸,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더군요. 캄캄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스스로 생을 끝내자고. 그게 1934년 12월 24일이지요. 서른두 살. 
그래도 저는 다행이었습죠. 사람들이 동정했거든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쯧쯧.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이 변했더군요. 최근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나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을 봤습니다. 
도무지 견딜 수 없거나 혹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나 같은 선택을 했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싸늘하게 비웃었어요. 용서할 수 없다는 거죠. 

목숨을 끊어서 속죄하는데도. 부엉이 바위에서 한 사람이 뛰어내렸을 때는 이런 말까지 하더군요. 
“아이씨, 우리가 그런 사람을 뽑았다니 …….”
어떤 위인은 죄 없는 시민들을 총칼로 살상했지요. 그는 지금도 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얼굴 들고 세상을 잘 삽니다. 세상이 왜 이렇죠. 
지난 8월 6일, 제 생일이었습니다. 그즈음, 이런 말을 엿들었습니다. 소월이 다시 살아나면 세상은 달라질 거야. 아름다운 서정시로 세상을 순화할 수 있을 거야. 

소월의 부활? 고맙죠. 제 인생이 짧으니까요. 지금의 세상에서 다시 살아보라는 거잖아요. 사양하겠습니다. 내가 딛고 설 땅은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1934년 12월 24일까지 산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아시잖아요, 심약한 소시민이라는 거.
                                         2020년 8월 21일 
                                          소월 김정식 올림.

서성원 작가
서성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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