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누가 말 등에 태웠을까
나를 누가 말 등에 태웠을까
  • 서성원
  • 승인 2020.09.10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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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⑦서울숲 군마상(뚝섬 경마장)
서울숲 입구에 설치된 군마상, 서성원ⓒ
서울숲 입구에 설치된 군마상, 서성원ⓒ

○ 군마상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사내 느닷없이 서울숲에 들러

사내는 지금 서울숲에 있다. 서울숲이니까 나무를 보고 있는가. 아니다. 사내는 동물을 바라보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 한 시간 째. 건장한 사내를 붙들고 있을 만한 짐승이 서울숲에 있는가. 없다. 사슴 우리가 있지만 거긴 아니다. 왜? 밤이니까. 사슴 우리는 밤에 개방하지 않는다. 우두커니 서 있는 사내의 등에 백팩이 있다. 아래로 축 늘어져 있다. 언젠가부터 백팩은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필수품이 되었다.
사내가 퇴근하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탄다. 그런데 사내는 무작정 서울숲역에 내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발길 가는 대로 걸었다. 터벅터벅. 언더스탠드 애비뉴에서는 재즈가 흘렀다. '한때 나는 스윙재즈에 목을 맸지. 새끼들, 어떤 꼬라질까.' 음악이 학창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군마상 표석, 작가를 나타내지 않았다. 서성원ⓒ
군마상 표석, 작가를 나타내지 않았다. 서성원ⓒ

거북이 튀김으로 살아온 사내 

언더스탠드 애비뉴를 거쳐온 사내는 서울숲으로 들어섰다. 서울숲역을 몇 년이나 지나쳐 다녔다. 하지만 서울숲에는 가지 않았다. 나무만 빼곡할 것 같았거든. 그걸 보겠다고 거기에 갈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그날, 그는 나무 빼곡한 숲이 필요했었다. 사람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밀림 같은 곳, 그런 곳에 꼭꼭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런 날이었다. 팀장 때문이었다. 
“기수 씨, 언제까지 거북이 튀김 먹을 거요. 거 좀 골고루 먹어봐요. 사람 참.” 
그렇다. 사내의 이름은 기수였다. 기수는 팀장의 말에 모욕감을 느꼈다. 일 처리가 느리다는 핀잔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판매 실적까지 들먹거렸다. 그가 꼴찌였다. 사실 그는 어느 것 하나 앞서는 게 없었다. 숨이 막혔다. 그런 기분으로 퇴근하다 서울숲역에 무턱대고 내린 것이다. 
이런 날이면 전에는 혼자 코인노래방을 찾곤 했었다. 이제는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그 또한 숨이 막혔다.

점 하나 찍기 

서울숲에서 그는 검정말을 발견했다. 힘차게 내달리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모두 여섯 마리였다. 달려서 어디로 가지? 말들이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결승선. 검정말들은 경주마였다. 그는 말 등에 앉은 이를 바라보았다. 

“기수잖아. 나도 기순데.”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서 죽으라고 앞으로만 달려야 했구나. 이겨야 살아남는 경주였어. 한 번으로 끝나는 경주도 아니었어. 다음 날, 다음 달, 다음 해, 또 그다음 해, ……. 사는 게 왜 그렇게 팍팍했는지 그제야 알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누가 나를 말 등에 올려놨지. 자기 자신이었다. 그때, 궁상맞게 유행가 한 자락이 떠올랐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 그래,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렇지 뭐. '기수' 라는 글자에 점하나 찍으면 '가수'가 되는 거지 뭐. 그는 벌떡 일어섰다. 웃으면서 군마상을 향해 말했다.
“쌩큐, 쌩큐, 나, 점 찍었어. 알았지?”
기수는 학창 시절 밴드 활동 같이하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가난하지만 웃으며 살 거야. 그는 서울숲역 쪽으로 뛰어갔다. 

말과 함께 한 서울숲 땅의 역사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군마를 길러내려고 목장을 만들었다.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동으로 아차산, 서로 살곶이다리, 남으로 뚝섬, 북으로는 배봉산 안쪽이었다. 동서로 7리, 남북으로는 15리 정도였다. 
현재 서울숲 자리는 말들이 뛰놀던 곳이었다. 목장은 병자호란 이후 청의 간섭으로 완전히 폐쇄된다. 그러다 1954년 신설동에 있던 서울경마장이 뚝섬으로 온다. 경마장 트랙 안쪽엔 채소밭이 있었다. 1989년, 경마장이 과천으로 옮겨 간다. 이렇게 뚝섬은 오랫동안 말과 함께했다. 그러다 말과 인연을 끝낸다. 
2005년, 뚝섬이 서울숲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말과 함께 한 땅의 역사까지 지워서는 안 될 일이었다. 군마상을 만든다. 서울숲의 상징은 군마상 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군마상 표지석 그 어디에도 작가를 나타내지 않았다. 여기엔 또 다른 얘기가 숨어 있다. 

2020년 네이버 항공사진. 경마장 트랙을 살려서 서울숲을 만들었다.
1974년 뚝섬 항공사진, 서울역사편찬원 제공
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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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 작가
itta@naver.com

☞ 다음 호에는 <살곶이다리>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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