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에 필요한 건 '성찰의 고독'
요즘 시대에 필요한 건 '성찰의 고독'
  • 정소원 기자
  • 승인 2020.09.24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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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원 / 취재부장
정소원/취재부장
정소원/취재부장

앤서니 스토의 '고독의 위로'는 인간관계와 고독의 의미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은 인간관계가 중심이 되는 현대사회의 행복론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진정한 행복을 위한 고독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인류역사상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산업발달과 생산량증대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주와 같이 당면한 생존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했다. 배고픔과 안전의 욕구가 점차 해결되고 나서야 인류는 관계와 사회적 인정, 문화에 대한 욕망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참된 우정과 낭만적 사랑, 소울메이트의 개념이 대중들에게까지 바람직한 관계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힌 것은 놀랍게도 불과 2세기 내외다. 이 미숙한 집단적 믿음은 마치 인류의 휴머니즘을 관통하는 오랜 진리처럼 여겨지며, 현대 사회의 체제와 네트워크를 공고히 유지하는 근원적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근원적 동력은 모든 것을 소비하게 하는데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상품과 재화, 서비스 뿐만이 아니다. 미디어와 광고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경험과 관계, 감정까지도 소비하라고 부추긴다. 
드라마와 예능에서 창조해낸 쿨하고 열정적이며 경험지향적인 캐릭터들은 현대사회에 신앙과도 같은 담론을 만들어낸다. 

성공하기 위해서 어학연수와 교환학생, 인턴과 공모전을 경험하라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연애를 하고 더 많은 친구들과 인맥을 만들라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닥치는대로 경험하고 상처받는 것도 쿨하게 생각하라고. 이제 이런 말들은 현대인의 주기도문처럼 되어버려서, 그렇지 못했을 때 양심의 가책까지 느껴야 할 정도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귀납적인 경험 일변도가 되어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주어진 인생을 낭비없이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고 믿는 듯 하다.

덜 풀린 낙관적 경험주의의 마취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경험과 관계들을 통해 우리가 정말로 몰입하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도한다. 그리고는 이 피곤하고 상처투성이인 귀납적인 관계맺기야말로 몰랐던 자아를 발견해가는 인생의 여정이라고 자기최면을 걸곤 한다.

그러나 정체성은 결코 귀납적인 경험의 확장만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아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은 다분히 연역적인 내면활동들이다. 혼자 남겨진 시간, 철저한 고독 속에서 우리는 부표하는 경험과 관계들 속에서는 묻지 못했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무엇 때문에 나는 고통받고 힘들어하는지, 내가 진정으로 몰입하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무엇인지, 나는 어떠한 기질의 사람인지.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서 웅크려있던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다.

현대 사회 이전의 행복한 사람들은 경험의 현저한 제약 속에서도 연역적 방법만으로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었던 듯 싶다. '고독의 위로' 에서는 이러한 예로 현대사회 이전에 내면의 자기성찰과 창조적 활동을 통해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했던 위인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책 속에는 수많은 예술가와 과학자,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발적인 고독 속에서 각자 자기만의 방식대로 세속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지적 쾌락과 성취감, 정신적 만족을 느꼈다.

애드워드 기번은 창조적 예술활동을 통해 행복을 추구한 인물이다. 그는 작곡과 소설쓰기에 몰입하며 혼자만의 예술세계에 빠져 살았다. 그는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게 하지만 천재를 만드는 것은 고독이라고 말했다. 고독에서 나오는 예술적 영감과 폭발하는 창조의 힘에서 그는 행복을 느꼈던 것 같다.

칸트는 스스로의 엄격한 내적규율과 원칙 속에서 사색의 깊이를 더한 경우다.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마을을 한발자국도 나가본 적 없이 살았던 은둔의 철학자 칸트의 철학이 어느 철학자의 사상보다 유연하고 인간중심적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철저한 심연의 고독 속에서 칸트는 역설적으로 가장 넓은 생각과 마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고독이 의도적으로 거세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 사회에서는 혼자 남겨진다는 외로움은 무엇보다 두려운 감정이다. 사색과 명상은 재생산과 창조를 위한 자기투자라기보다 약속이 없는 히키코모리의 잉여활동에 가까운 단어가 되어버린 듯도 싶다.

혼자남는 것이 두려워진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경험하며 소비해야 한다. 스스로 방안에 갇혀 깊이 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제 많지가 않다. 금요일밤 도심은 언제나 한껏 멋을 낸 대학생들과 소개팅에 나온 능숙한 남녀, 만취한 취객들로 북적인다.  

반면 인간관계는 행복의 중요한 가치기준이 되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여러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기대하며 집착한다. 현대사회가 앓고 있는 만성적인 우울감은 인간관계에 대한 부풀려진 믿음과 환상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진실된 우정과 낭만적인 사랑, 인생의 소울메이트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기대와 현실의 간극에서 베인 마음의 생채기는 언제쯤 아물게 되는 것일까

외부로 향해 있던 시선을 내부로 돌리려고 늘 고민한다. 귀납적 경험에서 연역적 사색으로 감각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어둠 속에 혼자 남겨지는 두려움은 잠시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의식이라는 촛불을 키면, 거울 속으로 작은 아이가 비쳐보인다.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아이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많다. 대답을 마친 아이는 흐느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지긋이 바라볼 것이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따뜻하고 깊은 고독. 나는 그 밝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쓰다듬고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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