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은 순간을 날아 목표물에 박히지만, 전설은 천 년을 날아 사람들 마음에 박힌다.
화살은 순간을 날아 목표물에 박히지만, 전설은 천 년을 날아 사람들 마음에 박힌다.
  • 서성원
  • 승인 2020.09.24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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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⑧살곶이다리(보물 1738호)

 

○ 살곶이다리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행당1동 58 

물음표가 둥둥 떠내려오는 중랑천

성동구를 대표하는 축제가 무엇일까요, 이성계 축제지요.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열리지 못하지요. 아쉬운 마음으로 살곶이다리에 대해서 알아보려합니다.

살곶이다리는 성동구 행당동에서 성수동을 잇는 조선의 다리입니다. 한양대학교 쪽에서 중랑천을 건너 성수동으로 이어주죠. 작은 물은 천(川)이라고 하고 더 크면 강(江)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곳은 말만 중랑천(中浪川)이지 실제로는 중랑강(中郞江)이예요. 청계천과 합류해서 한강으로 들어가기 전이어서 그렇죠. 

이런 위치에 조선의 사람들은 돌을 쪼개고 깎고 다듬어서 다리를 놓았어요. 어마어마하죠. 서울 사람이라면 살곶이다리를 반드시 봐야 해요. 

아마 눈으로 본다면 궁금증이 폭발할 거예요. 내 말이 거짓인지 다리 위를 한번 걸어보세요. 물음표가 둥둥 떠내려오는 중랑천을 볼 거예요.

이성계축제 중 왕의 사냥 행차. 다리가 넓었던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 성동구청 블로그)

너비 6m 다리가 왜 필요했지? 

살곶이다리 길이는 78m(258척), 너비는 6m(20척)이다. 생각보다 짧은가요? 에이, 조선 사람의 눈으로 봐야지요. 결코 짧지 않아요. 현존하는 조선 시대 다리 중에서 가장 길대요. 내가 궁금한 것은 너비예요. 지금 봐도 꽤 널찍하거든요. 

살곶이다리에서 멀지 않은 하류에 성동교가 있어요. 이게 1938년에 개통됐지요. 그러기 전까지, 중랑천을 건너려면 살곶이다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양 혹은 경성 시절에 동쪽으로 나가는 교통로에서 살곶이다리는 중요했지요. 그래서 이렇게 널찍한 다리를 놓았다구요? 정말 그랬을까요? 

공사는 세종 2년(1420년)에 시작했죠. 왕에서 물러난 정종과 태종이 중랑천을 자주 건너다녔대요. 뚝섬에 전각(殿閣)과 이궁(離宮)이 있어서 그랬더래요. 게다가 뚝섬에서 매사냥도 종종 했대요. 그럴 때마다 내를 건너야 하는 신하들과 수행원들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녔나 봐요. 

그래서 세종이 공사를 시작했는데 태종이 죽죠. 다리를 만들 이유가 사라진 거죠. 2년 만에 중단합니다. 그러다 성종 6년(1475)에 공사를 재개해요. 성종이요. 착공 후 63년 만에(성종 14년, 1483년)에 완공합니다. 

그러니까 살곶이다리는 왕들의 행차를 위한 다리였어요. 생각해 보세요. 마차를 타거나 말을 타고 가다가 강을 만났어요. 근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었을까요. 말에서 내리지 않고 위엄있게 건너갈 넓은 다리가 필요했겠지요. 말, 마부 그리고 호위무사도 동반해서 건너려 했겠지요. 

그래서 폭이 6m나 되는 다리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뚝섬에는 국립목장이 있었어요. 왕은 여기서 군대를 사열하기도 했대요. 이러니 왕이나 왕실에서는 중랑천을 건널 다리가 절실했겠지요.

 2019 이성계축제 본행사 <활시위를 당겨라> 장면. 대본을 내가 썼다. 성동구는 축제를 살곶이다리에서 자주 한다. 일반인들이 살곶이다리를 이성계가 만든 것으로 알까 봐 걱정이다. 사냥 행차 시연도 살곶이다리를 건넌다. <서성원 ⓒ>

제반교가 왜 살곶이다리가 되었지?

완공한 다리는 번듯했어요. 평지를 걷듯 다리를 건널 수 있다고 해서 제반교(濟盤橋)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살곶이다리라고 하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이게 물음표였어요. 그건 쉽게 찾아냈어요. 그곳에 전관평(箭串坪)이 있었어요. 전관(箭串)은 화살 전(箭), 꿸 관(串)이죠. 우리말로 하니까 살곶이벌이죠. 이곳에 있는 다리니까 살곶이다리가 되죠. 그런데 왜 이성계가 화살을 쏘아서 꽂힌 곳이라고 사람들이 믿었을까요? 왜?

살곶이다리 하부 <서성원 ⓒ>

 

 다리 상판의 돌, 다듬은 방법이 모두 달랐다.  <서성원 ⓒ>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자, 피비린내 나는 형제간의 싸움이 벌어지죠. 이방원이 형 방석, 방번을 살해하죠. 마침내 정권을 잡았어요. 이에 위험을 느낀 이성계가 고향 함흥으로 피신하죠. 이방원은 아버지에게 사람을 보내요. 이게 유명한 '함흥차사'죠.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 그러다 이성계가 마지못해 한양으로 옵니다. 화가 풀리지 않은 이성계는 마중 나와 있는 이방원에게 활을 쏩니다. 이방원은 그 화살을 피했다고 하죠. 그것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하늘이 승인했다고 주장하고. 

이 이야기가 살곶이다리가 있는 곳에서 벌어졌다는 거죠. 물론 살곶이다리가 있기 전에 말이에요. 백성들이 멍청해서 그렇게 오해했을까요? 천만에.   생각해 보세요. 권력을 잡기 위해 형을 죽이는 걸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백성들의 복잡한 심사가 살곶이다리에 반영되었죠. 그러니까 이성계나 이방원과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버렸죠. 이게 살곶이다립니다. 

정권을 잡기 위해 이성계가 쏜 화살, 이방원이 휘두른 칼은 순간이었지만 백성들 마음에 남은 상흔은 천년만년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거죠.

서성원 작가itta@naver.com
서성원 작가itta@naver.com

☞ 다음 예고 : 성수대교 참사 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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