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당당히 맞선 도전정신”
“죽음과 당당히 맞선 도전정신”
  • 이교헌 기자
  • 승인 2013.05.01 2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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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시스템 성명기 대표

광진구상공회 제16기 CEO연구과정 개강 특별 강연

▲ 성명기 여의시시템 대표
광진구상공회는 지난 4월 17일 오후 제16기 CEO연구과정 개강식을 가졌다.이날 개강식에는 ‘죽음과 맞서 당당히 이겨 낸’ 여의시스템 성명기 대표를 초청해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여정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여의시스템은 자동제어 분야의 외길을 20여년 간 개척했다.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의 삶은 '굴곡'과 '도전'이란 단어로 대변된다. 그의 인생은 누구보다 굴곡이 컸다. 누구나 인생에 굴곡은 있지만 그는 유난했다. 한없이 좋았다가, 급격히 추락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반복됐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바로 퇴사했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고, 가족 모두와 죽음을 마주했다. 그 험난한 역경을 딛고 일어 서 이제는 연매출 300억원이 넘는 기업의 대표로 성장했다. 성 대표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역경을 이날 광진구 상공회 16기 회원들을 위해 속내를 밝혔다.

여의시스템은 자동제어 관련분야의 외길을 걸으면서 산업용 컴퓨터, 임베디드 솔루션, 컴퓨터 보안장비 하드웨어 플랫폼, 산업용 네트웍 방비분야와 엘리베이터 관제 및 히터미터링 시스템, 원자력발전소 폴트 레코딩 시스템 등의 시스템 통합분야에 20여 년 간 미개척분야를 달려 온 기업이다.(편집자 주)

중학교 1학년이었다. 성 대표가 라디오를 처음으로 만났던 때다. 학생과학이라는 월간잡지에 라디오 만드는 방법이 나와있었다. 그리고는 '푹' 빠졌다. 5년간이나.

틈만 나면 라디오를 만들고 부쉈다. 불법이지만 전파를 쏴보기도 했다. 라디오만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당연히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성적이 최하위권을 유지했다.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꿀 성적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오르면서 진학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이대로는 대학에 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라디오에 빠지면서 꿈이 생겼다. 엔지니어나 과학자였다. 대학에 가지 못한다면 꿈을 이루는 길은 너무나 멀어진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에 못가면 동네에서 TV나 라디오를 고치면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어요.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돼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전파상은 제 꿈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이 확 들었죠. 그 뒤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 소년은 당당히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도 성적은 들쑥날쑥했다. 이번에는 암벽등반에 빠졌고, 성적은 엉망이 됐다.
대학 4학년. 사랑이 찾아오고서는 사람이 바뀌었다. 당시 성 대표는 학점이 부족해 4학년 졸업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방법은 4.0 만점에 3.75 이상을 받아 3학점을 더 듣는 것뿐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는 불가능에 도전해 성공했다. 한 과목만 B를 맞고 모두 A를 맞아 학점 3.86을 받았다. 천신만고 끝에 4년 졸업이 가능해졌다.

성 대표는 사회생활도 남달랐다. 졸업 이후 그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모 대기업에 취업했다. 외국 장비를 들여와 배에 장착하고, 장비를 관리하는 등의 일을 하는 기업이었다. 회사가 워낙 크다보니 직원이 작은 부품 같은 느낌이었다. 하고 싶었던 일을 못했다.

그래서 나왔다. 그것도 한달만에.
회사는 작더라도 개발 업무를 하고 싶었다. 선배의 소개로 군포의 모 기업에 입사했다. 군에 납품하는 장비를 만드는 곳이었다. 성 대표는 이 곳에서 '물만난 물고기'였다.

 “정말 재미있게 일했어요. 월급쟁이로 일한다면 회사가 내쫓지 않는 한 안 나간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사업하게 되면 모른다고 말은 했었지만, 정말 실현될 지는 몰랐어요."

3년 반. 일에 열중하던 성 대표가 일을 그만두기까지의 기간이다. 애플 컴퓨터에 빠지면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국 출장을 다녀온 친구가 애플 컴퓨터 트레이닝 키트를 사왔다. 성 대표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틈틈히 부품을 사모아서 8비트 애플 컴퓨터를 만들었다.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 번뜩 새로운 구상이 떠올랐다. 프로그램을 활용해 제어장비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찾아다녔다. 아내는 말렸지만, 이길 수 없었다.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여의도에서 5평 상가를 세 업체가 나눠 쓰는 곳을 찾았다. 2평도 안되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희망에 부풀었다.

이 곳에서 성 대표는 부품을 사다가 컴퓨터를 조립해 팔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1983년 7월에 가게를 차렸는데, 12월 쯤부터 컴퓨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물량이 밀려 조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문이 들어왔다. 컴퓨터 바람은 몇 달 뒤 수그러들었다.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제어장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대전 연구단지 쪽에서 시험장비 개발 의뢰가 들어왔다.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이었다.

 
제어장비 개발은 성공적이었다. 당시 국내에는 없던 제품이었지만, 3년반 동안의 개발 경험을 발휘해 장비를 만들었다. 한 대를 납품하면 1000만원 정도가 남았다. 성 대표가 직장에서 나올 때 월급이 38만원이던 시절이다.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가 한 평에 150만원 했던 때다. 두달에 한 대 정도를 팔았다.

그야말로 '돈을 갈퀴로 긁어' 모았다. 하지만 '호사다마'라던가. 당시 2살난 아들 석현씨가 고열로 앓기 시작했다. 일주일째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네 소아과에서 큰 병원으로 옮겼다.
병명은 백혈병. '청천벽력'이었다.

충격에 임신 중이던 아내는 유산을 했다. 절망적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자는 각오를 다졌다. 치료를 시작했다.
두달에 1000만원씩 벌었는데, 이번에는 2주일에 1000만원씩 나갔다. 그동안 벌어둔 돈으로 샀던 여의도 아파트도 팔았다. 성 대표도 아내도 자식 간호에 모든 걸 쏟았다.
나쁜일은 동시에 온다고 하던가. 무리하던 아내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폐결핵이었다. 전염이 우려됐다. 아이와 엄마를 격리해야 했다.
가지고 있던 돈은 치료비로 모두 나갔다. 빚은 쌓여만 갔다. 아내의 치료를 위한 주사를 직접 놔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 둘째도 당시 태어났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대가가 있었다. 자식과 아내의 증상이 호전되고 있었다.

아들 석현 씨의 치료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아내도 좋아졌다. '이제 시련은 끝이구나' 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뱃속이 이상해 병원을 찾았다. 내시경 결과 위암 판정을 받았다. 1986년, 성 대표의 나이 서른셋이었을 때다.

위암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아내와 자식도 건강해졌다. 하지만 모진 시련을 이겨낸 뒤에는 빚더미만 남았다. 동생이 맡아 하던 가게는 적자에 허덕였고, 치료비로 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어려웠지만, 성 대표와 가족들은 병마를 이겨냈다. 희망이 있었다. 이제는 도전만이 남았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어요. 이겨낼 수 있었던 건 하늘이 도와준 덕인 것 같아요. 젊어서 다른 부분은 모두 건강했기에 체력으로 어떻게든 버텨냈습니다. 다시 도전해야 할 때였어요.”
동생과 함께 가게를 키워 법인으로 등록했다. 이후에는 성장의 연속이었다. 컴퓨터 조립에서 벗어나 산업용 장비로 눈을 돌렸다.
산업용 컴퓨터와 데이터 처리장비 등 자동화 시스템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전력감시제어시스템과 정·폐수 처리장 자동제어에도 손을 댔다.
모두가 컴퓨터를 이용해 자동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창업전선으로 뛰어들 당시의 각오를 그대로 실천한 셈이다.

이후 시스템 통합(SI)을 시작하고, 네트워크 보안장비와 컴퓨터 보안장비용 하드웨어 분야까지 진출했다. 열병합 발전소에서 온수와 열을 공급하는 망을 계측하는 시스템과 엘리베이터 제어시스템, 대규모 수처리 시스템 등 다양한 제어 시스템에 도전했고, 성공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사이니지(전광판)와 키오스크(무인 티켓 발매기)에서 재미를 보고 있다.
이들 시스템은 모두 컴퓨터와 모니터, 제어 시스템이 조화된 제품들이다. 산업용 컴퓨터라는 뿌리에서 약간의 생각 전환으로 나온 성공 사례들이다. 이 같은 성공은 여의시스템 만의 독특한 R&D 시스템 덕이다.
 “여의시스템은 지난해 수익의 20%를 하나의 기술개발에 투자합니다. 1년에 두가지 정도가 되요. 실패한다 해도 회사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창업 이후 수익금이 외부로 나간 적은 단 한번도 없거든요. 그리고 운 좋게도 개발한 기술 두 개 중 하나는 성공했습니다.”

성 대표는 최근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그동안 산업용 컴퓨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제품을 생산했다면, 앞으로는 좀더 크게 벗어나는 분야로 눈을 돌릴 계획이다.

“앞으로 환경·실버산업에 투자 역량을 집중할 방침입니다. 기후변화와 노인화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당당히 도전해야 합니다. 여의시스템은 '카멜레온'처럼 환경 변화에 따라 빠르게 변신할 수 있는 기업으로 커갈 겁니다.” 【이교헌 기자】

성명기 대표는
·1954년 대구 출생, 1980년 연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0~1983년 휴니드테크놀로지 연구소 연구원
·1983~1991년 여의마이컴(여의시스템 전신) 대표
·1991년~ 여의시스템 대표이사
·2002년~ 한국자동제어조합 이사
·2009년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겸임교수
·2013년~ 이노비즈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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