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줌마, 이모님, 할머니 ②
<소설> 아줌마, 이모님, 할머니 ②
  • 성광일보
  • 승인 2020.10.16 15: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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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소설가
윤 정 / 소설가
윤 정 / 소설가

이번에는 강아지다. 방문객이 있을 때마다 짖는 것도 시끄럽지만 현관부터 시작하여 변기 패드가 10개 이상 깔려 있어도 아무 데나 질질 끌어 오물을 묻혀 놓는 것은 질색이다. 혼자 두고 외출하면 안 되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한 달에 두어 번은 미용실 출입해야 하고 주인이 없으면 같이 자야 하고, 때마다 영양 생각하며 밥 줘야 하나 반면에 졸졸 따라 다니며 귀여운 짓을 하니 아기나 마찬가지다. 14~15년 정도 같이 지내다 죽으면 그 슬픔은 어찌 감당할까? 희주 생각에 동물을 키우느니 차라리 아기를 입양하고 말겠다. 

일할 집을 택할 때 주부가 직업이 없는 소위 전업주부면 썩 달갑지 않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감시당하는 것 같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이왕이면 맞벌이 부부 집을 선호한다. 희주도 같은 생각이지만 60이 넘은 희주 나이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베이비시터, 가사도우미 한 지도 5년이 되어 가니 이제 마지막으로 잘 선택해서 70까지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사모님이 무척 바쁘심'이란 단서가 붙어 선택하는데 별 망설임이 없었다. 운동과 사교 모임으로 집에 있는 날이 드물었다. 아이들에 관한 모든 것은 거의 이모님이 책임지고 있었다. 
소개소 정 실장은 깍듯이 사모님, 사모님, 자연스럽다. 어제도 '사모님, 내일 뵙겠습니다.' 하고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 

희주는 죽어도 사모님 소리를 못하겠다. 사모님이라 함은 스승의 부인이거나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인데 주인 여자에게 적절한 호칭일까? 이제까지 누구 엄마, 누구 아빠라고 했지 사모님이란 말은 불러 달란 적도, 쓴 적도 없다. 

이 일 시작하면서 자존심과 체면은 서랍에 넣고 왔는데 부자연스러운 호칭은 마음에 걸린다. 괜히 물어봤다. 사장님과 사모님이라고 부르란다. 저절로 입에서 나올 때가 있겠지 했지만 3주가 지나도록 부른 적이 없다. 이모님도 애들 엄마를 뭐라고 부르는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6시가 넘어 주간 보호센터에서 할머니가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곧 버스가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가서 할머니를 모셨다. 희주를 처음 본 센터 직원이 누구냐고 묻자 이제부터 할머니를 모시게 될 도우미라 했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거동은 불편해 보였지만 고맙소 하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 치매 노인 같지 않다. 

거실로 들어서는 할머니를 보고 이모님이 방으로 모시란다. 가는 길에 아이들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손을 씻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으시라 하니 계속 '괜찮아요, 괜찮아요.'하기에 이모님 쪽으로 눈을 돌리니 말을 듣게 하려면 소리 지르며 억지로 끌고 가야 한다며 그냥 놔두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행세깨나 했을 인상의 할머니가 치매 환자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희주가 오기 두어 달 전에는 그야말로 벽에 분칠을 했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으니 이모님 말로는 희주가 복 받은 거란다. 가사도우미로 왔지 치매 노인 돌보러 온 것 아니라는 생각이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친정어머니가 치매를 앓다 돌아가시기 전에 1년간 모신 경험이 있는 희주로서는 남의 일 같지 않고 머지않아 닥칠지도 모를,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노년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찹하다. 
자신의 말년도 이와 같을지, 세 아이 중에 누가 자신을 거둘 것이며 누가 마다할 것인지, 그때쯤이면 삶에 대한 미련은 아낌없이 내려놓을 것인지......
남자 저녁 차릴 시간이 되었다.   

“사장님 입맛이 꽤 까다로워요. 나 하는 것 잘 보고 그대로 하세요.”
 “보통 애들 먼저 신경 쓰지 않나요?”
 “애들은 달라고 할 때 원하는 것 주면 돼요. 미리 만들면 안 먹어요.”
 “네, 된장찌개가 참 간단하네요. 된장, 마늘, 양파밖에 안 들어가요. 두부는 안 넣으세요?”
 “된장이 특별 주문한 맛있는 거라 넣기도 하고 그냥 하기도 하고, 오이무침은 미리 간을 해두면 안 돼요. 아삭하지 않으면 쳐다도 안 봐요.”
 “이건 삼겹살 아닌 것 같은데 목살인가요?”
 “아롱사태예요. 얇은 삼겹살은 안 드세요. 익힌 다음에 채소 듬뿍 넣고 아삭하게 내놓아요.”
 “10첩 반상이네요! 젓갈에, 양배추 쌈에, 연근조림에, 된장찌개가 있는데 쇠고기뭇국이 있고.”
 “오늘은 그래도 적은 거예요. 생선은 고기 없을 때 내놓아요.”
 “제가 아무리 배운다 해도 10년 이상 길들인 입맛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네요.”
 “밖에서는 안 먹고 다니나요? 간만 잘 맞추면 되지요.”
 “꽤 까다롭다고 하시니 겁이 나서요.”

사장님이란 남자가 식탁에 앉기 전에 거의 차려놓고 나오기를 기다린다. 매일 먹는 영양제 5종과 물처럼 마시는 차에 커피까지 준비하고 인기척이 나면 그때서야 흰쌀밥과 국을 덜어 바친다. 사장님답게 걸쭉한 소리로 식사를 마치면 빈 그릇을 치우고 일하는 사람들이 앉는다. 

일 인분을 어찌나 많이 담았는지 반도 안 먹었는데 희주는 남이 남긴 반찬을 먹기가 싫다. 이모님은 늘 그래왔는지 거리낌 없이 젓가락질이다. 
희주는 전혀 손대지 않은 반찬 두어 가지만 얼른 덜어 쌀밥 반 공기를 비웠다. 집에서 먹던 잡곡밥이 아쉽다. 온 식구가 잡곡밥은 안 먹는단다. 주방 서랍마다 각종 라면, 과자, 냉장고에 콜라, 사이다, 탄산수 등, 남이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건강과 위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희주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주인은 늘 바빠서 집에서 식사하는 때가 많지 않다니 온 신경을 남자 밥상에 쓰면 되겠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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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니 2020-10-17 13:36:18
흥미진진하네요 다음 편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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