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의 노포> 허제희 연무장길 대한피아노
<성동의 노포> 허제희 연무장길 대한피아노
  • 원동업
  • 승인 2020.10.16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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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장길 포도나무처럼 어쩌면 전직 대통령 카터처럼
“피자가게는 깨졌죠. 음악 사랑은 더 단단해졌고!”

성수동 연무장길은 밀집한 구두공장들과 협업하는 부재료상들이 북적였던 곳. 하지만 이곳은 이제 카페와 식당가로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미 몇 년 간이나 지속해 이어온 현상이다. 가로수 한 그루 심어져 있지 않고, 인도와 차도도 구분되지 않고, 노출된 전봇대 전선들과 짐 실은 오토바이들이 뒤엉킨 이곳은 금광이 발견된 서부개척시대의 도시 모양으로 분주하고 동시에 척박하다. 
이곳 길에는 일명 '기적의 포도나무'가 자란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아스팔트로 깔린 바닥) 저렇게나 탐스럽게 포도줄기가 뻗고 열매가 맺히는지 신기해하는 이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하지만 기적도 찬찬히 살피면 이유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이 포도나무의 주인이랄 수 있는 이 허제희(대한피아노) 님의 말.

창업기와 폐업기 그리고 음악사랑이 책으로 남다
“글쎄요. 새가 똥을 싸면서 거기에 씨를 뿌렸을까요? 누가 심은 건 아니고, 절로 저렇게 자라난 거예요. 제가 우리 학원 앞에 작게 화단을 만들었더랬어요. 땅과 연결된 화단. 그런데 데크를 만들면서 거길 전부 덮었거든요. 저 포도나무 덩굴은 거기서 싹터 햇살을 찾아 나온 거예요. 전봇대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 거고.”

허테레사로 더 자주 불리는 허제희 님을 인터뷰했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30여년 가까이 음악 학원을 운영해오고, 20여년 넘게 성당서 피아노 봉사를 해온 음악인이다. 초등학교때 성당에서 미사포를 쓰고 오르간을 치던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후로, 한시도 음악을 잊어본 적 없는 사람. 그런 그가 몇 년여 간 다른 길을 걸었으니, '피자가게'다. 아트카페 테레사. 

- 피자가게를 2010년대 중반쯤 여셨다가, 한 2년 운영하시곤 접으셨죠? 
“남편의 사업 실패로 대단히 어려운 때였어요. 학원도 한 때는 원생들을 100여 명 가까이 두면서 크게 한 적도 있었는데, 어느 시기에 다다르자 한계가 생기는 거에요. 정말 돈이 필요했어요. 어느날 저녁인가? 다른 동네서 길을 지나는데 피자 내음이 너무나 좋은 거예요. '그래, 저걸 해보자.' 그때는 잠시 미쳤었나 봐요. 건물 1층서 사람을 두어 피자가게를 하고, 2층서는 피아노를 지속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 요식업을 운영해 본 경험도 없으셨죠? 해당 가게서 알바를 해보지도 않으신 채로요?
“원래 제가 결단력이 있어요. 그런 거 따졌으면 피자가게를 못 열었을 거예요.”

- 해보니까 어떠시던가요? 
“첫째 인테리어가 좀 구식이었어요. 둘째는 주방이 비효율적이었고, 셋째는 SNS 마케팅을 못했어요. 자금이 부족해서 싼 가격에 일을 해주겠다는 업자를 선택했는데, 곳곳에서 헛점이 보이고 허술했죠. 자꾸 덧댈 일이 생기면서 결국엔 비용도 꽤 들었구요. 제가 식당의 효율적 구조를 모른 채로 시작하니까, 예를 들면 냉장고를 밖에 뒀어요. 그러니 자주 쓸데없이 움직여야 했죠. 화덕도 이태리에서 직구해온 완벽한 것이었는데. 제가 불이 무서워 피자를 하나씩만 구웠어요. 사람도 끝내 못구했죠. 이런 작은 곳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었어요. 청년들은 더 크고 근사한 데서 친구들 동료들과 함께 일하려 하고….”

인테리어를 하고 있을 무렵, 코 앞 길 건너에 멋들어진 피자가게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매몰비용 때문에 발을 뺄 수도 없었다. 먼저 문을 열고, 공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아담하고 가성비 좋은 가게였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점심시간마다 손님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신경이 곤두섰다. 몸도 많이 상했다. 가게를 접었을 때, 가장 좋았던 일로 “이제는 손님이 어디로 가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을 꼽았을 만큼 허테레사의 마음은 여렸다. 

◆폐업 후 돌아온 음악교실서 사랑을 창업하는 꿈

- 가게를 열었던 일을 후회하세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 일이 없었다면 보지 못했을 세상도 봤구요. 제가 피자 도우랑 세팅해 놓고 손님 기다릴 때마다 끄적끄적 글을 썼어요. 저랑 대화하듯이 썼죠. 그건 제게 제2의 인생이에요. 고난을 통해 거듭 난 거죠.”

미국의 대통령 카터는 미 역사상 가장 인기가 없던 이였다. 하지만 그는 퇴임 후 가장 성공적인 전대통령으로 남아있다. 어떤 때는 오로지 실패를 경험하기 위하여 그런 일도 하는 법이다. 실패 뒤에 오는 깨달음, 전혀 다른 세계로의 초대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하여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 같은 것들. 모두 실패 뒤에야 오는 것들이다.

- 내신 책들 소개를 해주시죠, 작가님. 
“(하하)책 두 권 갖고 작가라니요. 첫 책은 <시니어 좌충우돌 창업기 - 피아노 연주하듯 피자 굽는 여인>이고요. 이번에 나온 책은 <음악과 함께해온 삶의 이야기 - 음악, 마음을 키우다>예요. 세 번째 권도 준비하고 있어요. 가안인데 <음악에서 영성으로>.”

- 음악이 마음을 키운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더군요.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있으셨어요.
“가게를 접고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다시 보였어요. 굉장히 달라져 있었어요. 아이들 내면에서 무언가 사라진 느낌? 마치 인형들을 보는 거 같달까? 음악은 차분한 집중이 필요해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게 안 되는 거예요."

-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되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과잉보호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이들이 이것도 저것도 전부 엄마에게 물어서 해요. 어떤 경우엔 과도한 기대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토끼같은 아이들인데, 호랑이를 만들려는 기대감이 있는 거죠.”

책에는 그녀가 아이들 하나하나와 바라보고 교감하고, 다가간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은 용케도, 자신을 진짜 알아주는 사람에겐 감응한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콩쿨이라는 목표를 정한다. 목표가 생긴 아이들은 달라진다. 그런 뒤 단단하게 딛고 뛰어야할 기본기를 반복해서 가르쳐준다. 그렇게 집중해 스스로 작은 성공을 맛본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하려는 힘을 갖는다. 얼굴이 발갛게 될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아이도 있다. 스트레스를 풀거나, 그녀처럼 자신의 성당에서 자리에서 봉사를 하려는 청년들, 어른들, 어르신도 그녀에게로 온다. 그녀는 성심껏 그들을 가르치고, 함께 한다. 

“이 곳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곳이면 좋겠어요. 세상이 메마르고 삭막하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제가 여기서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요. 음악 연구도 하고, 함께 여기서 연주도 하고, 그걸 지역주민들과도 함께 나누고요.”

수처작주. 어디든 주인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피아노 앞에 자라는 포도나무처럼, 스스로 잘 자란 나무는 그 자체로 풍성한 삶을 이루고, 다른 이들에게도 안식과 양식을 준다. 그녀가 아트카페 테레사에서 연중 열었던 연무장길 음악회는 '시즌2'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주소 성수1가1동 연무장길 12 대한피아노 
·전화 010-5365-3854 

【원동업^성수동쓰다 편집장】
3bigpictu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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