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 성광일보
  • 승인 2020.10.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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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김 석/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프로이트는 인간이 경험하는 보편적 고통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자연이나 외부 환경이 주는 물리적 고통이다. 선사시대 원시인들은 생존 자체가 절박한 과제였을 것이고, 사나운 맹수나 괴물, 천둥과 번개, 화재와 홍수 등 이해하기 힘든 자연재해가 초래하는 끔찍한 공포에 늘 시달렸을 것이다. 환경이 주는 폭력은 인간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강력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극복되기 시작한다. 벌벌 떨며 자연을 신으로 숭배하던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면서 만유의 지배자가 된다. 두 번째 고통은 육체로부터 오는 온갖 질병과 괴로움이다. 인간은 야수들에 비하면 초라하고 약하며, 만성적 배고픔과 스트레스를 받고 힘겹게 살았기 때문에 체구도 빈약하고, 평균 수명도 짧았다. 육체적 고통을 다스리기 위해 인간은 술이나 다양한 흥분제를 만들어 활용하기 시작했고, 공격성과 내적 긴장을 다양하게 발산하기도 하고, 통제도 하면서 견딘다. 의식주는 두 번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보호막이다. 세 번째 고통은 정말 크고, 벗어나기 힘든데 그것은 사람끼리 주고 받는 고통이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다투다 보면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하고, 홉스가 말한 대로 ‘만인의 만인의 투쟁’이 가속화되면서 사회 속에서 항구적 두려움과 불신에 시달렸을 것이다. 세 번째 고통이 가장 큰 이유는 피곤하지만 인간은 타인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고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가족이나 지역 같은 친밀한 관계다. 낯선 이들과 갈등이야 어쩌다 발생하고 회피할 수 있지만 공동체 성원끼리 폭력이나 싸움이 생기면 그 고통은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고슴도치들 예를 들어 세 번째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을 설명하기도 한다.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극복하고자 서로 몸을 부대끼다 보니 가시에 찔려 다시 거리를 두자 추위서 힘들었다. 가까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요령이 생겨 이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1930년에 쓴 『문명 속의 불만』이란 책에서 인간이 자연이나 육체로부터 오는 고통을 다스리고 행복을 얻고자 사회를 만들었지만 그것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문명은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였고, 사회를 만들면서 인간은 지배와 피지배뿐 아니라 다양한 상호 갈등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겪는 신경증은 문명을 향유하는 대가로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것이라고 부연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믿음직한 보호막이자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자명한 진리다. 공동체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하는 고슴도치 무리와 비슷하다. 가까우면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지만 가시로 찌를 수도 있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면서 가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지고 있다. 전에는 주로 밖에서 활동을 하고, 집은 잠을 자는 공간의 의미가 커서 충돌할 일도 적었다. 그런데 이제 재택근무나 비대면 원격수업이 일상화되면서 친밀해야 할 가족 관계가 새로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해 발표한 통계를 보니 코로나19 이후 가정 내에서 가족 갈등을 경험한 비율이 34.4%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대상은 배우자가 가장 많았지만 자녀도 많았고, 그로 인해 특히 여성 응답자의 우울감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통계를 보고 혼자 사는 게 좋다고 말하거나, 인간관계를 부정적으로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은 구조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대면접촉 기회가 오랫동안 박탈되다 보니 예년의 당연했던 만남에 대한 향수와 사람관계가 주었던 긍정성에 대한 깨달음도 문득 커진다. 대학에서도 일상적으로 해왔던 MT, 대규모 수업, 각종 행사와 미팅, 해외 연수 등이 중단되고, 수업도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그로 인한 한계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학생이나 교수들이 많다. 사실 온라인 강의는 내가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서 편할 것 같지만 대면 강의보다 훨씬 힘들다. 침묵하더라고 강의실에서 마주한 학생들 존재 자체가 교수에게 힘을 주고, 수업을 활성화하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모여 잡담도 하고, 회의도 하면서 부대끼는 과방이나 동아리 방, 대학의 여러 공간이 은연중 이들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굳게 해주고, 대학의 모습을 만들어준 거름 역할을 해왔음도 알게 된다.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자주 보면 피곤하지만 거울을 보지 않으면 우리 모습을 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없다. 향후 온라인의 비중이 점점 커질 것은 분명하지만 성급한 예측처럼 오프라인 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인간은 서로의 살냄새와 촉감을 공유하며 보이게 보이지 않게 서로가 서로에게 침투한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살의 존재론’을 통해 세계 내 존재인 인간의 몸과 상호작용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언택트를 대세처럼 수용하기 보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인간관계와 상호작용의 방식을 창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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