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과 풍수 145. 동 양 오 술. (용대기 15)
동양학과 풍수 145. 동 양 오 술. (용대기 15)
  • 성광일보
  • 승인 2020.10.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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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老泉) 김흥국/광진투데이편집위원장. 삼오지리학회장역임. 現. 한국현공풍수학회장. 신화씨엠씨(주)대표.
김흥국
김흥국

중화족이 우리의 용봉문화 중에서 용문양을 차용해서 황제의 권위를 세우는데 이용했다고 지난시간 피력했다. 애시 당초 중화족에는 용이란? 그림자도 없었으며 이를 화족에 알린 인물은 치우천황으로 치우군은 용을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용대기 높이 세워서 중원을 휩쓸었다. 그래서 화족들은 용 문양을 보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멈추고 도망가기 바쁠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중원의 위정자들은 이러한 백성의 심리를 정권 유지차원에서 제왕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어느 왕조에서 처음 도용했는가? 이를 밝혀보는 것이 용에 대한 출발을 정확히 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중국의 상고사를 상식선에서 몇 줄 나열해 보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요순시대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말하는 신화 속의 이야기지만 현재 세계 최고의 두뇌게임이라는 바둑은 요임금이 우매한 아들 단주(丹朱)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내용을 보면 요순시대가 무작정 전설이나 신화로만 몰수 없는 실체성을 가진다. 이러한 요순시대를 이어 우왕이 하(夏)나라를 세운다. 夏나라는 중국의 국가형체를 갖춘 최초의 나라지만 기록만 있지 잔존물은 없다.

하지만 하나라는 오늘날 중국을 화하족이라 부르는 근거가 된다. 하나라의 夏와 중화의 華가 결합되어 화하(華夏)족이란 한족(漢族)의 명칭이 탄생한 것이다. 또 다른 명칭인 지나족(支那族)은 하은(상)주시대를 지나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한 진시황의 秦이란 국가명칭이 라틴어의 qin이 되고 qin은 영어식 발음으로 china로 변하였으며 이는 다시 한자어 지나(支那)가 되어 지나족으로 변했다. 오늘날 인도지나반도 등이 그 사례이다.

결국 화하족이나 지나족은 한족의 옛 이름들이다. 그리고 china는 송나라시절 유럽으로 도자기를 수출하면서 중국 도자기를 china로 불렀기에 도자기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각설하고, 치우천황과 용문양이 한족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면 어느 왕조에서 배달민족의 용문양을 도용해 갔는지 추적을 해 보자.

최초에 치우천황을 역사의 기록에 남긴 화하족은 주나라다. 봉신방 내용에 의하면 동이족이 세운 은상의 뒤를 이어 주나라가 새로이 건국하였을 때 우리에게는 강태공이라고 친숙히 알려진 태공망 여상이 천지사방의 팔신을 모시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팔신(八神)의 명칭을 나열하면 우선 천지인 삼신인 천주(天主), 지주(地主)와 사람을 대표한 인주(人主)로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을 병주(兵主)로 모셨다, 그리고 양과 음을 양주(陽主), 음주(陰主)로 모시고 세월을 말하는 월일시를 월주(月主), 일주(日主), 사시주(四時主)로 모두 천지시공의 자연을 모셨지만 인간으로는 유일하게 치우천황을 모신 것이다.

그리고 주나라가 망해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다. 이 때 진나라도 주나라와 똑같은 천지사방의 팔신을 모시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봉선서(封禪書)의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리고 꼭 기억해야할 내용은 우리의 상고사인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중에, 신시본기에 의하면, 천주 사삼신 병주 사치우 삼신 위천지만물지조야 (天主祠三神 兵主祠蚩尤 三神爲天地萬物之祖也) 하늘의 천주로는 삼신을 제사하고, 군신으로 병주는 치우께 제사하니 삼신은 천지만물의 시조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치우위 만고무신용강지조 작대무구화수 (蚩尤爲 萬古武神勇强之祖 作大霧驅水火)로 치우는 만고의 무신으로 용맹의 시조가 되어 큰 안개를 만들고 물과 불을 부리니 항위 천하융사지주 (恒爲 天下戎事之主)로 항상 천하의 전쟁 신으로 모셨다는 내용이 중국사서와 우리의 신시본기에 똑 같이 기록되어있다.

중국의 주나라와 진나라가 치우천황을 융사지주인 전쟁의 신으로 모셨다는 내용이다.

그 어디에도 친우천황은 있어도 용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결과는 진시황의 병마용 갱에도 용에 대한 상징이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이 용을 황제의 권위로 사용한 것은 진나라 이후에 생겼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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