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과 풍수> 동양오술 (용대기16)
<동양학과 풍수> 동양오술 (용대기16)
  • 성광일보
  • 승인 2020.11.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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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老泉)김흥국 / 광진투데이 편집위원장, 삼오지리학회장역임, 현재 한국현공풍수학회장, 신화씨엠씨(주)대표
김흥국
김흥국

지금 우리는 치우천황의 용대기를 중심으로 중국 땅에 언제부터 용이 탄생해서 황제의 권위의 상징이 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적을 통해서 용의 근본이 언제 시작됐는지를 밝히고 아울러 치우천황이 어떻게 도깨비로 변했는지도 밝힐 계획이다.

지난연재의 내용은 중국의 상고시대에는 용에 대한 흔적도 없었으며, 진시황 병마용 갱에서도 용의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 상고 시대 유물에는 옥으로 제작된 용의 흔적이나 청동거울에 그려진 용 그림이 보인다. 이것은 은상의 유물로 은상은 우리 배달민족이 세운 나라이기에 동이족의 자손들이 사용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증거는 은상에서 전해지는 문양이나 유물들이 홍산(紅山)문명의 유물들과 흡사하기에 이러한 주장을 강력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결과로 중화족 고유의 문화에는 진시황이전의 제왕들의 유물이나 복식에서 용에 관한 흔적들을 찾기 어렵다. 이는 당시의 제왕들은 용을 자신의 상징이나 권위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그럼 진시황의 뒤를 이은 한나라를 뒤져보자 한대의 제왕들은 용을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한 흔적이 있는가? 사용했다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응용했는가?
지난번에 간략하게 중국의 상고사를 말해 보았다 오늘은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건국되는 과정을 조금 말해보자.

한나라의 건국역사를 말하는 소설로 초한지가 있다. 초한지는 삼국지와 더불어 중국의 2대 대하역사소설이다.
그리고 전통놀이의 두뇌게임으로 우리는 바둑과 장기를 말한다. 바둑이 요임금에서 비롯했다면 장기의 발생은 한나라의 건국 과정에 바탕을 둔다. 
장기를 모르는 독자님을 위해서 아주 간략히 소개하면 漢이란 붉은 편과 楚라는 푸른색의 양쪽 왕들이 장기판 깊숙이 자리 잡고 상대방 왕을 먼저 잡으면 끝나는 게임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漢은 한고조 유방을 말하고 楚는 천하영웅 초패왕 항우를 말한다.

두 영웅들의 전쟁을 두뇌게임으로 만든 놀이가 장기판이다.
본시 중국은 붉은 색을 좋아해서 漢은 붉은색으로 글자체는 단정한 해서체로 표시하고 주로 고수나 연장자가 잡는다. 그리고 초는 푸른색의 초서로 조각해서 하수나 연하자가 선수로 먼저 둔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태극기의 색상과 같이 붉고 푸른 두 가지 색을 쓰지만 중국은 붉고 검은 두 가지 색으로 음양철학을 반영하여 사용한다. 이것이 두 나라 장기의 차이점이다.
한고조 유방은 갖은 고초와 역경 속에서 역발산기개세(力發山氣蓋世)라는 천하장사 항우에게 전략과 지모로 이겨 한나라를 세운다. 

역발산기개세란? 힘은 산을 뽑아들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항우장사란? 세상에서 가장 힘쎈 장사를 말한다. 그리고 필자의 생각으로도 항우는 역사상 가장 힘껜 장수라고 생각한다. 

지난 세월은 과거로, 결과만 말한다면 무척 간단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는 모자이크처럼 숨어 있는 무수한 난관과 고난들이 찬란하게 숨겨있다.
한고조 유방은 시골 무지렁이 출신의 흙수저이며 한량으로 손색없는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진시황이 죽고 나라가 어지러운 때 뜻한바가 있어 군사를 일으켰지만 자신 보다 20여년 어린 귀족출신으로 화려한 전력과 수많은 장졸을 거느린 초패왕 항우(項羽)에게 갖은 고초를 겪으며, 때론 목숨을 구걸하기도 하고 신하를 자처하기도 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절처봉생 하듯 매 순간 역경을 이겨내고 한나라를 건국한다.

이러한 무수한 역경 속에서 한고조 유방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가 믿는 구석이란 천하융사지주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인 것이다.
한고조는 중요한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꼭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에게 제를 올린다. 이 전투에서 꼭 승리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마지막 전투인 풍패 전투에서는 전쟁에 승리하면 꼭 치우사당을 크게 지어 제대로 모시겠다고 맹세를 한다.

한고조 유방이 평생을 치우천황을 전쟁의 신으로 의지하고 믿고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다녔기에 황제가 되고 난 후에도 치우천황을 극진히 모시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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