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란교의 마음산책> 보이는 대로 보니 참 예쁜 것도 많구나!
<송란교의 마음산책> 보이는 대로 보니 참 예쁜 것도 많구나!
  • 송란교
  • 승인 2020.11.1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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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논설위원
송란교

주변을 둘러보면 코스모스나 들국화가 가을바람에 살랑대고 쉬어가는 조각구름도 싱글벙글 상쾌함을 보태고 있다. 길게 드러눕는 석양의 포근함처럼 자연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선물을 나누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넘치는 탐욕도 부족하다고 외친다. 

보고 싶지 않은 흠을 있는 대로 들쑤셔서 덕석위에 고추 말리 듯 펼치고 있다. 듣고 싶지 않은 흉을 확성기를 틀어 놓고 온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닌다. 
법대로 힘대로 하는 완력(腕力)이 언제부터 우리사회를 지배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요즘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대세가 된 듯하다. 반면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절제는 외면되고 있다. 염치는 없어지고 올바름은 무시되고 있다. 

정보의 객관성과 상관없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도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편견, 왜곡, 색안경, 필터링, 고정관념, 확증편향이라는 단어가 결코 낯설지 않다. 
사물이나 현상은 특정한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의도를 만들어 반영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나에게 이익이나 권리가 있다고 하면 의미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반대되는 것들을 거부하는 마음도 함께 생긴다. 

나의 가치를 높이려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게 된다.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은 오직 나만의 의견이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모호한 상황에서 일부의 정보만을 받아들여 성급히 판단함으로써 범하게 되는 선택적 지각오류(選擇的知覺誤謬, selective Perception)에 빠지거나, 사물을 보는 습성 또는 그의 고정관념에 어긋나는 정보를 회피하거나 그것을 자기의 고정관념에 부합되도록 왜곡시키는 방어적 지각오류(防禦的知覺誤謬, Perceptual defense)에 빠져 완력을 휘두른다.
통제와 강압은 자유를 훼손하고, 남용되면 공동체가 파괴된다. 

요즘 시대의 흐름을 보면 미래를 생각하고 전체를 아우르려는 마음이 가을하늘의 얇은 구름만도 못한 듯하다. 마음 가는 곳으로 몸도 따라 간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도 마음을 따라 가는 것일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원하지 않은 것들을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먹어야 하고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학》의 〈정심장(正心章)〉편에서“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則不得其正, 有所恐懼則不得其正, 有所好樂則不得其正, 有所憂患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이른바 수신(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하는 이유는 몸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이것을 일러 수신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마음이 없으면 핑계만 보이고 마음이 있으면 길이 보인다.' 어떤 것에 심취되거나 몰입되어 있어도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논어》의 〈술이(述而)〉편에서 “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공자께서 제나라에서 소(韶) 음악을 듣고 3개월 동안이나 고기 맛을 모르고 밥을 먹었다)라고 하였다. 
이 경우는 음악에 심취하여 먹어도 그 맛을 모르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저만치 걸어두면 코 앞 돌부리에도 걸린다. 

보이고 보여 지는 것들도 마음의 크기, 열정의 뜨거움, 욕망의 간절함, 의지의 강약, 느낌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것은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범주 안에서 인식한다는 뜻일 게다. 진실은 하나이지만 거짓은 수 만 가지다. 
농민은 팔 것이 없고, 상인은 팔릴 것이 없고, 서민은 살 것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각자가 내 입장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편만 보이고 네 편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사랑하면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증오하면 모든 것이 나쁘게 보인다. 의심암귀(疑心暗鬼,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지도 않은 귀신을 낳는다)를 멀리해보자. 
진정한 가치는 바른 마음으로 '봐야 할 것'을 보는 것이다. 가을꽃들이 바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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