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줌마, 이모님, 할머니 ④
<소설> 아줌마, 이모님, 할머니 ④
  • 성광일보
  • 승인 2020.11.11 11: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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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 / 소설가
윤 정
윤 정

“벌써 다녀오셨어요? 왜 마스크까지 일일이 사러 다니세요. 저는 대량주문해서 쓰는데 주문해달라고 하세요.”
“뭐든지 일일이 내가 사러 다녀야 돼. 말해도 소용없어.”
“애들 먹을 음료수, 아이스크림도 많이 사오셨네요. 탄산수가 안 좋다는데.”
“좋아하니까 사주는 거지. 깨는 볶았어요?”
“네, 다 볶아서 깨소금은 양념통에,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었어요.”
“다 볶았다구? 그걸 다? 씻었어요?”
“깨끗해서 안 씻었는데 씻은 거 아니에요?”
“아니, 깨 안 볶아봤어요? 씻어야지. 그리고 왜 다 볶아요?”
“볶으라고 하셨지 얼마 볶으라고는 안 하셨잖아요.”
“물어봐야지요. 얼마나 볶냐고!”
“아니 별것도 아닌 일로 화를 내고 그러세요?”
 “별것도 아닌 것? 물어봐야지, 모르면!”
“미리 말씀해 주셔야지요."
“먼저 물어봐야지. 난 몰라. 맘대로 다해!”
“네, 푹 쉬세요.”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가 보다. 아무리 집에서 깨를 볶아 본들 남의 집에서 볶은 경험이 없기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래도 희주가 끝까지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에 이모님이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깨를 볶다가 불호령을 맞은 희주가 씩씩대며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이모님이 들어왔다. 

자기가 다혈질이라서 그랬다고 하면서도 미리 물어봤어야 했다고 덧붙인다. 
다른 때 같으면 풀었겠지만 같은 도우미 처지에, 실수를 한 것 가지고 으르렁대니 희주도 화가 안 풀렸다. 자기 손크다고 그렇게 자랑하더니 2리터가 뭐가 많다고 호령이냐 말이다.
두 내외가 없어 홀가분해진 분위기에서 아이들 역시 치킨을 졸라, 포화지방을 걱정하며 주문해 먹이고 식탁에서 이모님과 마주 앉았다.

“내가 자기한테 화를 내는 것도 혹시 애 엄마에게 흠 잡힐까 그런 것도 있어."
 “이해는 하지만 저한테 짜증을 많이 내시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수족처럼 일하시면서 병도 얻었으니 이제 몸을 돌보셔야지요.“
“나도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라오. 고향에서 돈 잃고 사람 잃고 무작정 서울로 와서 들어 온 곳이 여기요.”
“10년 이상 아기 때부터 계셨으니 가족과 마찬가지시네요.”
“애들도 할머니나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어찌 보면 엄마보다도 좋아하지요. 같이 나가면 친할머니로 알기도 해요.”
“오래 하시다 보면 좋은 점도 있지만 너무 잘 알아서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차차 알겠지만 이 집이 무척 까다로운 집이라 잘하다가도 하나 눈 밖에 나면 불호령이 떨어져요. 상처 입어도 참고 산 세월이었지요.”
“이모님이 그렇게 완벽하게 몸이 부서져라 일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따라가요? 저는 정원 관리는 못 한다고 하고 왔는데 이모님이 가끔 풀 뽑고 잔디 관리하시는 것 보면 신경 쓰이기도 하고.”
“눈으로 보면 가만히 못 있어서 그래요. 애 아빠 정원에 나가면 밤이 돼도 저녁 먹을 생각을 안 해요. 그럼 나가서 도와야지 어떻게 해요?”
“이런 집에 정원을 만들어 놓고 관리사를 안 두면 힘들지요. 돈을 꽤 아끼나 봐요.”
“다른 데 돈이 많이 드니 저거라도 아끼는 거겠지.”
이모님이, 강아지까지 여섯 가족의 손발이 되어 '가족 같은 노예'로 아바타처럼 일을하다가 나이 들어 고향에 가려하니 금의환향은 고사하고 병까지 얻어간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한 건 이 집 식구들이다. 이모님이 가고 나면 희주가 있더라도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크다는데 아예 블랙홀 같이 느껴질 것이다. 
운동을 끝낸 안주인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커피를 내리고 식탁으로 와서 앉았다.
“할 만하세요?”
“뭣 모르고 왔다가 점점 어려워지네요.”
“뭐가 어려워요?”
“할머니 시중을 드는 것은 모르고 왔는데 목욕까지...”
“몇 번 하셨지요? 어머니 목욕은 내가 시킬게요. 다른 것은 없지요?”
“한 번 했어요. 정원 관리는 사장님이 하신다고 해서 온 거고, 다른 건 없어요.”
“그럼 두 가지 빼고는 다 하셔야 돼요.”

사실 할머니 목욕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몸집이 비대하여 둘이 들어가기 어려운 샤워실에서 땀 한 바가지 쏟고 나오면 된다. 그런데 간병인 수당을 얼마 더 주면 모를까, 희주가 간병인으로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이모님이 안주인에게 일이 할 만해요, 괜찮아요, 이런 말 말고 다소 힘이 든다고 말하라고 한 것이 영향을 주었다. 
이모님은 요즘 급여에 비해 자신의 일이 많다고 생각해서 애들이나 할머니에게 자주 짜증을 내고 큰소리를 쳤다. 가끔 희주에게 그 화살을 날리는 때도 있어 같은 처지의 도우미에게 갑질 아닌 갑질을 당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모님 처지가 이해되면서 세월이 변하고 인심이 변했는데 왜 저러고 살았을까 안타깝기도 했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박봉이라고 생각하면 요구를 하지 그랬느냐고 하면 다 그런 줄 알았는데 희주가 오고부터, 이것도 안 한다, 저것도 못 한다 하니 비교가 되면서 더 화가 난다는 것이다. 

희주 급여에서 20만 원을 깎은 액수를 받느냐고 하기에 그렇다고 하기를 잘했다. 제대로 급여를 밝혔다면 더 난리가 날 일이었다. 면접 때 안주인도 그랬다. 이모님이 그렇게 예뻐하던 애들 챙기는 것도 귀찮아하고 짜증을 부린다고. 

6일 근무에 하루 쉬는 희주가 받는 급여에 비해 7일 근무하는 사람이 훨씬 덜 받으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루라도 어디 가서 쉬라고 해도 친척네조차 가지 않았다니 고스란히 7일을 쉬지 않고 일한 셈이다. 젊은이라도 몸에 탈이 날 일이다. 이래저래 스스로 자초한 일임도 부정할 수가 없다.   

할머니가 보호센터에서 하루 목욕하고 집에서 목욕을 두 번은 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한다던 안주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모님이 어디 목욕시키나 보라고 하더니 과연!
아침마다 식사를 챙긴 후에 옷을 갈아입힐 때 마스크를 쓰는데도 올라오는 역한 기운을 견딜 수가 없다.  한번 안 한다면 안 하는 성격의 희주는 목욕 대신 임시방편으로 수건에 물을 묻혀 위아래 닦고 옷을 입혔다. 

발가락 사이사이 닦을 때마다 역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 엄지발톱은 살을 파고들며 단단해져 삐죽 올라오고 보통 깎기로는 제거되지도 않을 두꺼운 변형 발톱이다. 버린 양말 중에 엄지발가락만 구멍이 나 있었던 이유이다. 

누가 잘못 깎았는지 피가 말라붙어 있기도 했다. 아프겠다고 혀를 찼더니 할머니는 '괜찮아요, 괜찮아요.'를 반복한다. 복부 비만으로 허리를 구부리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깎았을 리는 없고 안주인도 더욱 아니니 보호센터에서 깎았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제가 온 후로 따님이 한 번도 안 오네요. 보고 싶지 않으세요?”
 “누구요? 딸이요? 안 보고 싶어요. 다 일이 있겠지요. 보고 싶다고 전화 안 해요.”
“가족사진 보니까 할머니 얼굴이 참 행복해 보였어요. 이제 혼자 지내다시피 하시니 외로우시죠?”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지요. 다 저 살기 바쁘니까.”
 “곧 따님이 엄마 보러 올 거예요. 준비됐으니 노란 버스 타러 나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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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2020-11-12 13:44:36
저런 집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피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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