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원칙 지키기와 융통성
<수필> 원칙 지키기와 융통성
  • 성광일보
  • 승인 2020.11.11 1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운식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성동문인협회 이사
최운식
최운식

어떤 일을 할 때에는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은 상황에 따라 법으로 정하기도 하고, 사회적인 관습이나 규범, 또는 종교적인 교리로 행해지기도 한다. 이 원칙은 보다 나은 생활환경을 만들고, 다수의 이익이나 공동의 선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져야 그 원칙을 정한 본래의 뜻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원리원칙 만을 내세우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원칙을 지키되, 그 일의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처리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융통성'이라고 한다. 원칙만을 고집하면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고, 융통성이 지나치면 '줏대 없는 사람', 또는 '이중적인 사람'이 된다. 

친구가 카톡으로 보낸 글 “원칙과 배려 사이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일과 융통성을 발휘하는 일에 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70세 노인이 생일날 차를 몰고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와 보니, 경찰관이 주차위반 범칙금 고지서를 쓰고 있었다. 그가 경찰관에게 치통이 심하여 제대로 주차를 하지 못한 사정을 말하고, “오늘이 내 생일인데 '재수 없는 70회 생일'이 되지 않도록 좀 봐 주세요.”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범칙금 고지서를 써서 주고 떠났다. 그는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고지서를 받아들고 차에 올랐다. 그가 벌금이 얼마인가 보려고 고지서를 펴보니, '생신을 축하합니다. 어르신!' 하고 적혀 있었다. 

경찰관이 주차위반 차량에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은 법으로 정한 원칙이다. 그러나 경찰관은 70번째 생일을 맞이한 노인이 치통으로 급한 마음에 길가에 차를 세웠으니 좀 봐 달라는 말을 못 들은 체하기 어려웠다. 

그는 노인이 주차위반을 하여 교통의 흐름을 크게 방해한 것도 아니어서, 그대로 보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처리하나 보려고 지켜보고 있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범칙금 고지서를 발부하면서, 범칙금 액수 대신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써서 주었다. 그가 융통성을 발휘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는 범칙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노인과 구경꾼들에게 주차위반을 하면 범칙금을 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주면서도, 노인과 그 가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생일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의 훈훈한 마음은 노인과 그 가족들의 마음에 전달되어 경찰관을 신뢰하는 마음을 갖게 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주차위반 범칙금 수입을 올리는 것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것이라 하겠다.

내가 채록한 옛날이야기 중에 “며느리의 효성을 알아준 판결”이 있다.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생일에 술을 담갔다가 드렸다. 
시아버지는 이웃집에 사는 친구 생각이 나서 그를 청하였다. 술을 본 이웃노인은 금주령을 위반하였다고 꾸짖고, 이를 원님에게 고변(告變)하였다. 
원님은 세 사람을 불러 문초하였다. 며느리는, 약주를 좋아하시는 시아버지가 연로하셔서 내년 생신을 맞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금주령을 위반하였으니, 처벌하여 달라고 하였다. 

시아버지는, 약주를 좋아하는 자기 때문에 생긴 일이니, 자기를 벌하고 며느리는 용서해 달라고 하였다. 
이웃노인은, 금주령을 위반한 것을 보고,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 고변하였다고 하였다. 

조사를 마친 원님은, 시아버지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며느리에게는 금주령을 위반한 죄로 벌금 천 냥을 선고한 뒤에, 효성을 치하하는 상금 천 냥을 내린다고 하였다. 
이웃노인에게는 충성심이 높다고 칭찬한 뒤에, “준법정신을 발휘하여 금주령 위반 사례를 하루에 세 건씩 고변하라. 그렇지 못하면 볼기 석 대를 때리겠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에서는 융통성 있는 판결을 한 원님의 지혜가 돋보인다.

유가(儒家)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일곱 살 이상의 남녀는 한 자리에 앉지 않음)'과 '남녀는 물건을 주고받을 때에도 직접 손을 맞대지 않는 것'을 성인 남녀가 지켜야 할 예(禮)라고 하였다. 
이를 곧이곧대로 지킨다면, 형수가 물에 빠져도 손을 잡아 건질 수 없다. 
이에 대해 맹자는 물에 빠진 형수의 손을 잡아 건지는 것은 '권도(權道)'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역시 원칙 지키기와 융통성에 대한 좋은 가르침이라 하겠다. 
신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 외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찾아온 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원리주의자들인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냐고 따져 묻는다. 
이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마가복음 3:1~6] 이 역시 교리의 준수도 좋지만,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해야 함을 말해 준다. 

모든 일에는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주변 상황을 살펴 법이나 규범, 교리의 실천을 잠시 뒤로 물리고, 상황에 맞게 처리하는 융통성도 있어야 한다. 
이럴 경우에 융통성은 재량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말아야 하고, 원칙을 뒤로 물리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그에 못지않은 유익이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 융통성은 불법을 저지르게 되기도 하고, 더 큰 부작용을 낳게 할 수도 있다. 원칙 지키기와 융통성 사이에는 이런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최운식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성동문인협회 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발행일 : 2010-09-01
  • 발행인 : 이원주
  • 편집인 : 이원주
  • 회장 : 조연만
  • 편집이사 : 김광부
  • 논설주간 : 김정숙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
  • 통신판매 등록 번 제2018-서울광진-1174호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