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자그마한 실패 하나도 인정하지 못하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왠만한 실패 정도는 잘도 인정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는 시대에는 어떤 실패도 용납되지 않았기에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혹 실패를 하면 그 실패에 대한 기억을 오래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패를 인정하는 시대에는 새로운 미션에 대한 도전에서 실패가 그리 중요하지 않기에, 실패를 하더라도 그 실패가 오래 기억에 남지 않았다.
바로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는 시대와 실패를 인정하는 시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패를 오래 기억하고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100여 년 전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자이가르닉과 공동으로 ‘끝마치지 못하거나 완성되지 못한 일은 마음속에 계속 떠오른다.’는 이론(자이가르닉 효과)을 제시했다.
즉,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는 어떤 일에 집중할 때 끝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게 되거나 실패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긴장이 지속되다 보면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게 된다는 이론이다.
자이가르닉 효과에서 끝마치지 못하거나 완성되지 못한 일을 설명할 때, 가장 극적인 방법은 크게 실패하는 것이다
예컨대 실패한 첫사랑을 더 오래 기억하는 심리현상이 자이가르닉 효과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자이가르닉 효과가 앞서 언급한 실패를 인정하지 못한 시대에 실패가 오래 기억된다는 점과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실패가 오래 기억되지 않는 시대, 즉 실패가 인정되는 시대에는 자이가르닉 효과가 시대에 맞지 않는 이론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우리 주변을 보더라도 실패하여 완성되지 못한 것들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실패 자체도 하나의 마침으로 보고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실패를 인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자이가르닉 효과에 의해 실패하여 완성하지 못한 것들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실패를 기억조차 하지 않고 성공사례만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기업이나 개인, 특히 몇몇 정치인들은 아직도 자이가르닉 효과에 함몰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 일일드라마가 매회를 끝낼 때, 중요 장면에서 멈춤으로 시청자들이 완성되지 않은 내용을 오래 기억하면서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트릭을 쓰지 않고, 매회 마다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드라마에 적용해도 시청자들이 오래 기억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실패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면서부터 자이가르닉 효과는 이미 이론으로서 힘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실패한 첫사랑을 기억조차 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단상] 2020년도 연말을 맞이하면서 완성하지 못했거나 실패했던 기억들을 오래 간직하는 자이가르닉 효과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