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줌마, 이모님, 할머니 ⑤
<소설> 아줌마, 이모님, 할머니 ⑤
  • 성광일보
  • 승인 2020.11.2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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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소설가.성동문인협회 회원
윤정 / 소설가
윤정 / 소설가

정신이 혼미하여 버스에서 내리면서 '어디 가요? 집에 가요? 여기 내 집이 아닌데.'하는 할머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화가 된다. 

고맙다며, 양말을 신기는 희주 등을 계속 쓰다듬는 이 할머니를 어쩌란 말이냐! 굼뜨는 할머니 행동에 경상도 억양으로 화부터 내고 보는 이모님 대신 나긋나긋한 서울말로 배웅하고 마중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1년 엄마를 모신 정과 경험이 할머니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희주의 마음가짐이 됐을지도 모른다. 버스 타러 갈 때, 집에 도착하는 내내 할머니 손을 놓지 않았던 희주를 기억이나 할까. 

희주가 베이비시터를 시작하게 된 것은 35년의 교직 생활을 끝내고 명예퇴직을 한 후부터이다. 희주가 베이비시터를 한다고 하자 연금 나오는 사람이 쉬면서 여행이나 하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평소에도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직장생활 외에는 밖에 나가는 것을 즐기지 않던 희주는 더욱 두문불출형이 돼가고 있었다. 
집에 있다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집안일이라 오전 내내 집안일에 매달렸다. 방치했던 집안 꼴이 되어가는 모양을 보며 이 아까운 힘을 무보수로 쓸 게 아니라 보수를 받고 일하자고 생각했다. 

가는 곳마다 연금 받을 텐데 궂은일을 왜 하느냐고 물었다. 빈둥빈둥 놀 성격이 아니고 여행하는 것 좋아하지도 않고 봉사활동을 할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더구나 한가하게 연금 빼먹으며 살 형편이 아니었다. 

퇴직 기념으로 구입한 상가의 대출금을 갚아야 했다. 막차를 타도 유분수지 이 시국에 상가를 분양받고 은행의 노예가 되다니! 이미 벌어진 일이라 시간제 베이비시터직부터 구했다. 

찔끔찔끔 몇 년 하다 보니 연금만큼 급여를 주는 입주가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니 잠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교사하던 연금 받는 엄마가 입주 도우미를 한다니 애들은 반대하며 말렸지만 희주를 이길 수 없다. 길길이 뛰는 큰애와 아픈 속을 드러내지 않는 두 아이를 달래며 입주를 준비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상투적인 말 때문이 아니라 희주는 눈꼽만큼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는 가끔 생활력이 강하다는 말로 포장되기도 한다. 

전직 교사였다는 경력이 신뢰감에서는 득이 되기도 하고 만만치 않다는 선입견에 실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인 경우는 환영을 받았다. 가는 곳마다 하루 이틀이면 아이들과 환경에 적응했지만 가장 영향을 줬던 것은 안주인, 애 엄마와의 관계이다. 

성실하고 꼼꼼하기는 하지만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떠올리기엔 세월이 흘러 엄마들의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향한 진정성 앞에 먼저 아이들이 마음을 열었다. 엄마들이 보기에 희주에게 미흡한 점이 있었겠지만 받아 준 사람들은 다 인성을 중심으로 한 엄마들이었다.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보다 가사 중심인 엄마들은 희주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그 기운이 전해서 희주가 먼저 관두겠다는 의사 표현을 했다. 

세면대에 낀 묵은 때와 하수구 안에 낀 곰팡이, 가구 근처에 몇 년 방치된 오점 등은 희주에게 청소의 보람을 느끼게 해줬지만 눈에 띄지 않는 하찮은 거였다. 

평범한 일상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환경보호라고 생각하여 철저한 분리수거를 해온 희주에게 사람들은 별로 점수를 주지 않았다. 이모님도 그랬다. 이런 부자 동네는 그렇게 안 한다고, 쓸데없이 철저히 한다고 핀잔을 주고 가족들이 아무렇게나 내던지면 다시 쓰레기통을 뒤져 분리하는 것이 희주 일이었다. 

적당한 급여와 일에 동의를 하고 들어간 집이라고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할수록 새로운 일이 생긴다. '강아지, 고양이 괜찮으시죠?'하면 강아지와 고양이 수발 다 들어야 하고, '할머니 주간보호센터 가서 할 일이 없어요.'하면 적어도 아침 식사와 옷 갈아입히기, 목욕 정도는 해줘야 한다. '정원 관리는 아저씨가 하세요.'하면 두세 시간은 쭈그리고 앉아서 풀 뽑고 일어날 때, 아이고 허리야, 무릎이야 하고 앓는 소리를 내야 한다. 

일을 그만 두는 일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항의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펜트하우스에서 나올 때는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6일 근무를 끝내는 날은 토요일이었다. 첫 주말은 안주인을 대신하는 이모님 말대로 오후 4시에 나가서 다음 날 4시에 들어갔다. 무슨 휴일이 그러냐고 30시간은 있다가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딸의 항의를 들으면서 무슨 조치가 있겠지 하고 말았다.

두 번째 토요일은 청소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가란 말에 두 시에 나왔다. 가족들이 콘도에 갔으니 다음 날 오기 전에 들어오란다. 두 시에 들어오마고 나갔다. 

다음 날 희주가 도착하기 전에 가족들은 이미 들어와 있었고 이모님이 가지고 간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만 쏙 빠져나간 가족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고 이모님 혼자 개인 소지품과 빨랫감을 챙기고 있었다. 희주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미안해진다. 주인보다 미리 와있으라고 했던가?

세 번째 토요일에 희주는 퇴근 시간을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안주인은 말해주지도 않고 이모님에게 맡기니 정실장에게 물어봐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늦게 나가면 늦게 들어오면 되겠지 하고 반찬 몇 가지하고 할머니 저녁까지 챙긴 다음에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이제 혼자 장을 보고 음식을 해보라는 말에 어제 사온 반찬거리 중에서 얼큰한 거 좋아한다는 남자 식성에 맞게 고춧가루 듬뿍 넣은 애호박조림과 어묵조림, 고등어무찜을 했다. 

대패삼겹살은 아이들이 먹겠지. 미용실에 간 이모님이 오시면 반쯤 익힌 애호박조림을 더 익히고 간을 적당히 보고 냉장고에 있는 들락날락하는 밑반찬을 곁들여 잘 차려 올리겠지. 

주방에 들어온 안주인이 왜 안 가느냐고 눈을 동그랗게 떠서 '늦게 나가야 늦게 들어오지요.' 하고 웃었다. 
토요일마다 비가 쏟아진다. 7시에 나와서 분리수거를 하고 택시를 호출했다. 짐은 가방 하나지만 이 시국에 대중교통보다는 나을 것 같았고 피곤한 몸으로 전철 타기가 싫었다. 

오나가나 일이라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정리 잘하고 있겠다 하던 애들이 만들어 놓은 어수선한 집안을 대강 정리하고 끼니를 때우니 마음은 편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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