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호박 예찬
<수필> 호박 예찬
  • 성광일보
  • 승인 2020.11.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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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금

찬 서리가 내렸기에 호박죽을 끓여야 겠다 싶어 호박을 한 통 사러 갔다
예전에는 길죽하거나 공처럼 둥글고 모양이 없어서 못생긴 사람을 보면 호박이라고 한 모양이다

그러나 요즘은 품종 개발로 마치 성형 수술을 한 여자처럼 볼륨있는 예쁜호박이 나왔다. 동굴납작한 놈은 방석처럼 생겨서 엉덩이 큰 아줌마가 앉아도 편안한것 같다

호박을 보면 고향 생각이 나고 자연스레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어린시절 시골방 윗목에는 분이 뽀얗게 솟은 호박 대여섯 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은 추웠어도 머리맡에 호박만 바라보면 마음이 따뜻해 지곤 했다.  심술궂은 남자들은 화장을 열심히 하고 있는 아내를 보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냐 하고 빈정 되기도 하지만 호박의 미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칼만 대도 쩍하고 갈라지는 수박이 정열을 주체하지 못하는 미숙한 젊은 여인이라면 호박은 모든걸 인내하고 포근히 감싸주는 후덕한 중년 부인이라고 할수 있다. 수박의 진초록 껍질 속에는 연초록에서 여인의 속살처럼 희어지다가 갑짜기 진홍색으로 돌변한다. 그 열정을 참으려다 생긴 고승의 사리일까 작고 까만 씨는 마치 인내의 결정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박에 비해 호박은 속을 쉽게 보이지 않으려는 듯 껍질이 여간 단단하지 않다.
물론 호박도 젊었을때는 욕망을 쉽게 버리지 못하듯 속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차츰 익어 가면서 조금씩 마음을 비우기 시작 한다.
나는 호박을 쪼갤 때는 조심스럽게 칼을 댄다. 그껍질 속의 예술적인 설계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호박을 쪼개 놓고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신비로움에 절로 놀라게 된다.

속이 차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술적인 공간 배치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조각가가 그렇게 섬세하게 만들수가 있겠는가.

누런 껍질과 발그래하면서도 노란 속살 사이에 연초록 경계선이 정결하게 둘려저 있고, 안쪽으로 들어 갈수록 포근한 주황색이다. 색체 조합이 은은할 뿐 아니라 속이 세 갈래로 배치되어 있어 전체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더 놀라는 것은 길게 생긴 놈이나 동그렇게나 납작하게 생긴 놈 모두 사람의 오장처럼 똑 같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강한 것 같지만 속은 어머니 마음처럼 부드럽기 이를데 없다.
금방이라도 번질것 같이 촉촉한 주황색이 실핏줄처럼 정교하게 짜여저 있고 그 사이에는 하얀 씨가 일미리 오차도 없이 가지런하다 오롯이 모여 있는 호박씨는 곧 쏟아질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호박씨의 한쪽 끝에 입모양으로 잘록한 부분 하나하나에는 거미줄 처럼 부드럽고 가는 줄이 연결되어 있다. 마치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 탯줄과도 같다.

호박씨를 지그시 당겨 보면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그 가날픈 힘의 느낌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호박의 도톰했던 살이 다 빠저 버린다. 그래도 씨앗만은 여전히 통통한 그대로다 살이 다 마를 때까지 수많은 씨앗을 한 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품고 있는 호박에게서 진한 모성애가 느껴진다.

이런 모성애 같은 덕성 때문일까 동짓날 호박죽을 쑤어 먹으면 감기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뷔페에서도 호박죽은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은 그 노란 색갈속에 부드럽고 달콤한 맛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디 그뿐이랴, 모든 여자들이 절실하게 원하고 있는 피부에 탄력이 생기고 노화 방지에도 탁원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속이 비어 있는 대나무가 부처님 마음 같다고 한다면 호박은 속을 적당히 비울 줄 아는 포근한 어머니의 마음 같다고 할까. 속이 텅비어 있으면서도 세상의 이치가 다 들어 있는 듯하여 은근히 무게를 느끼게 한다 어찌 보면 호박처럼 겉으로는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실속 있는 사람이다. 나도 호박처럼 은근히 무게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박종금
박종금

<박종금 프로필>
·2002년 에세이문학 완료 추천
·광진문학 감사
·에세이문학 작가회 회장 역임
·저서:날아간 군만두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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