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줌마, 이모님, 할머니 (끝)
<소설> 아줌마, 이모님, 할머니 (끝)
  • 성광일보
  • 승인 2020.12.0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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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소설가
윤정/소설가
윤정/소설가

희주는 누구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토요일 7시에 나왔으니 일요일 10시 전에는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에, 애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펜트하우스로 간다고 호기롭게 말하고 택시를 호출했다. 9시 30분쯤 도착하려는데 정 실장에게 전화가 왔다.
“아니, 아직 안 들어갔어요?”
“들어가는 중인데요. 어제 7시에 나와서 10시 전에 들어가려고 택시 탔어요.”
“그래요. 어서 들어가세요.”
“그런데 왜 저한테 안 하고 정실장님에게 연락했어요?”
“생각한 시간에 안 들어오니까 그렇지요.”
“시간 정해주지도 않았고 늦게 나가서 이제 들어가는 거예요.”
“나간 시간에 6시간 더하면 돼요.”
“그래요? 그동안 꼬박 24시간 있다 들어갔어요.”
“두 시에 나가서 다음 날 저녁 8시에 들어가는 건데......”
늦은 시간이지만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가니 그제야 남자의 밥상을 차린다. 또 정원 가꾸다가 저녁이 늦어졌나 보다. 
이모님 표정이 의외로 밝다. 보나 마나 풀도 뽑고 혼자서 고달팠을 텐데 화색이 돈다. 머리를 새로 한 이유만은 아닐 텐데 묘한 표정으로 희주를 맞이한다. 
“왔어?”
“식사가 늦으시네요.”
“어제는 먹지도 못할 반찬을 해놓고 갔어.”
“네? 허둥지둥 반찬 몇 개 해놨는데 안 드셨어요?”
“난리가 났었어. 어묵은 먹지도 않아. 반찬이 짜고 매워서 고등어 조림만 먹고, 호주산 삼겹살은 뭐야?”
“애들 먹으라고. 호박은 이모님이 다시 데우시니까 반만 조리해 놨는데 그냥 내놓으셨어요?”
식탁에 오이소박이, 파김치가 반찬가게에서 사온 듯하다. 가끔 사온 반찬을 식탁에 올리는 것을 보고 별수 없구나 생각한 희주는 얼마 전 이모님이 한 것을 희주가 한 반찬으로 오해해 더 배우라고 큰소리를 낸 남자가 야속하다. 
식탁을 치우고 그릇을 세척기에 넣고 나자 안주인이 주방으로 들어선다.
“전처럼 일찍 나가서 일찍 들어올 줄 알았더니 늦으셨네요.”
“늦게 나가서 좀 늦게 들어왔어요. 그런데 왜 소개소에 연락을 하셨어요? 직접 안 하시고.”
“여기 오신 지 한 달이 되어가지요?”
“네, 3일만 있으면 한 달이죠.”
“제가 보니까 애들하고 할머니는 잘 챙기는데 직장생활을 오래 하셔서 그런지 가사는 대강하시는 것 같아요. 깨 볶은 것, 아이들 책상 밑에 청소 안 된 것, 토요일 반찬도 못 먹을 것을 만들어 놨더라고요. 그리고 정원 관리며 할머니 목욕 등 안 한다는 것도 많으시고.”
“깨는 미처 물어보지 않아서 실수를 했어요. 반찬은 이모님이 더 살필 줄 알고 반만 조리했고, 두 가지는 이미 합의된 일인 걸로 아는데요. 청소는 하느라고 다 했어요. 책상 밑, 침대 밑까지. 책상을 옮기면서 청소해야 하나요?”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정원에 낙엽을 쓸라고 했더니 정원 관리는 안 한다 했다면서요. 그리고 매일 오는 세탁소 아저씨에게 커피 한 잔씩 대접하는 것을 못하겠다고 했다면서요. 사소한 대접으로 더 잘해 줄 수도 있는데.”
“세탁물 받고 넘기면서 그럴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지요. 그리고 자칫하다 세탁물에 흘릴 수도 있어서 한 말이에요. 정원 건은 오해였어요. 채소 씨앗을 들고 손가락질을 하시기에 심으라는 뜻인 줄 알고. 테라스 데크가 더러워지면 쓸어야지요. 이모님이 온통 다 전하시네요.”
“저 대신 이 집에 잘 적응하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아마 제가 했으면 더 했을 걸요.
저나 남편이나 무척 까다로워요. 이 큰집에서 아줌마가 일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 보지도 않고 채용했는데 더 봐야겠어요. 오늘 주무시고 내일 가시면 몇 사람 더 보려고요. 사람이 없으면 다시 채용할 수도 있으니 아줌마도 좋은 곳 면접 보시다 연락 드리면 오세요.”
“네, 그러셔야지요. 급여를 주는 만큼 마음에 드는 사람 채용하셔야지요.”
너 마음에 안 들어 해고라는 말을 얼마나 길게 했는지 희주 입은 바짝 마르고 안주인 입에는 하얀 게거품이 일었다.
해고 통고를 들은 판국에 하루 잠을 자서 무엇하나. 희주는 이모님의 화색과 묘한 표정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새 사람을 들여야 자신이 고향에 빨리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보다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위험한 사다리에는 안 올라간다, 정원 관리와 할머니 목욕은 안 한다, 일일이 나가지 않고 몇 가지는 주인에게 주문해 달라고 할 거다 등등 사사건건 권리를 찾아 울화통이 터지는데 토요일 반찬 사건으로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쳤나 보다. 안주인은 이미 다른 사람을 구해놓고 서두르는 척하는지도 모른다.
희주는 서둘러 짐을 쌌다. 신던 실내화를 버릴 때 이모님이 한마디 한다. '무슨 분리수거를 그리 열심히 해, 여긴 부자 동네라 막 버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쓸데없이 분리수거나 잘하고 자빠졌냐고 말하는 표정이었다. 
할머니 같은 이모님이 고향에 갈까봐 오는 도우미들 몇 명 쫓아냈다던 남자애는 유쾌하게 90도로 인사하고, 생글거리며 난 이모(희주 보고 이모라고 한다)가 좋다며 놀러 오라고 인사하는 여자애를 보니 이모님이 고향 가는 것을 포기하고 눌러앉기로 결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먼저 하던 대로 청소 도우미 주에 3번 부르고 급여 시세대로 올려주고, 수족처럼 하던 일 계속하게 하면 병원 다니며 그럭저럭 지낼 것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미용실에 앉아서 머리를 굴리던 이모님은 희주가 하던 대로 유리한 위치에서 권리를 주장하기도 하고 가족 같은 노예로 아이들과 소리치며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기사님, 이렇게 끝나면 해피엔딩이겠죠? 저는 해고 당했어도 엔딩은 행복하게!”
“그때 어쨌든 머리 조아리며,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런 실수 안 하고 잘할게요. 더 일하게 해주세요. 했으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거예요. 요즘 돈 좀 있다는 사람들 갑질이 장난이 아니에요.”
“저도 남의 돈 받는 처지에 밸을 다 빼놓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다시 만날 확률이 희박하다고 기사에게 부끄러움 없이 속을 털어놓다 보니 집에 다 왔다. 아이들이 먹다 남긴 삼겹살이 굳기름으로 변한 것을 보며, 이 집엔 이런 거 안 먹는다며 희주에게 가져가라던 호주산 대패삼겹살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온 것은 잘했다 싶다. -끝-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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