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멸치를 다듬는다(1)
<소설> 멸치를 다듬는다(1)
  • 성광일보
  • 승인 2020.12.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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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소설가
김근당/소설가
김근당/소설가

 여자와 남자가 마주앉아 멸치를 다듬고 있다. 다정한 장년 부부의 모습이다. 넓은 거실 한쪽 바닥에 신문지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바가지 가득 다듬어야할 멸치가 담겨 있다. TV가 걸려 있는 벽에서 마루를 건넌 맞은편에 길게 놓여 있는 황토색 물소가죽 소파 밑이다. 여자가 멸치를 다듬어야 한다고 남자를 불러 앉혔다. 아들 집에 멸치볶음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막내아들 집에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어갔다. 며느리가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막내아들에게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막내이기도 하지만 살아오면서 늘 마음이 쓰였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막내는 엄마만 좋아했고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었다. 

 여자는 반찬 중에도 멸치볶음을 자주 만들어갔다. 제 어미를 닮아 뼈가 가늘고 몸이 약한 손자를 보면서 여자는 멸치를 많이 먹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 손자도 할머니의 멸치 효용론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멸치볶음이 맛이 있는지 잘 먹는다. 일하는 아줌마가 아침을 챙겨주고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면 엄마가 퇴근하며 데려오는 아이다. 여자는 손자가 늦게까지 유치원에 남아 있는 것이 안쓰러워 어떤 때는 유치원이 끝나는 세 시에 데려오기도 했다. 

 건너편 벽에는 대형 TV가 걸려 있고 TV 왼쪽으로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자.'라는 가훈(家訓)이 긴 족자로 걸려 있다. 서예가인 남자의 친구가 써준 것이다. 베란다 문이 있는 오른쪽으로는 초록과 노랑과 하얀색 줄이 섞인 관음죽 잎들이 무성하다. 커다란 화분이 심겨져 있는 것이다. 

 남자가 바가지에 가득 쌓여 있는 멸치들을 헤쳐 본다. 모두 다듬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남자는 마음이 급하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자는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시도 때도 없이 남자를 불러냈다. 남자는 여자가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나와야 한다.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다. 시장 가기에서부터 시금치 다듬기나 마늘 까기, 깍두기 무 썰기, 쪽파나 총각무 다듬기 등의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랬다. 남자는 그때마다 마다하지 못했다. 거절을 하면 아내를 도와줄 줄 모르는 속 좁은 남자라고 퍼부어대는 여자의 잔소리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 밖 허공으로 가는 빗줄기들이 날리고 있다. 삼월 말의 봄이라지만 일이 도의 기온과 이십 도 이상의 기온이 반복되는 변덕스런 날씨다. TV에서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고 있다. 봄비가 구질구질 내리고 있는데도 양쪽 모두의 행렬이 끝도 없다. 

 남자는 다듬어야 할 멸치를 뒤적이며 한숨을 쉰다. 시간은 여섯 시를 넘어서 있다. 멸치를 다듬고 저녁을 먹고 설거지(설거지는 남자 책임이다.)를 하면 열 시가 넘을 것 같다. 이청준의 소설 '병신과 머저리'를 읽고 요점 정리를 하여 내일 오전 열 시부터 모이는 독서 모임(일곱 명의 회원이 모여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인문 서적 그리고 시집까지 의견을 모아 선정한 작품을 읽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토론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임이다.)에 나가 말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오래 전에 발표된 병신과 머저리는 인간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실존적 의미를 질문하는 내용이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서로 다른 아픔을 안고 사는 형과 아우의 이야기다. 남자는 형은 왜 병신이고 아우는 왜 머저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남자가 똥만 불룩하게 들어 있는 멸치 하나를 집어 든다. 바짝 마른 몸에 붙어 있는 머리와 지느러미 그리고 꼬리는 하잘 것이 없이 말라 부스러져 있다. 살아 있을 때는 유용하게 쓰였을 것들이다. 삶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일들을 결정하고 행동했을 머리도 다 삭아있다. 머리가 이 모양이니 잘못 생각하고 잘못 행동하다 이렇게 잡혀왔을 것 같다. 위험한 바다 속이다. 남자가 머리를 떼어 내고 배를 찢는다. 엷은 뱃가죽이 잘 찢어지지 않는다. 

 “더듬기는…… 이렇게 잡고 밀어 올려봐. 똥이 쏙 빠지잖아.”
 여자가 멸치의 머리를 떼어내고 엄지손가락으로 배를 밑에서 밀어 올린다. 멸치 똥이 머리를 떼어낸 부분으로 쑤욱 올라온다. 
 “뱃가죽을 찢거나 밀어 올리거나.”
 남자는 시큰둥하다. 멸치의 뱃가죽이 얇은 습자지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밀어 올려 봐요. 고집 부리지 말고.”
 여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한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는 남자가 하찮게 보인다. 
 “뭐. 그게 그거지……”
 남자가 투덜거린다.  
 “그러니까 자기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고.”
 여자가 핀잔을 준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데?”
 남자는 기분이 좋지 않다. 
 “외골수면서 눈치도 없고, 그러니 마누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모르지.”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속에 있는 말을 끄집어낸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고? 그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남자도지지 않는다. 
 “그 속알딱지에… 그렇기도 하겠다.”
 여자가 단정적으로 쏘듯이 말한다. 아직도 풀어지지 않은 마음의 앙금에서 검은 꽃이 슬금슬금 피어나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칠 년여 동안 가슴 속에 눌러 붙은 앙금이다. 남자와 말다툼을 할 때면 그 앙금에서 검은 꽃이 피어났다.   
 “자기는…… 자신을 알고?”

 남자도 할 말이 많다. 여자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성격에 양보를 모르는 여자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생각이 옳고, 그것을 상대에게 주입하기 위해 엉뚱한 말들을 만들어냈다. 
 “알고 있으니까 지금껏 밴댕이 속 같은 당신하고 살고 있지 않나?”
 여자가 비꼬아 말한다.
 “밴댕이 속이니까 내가 지금껏 당신하고 살고 있지 않고?”

 남자도 받아친다. 나태하고 참을성이 없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고 조금만 힘든 일을 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짜증을 냈다. 뭐가 그리 아프냐고 하면 아내를 위할 줄도 모르는 위인에게 말해서 뭐하겠냐고 쏘아붙였다. 그에 대꾸라도 하면 말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갔다. 말이 말을 낳고 또 말을 낳았다. 여자가 말을 끌고 다니고 끌려 다니는 남자는 자신이 어느 곳에 있는지 몰랐다.  

 “그럴까?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나니까 살아준 거 아니고.”
 여자는 남자의 모든 것을 품어주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돈이 없어 사글세방을 전전해도, 자식들보다 동생들에게 마음이 더 가 있어도, 시도 때도 없이 시댁에 돈을 붙여주어도,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몰라도, 모두 다 품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도 하겠다.”

 남자가 말을 돌린다. 맞대면하면 고성이 오갈 것이기 때문이다. 자존심을 짓밟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좀 더 나가면 세상에서 가장 못된 남자로 만드는 악담을 퍼부었다. 남자는 여자의 말 폭탄을 감당하기 어려우면 방에 들어가 쑤셔 박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여자는 방에다 대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온갖 말을 쏟아냈다. 그래도 성이 안 차면 소주병을 나발불고 거실 바닥에 빈 병을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안방에 들어가 하루고 이틀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속이 탔다. 남자는 그렇게 사십 년을 살아왔다. 

 TV에서는 언제부턴가 뉴스가 끝나고 자연 다큐가 이어지고 있다. 바다 속 생태계 풍경이다. 남자가 멸치 다듬던 손을 놓고 TV를 본다. 바다 속은 투명하고 아름답다. 모래벌도 깨끗하고 바위에 붙어 있는 노랑과 연분홍과 붉은색의 산호 군락들이 바람이 흔들리듯이 살랑거리고 있다. 바위들은 산처럼 높고 산호초 속에서는 비단 색깔의 물고기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문어가 바위틈에 있는가 싶더니 기어가는 게를 긴 발을 뻗어 잽싸게 낚아챈다. 또 다른 게는 새우를 먹어치우기도 한다. 좀 더 넓은 수중에서는 바다사자가 펭귄을 쫓고 펭귄이 오징어를 쫓는다. 물 소용돌이가 일고 있는 곳에서는 참치 떼가 합동작전으로 멸치들을 몰고 있다. 구름떼 같은 멸치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다 다급하게 바닷가 백사장으로 뛰어오르기도 한다. 와글와글하는 멸치들의 고함소리가 파도 소리와 함께 들린다. 
 “멸치는 다듬지 않고 뭘 봐요!”
 여자가 쏘아붙인다. 남자가 TV에서 얼굴을 돌려 멸치 하나를 집어 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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