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스포츠 매사냥, 조선 후기에 돈 많은 상인들이 넘보는 놀이가 되다
귀족 스포츠 매사냥, 조선 후기에 돈 많은 상인들이 넘보는 놀이가 되다
  • 서성원
  • 승인 2021.01.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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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⑮ 응봉산 일출
일출 전 응봉산에서 바라본 풍경. 서성원 Ⓒ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응봉동

◆ 장안의 시전 바닥에서 굴러먹던 총각

보라의 아버지는 매를 부리는 응사였다. 응사를 찾아온 이가 있었다. 무지개였다. 열 아홉이라고 했다. 그게 한해 전이다. 순조 21년(1821년)이다. 지개는 그 해, 응봉산에서 보냈다. 보라의 아버지가 더벅머리 지개를 몰이꾼으로 받아줬다. 몰이꾼은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런데 믿음이 가지 않았다. 
먼저 이름부터 그랬다. 지개라고 했거든. 제깐 놈이 뭐라도 된다는 듯이, 무지개처럼 살고 싶어서 스스로 그렇게 지었다지 뭔가. 

그리고 시전에서 일했다는 것도 그렇다. 알고 보니 종가(종로)였다. 육의전으로 불릴 적에는 돈깨나 만진다고 했다. 그건 다 지난 일이다. 
돈이라면 난전이다. 칠패(남대문 근처)나 배오개(동대문 바깥)라야 한다. 거기로 사람이 모여든다. 사람 따라 돈도 꾀어든다. 
종가에서 일했다니까 장사 수완도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그보단 돈벌이가 안 되니까 주인이 지개를 내쳤을지 모른다. 그래서 응사는 마음 한편이 짠하다. 그렇다고 해도 지개 놈이 딸 보라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마뜩잖다. 

장사하던 그 입으로 보라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 싶다. 두고만 볼일이 아녀서 동짓날에는 딸한테 단단히 일러뒀다. 
괴질에 걸려 죽고 싶다면 만나라고. 아버지가 괴질에 걸려서 죽어도 좋다면 만나라고. 장안벌에서 지개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놈에게도 모진 말로 혼냈다. 

응봉산 오르는 길. 간밤에 눈이 내렸다. 성동구에서 아침부터 산길 계단을 눈을 치우고 있었다. 눈 쌓인 모습을 겨우 찍었다. 서성원 Ⓒ

◆ 응봉산에서 해맞이하다 

동짓날 이후로 지개는 달라졌을까. 바뀌지 않았다. 보라에게 접촉 금지 통보를 받은 날이 동짓날이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날이다. 하지만 동지만 지나면 밤이 짧아진다. 그래서 지개는 앞날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처럼 밝은 얼굴로 응사들을 찾아 다녔다. 시간이 남으면 응사들이 하는 것처럼 팔뚝에 매를 올려놓고 사냥을 연습했다. 물론 가짜 매였다. 

새해 이른 아침, 지개는 응봉산에 올랐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했다. 응봉산에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인다. 한천(중랑천) 건너 뚝섬 마장이 손에 잡힐 듯하다. 압구정은 설날이어서 오히려 적적하다. 뚝섬나루 그리고 더 위쪽의 송파나루를 바라보았다. 밝은 기운을 받은 강물이 유유히 흘러간다. 

지개는 보자기를 푼다. 병마개를 열어 기울여서 술을 잔에 따른다. 술잔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동녘을 바라본다. 
검단산인가, 남한산성인가. 산 위로 붉은 기운이 하늘에 차오른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새해 첫날, 맞이하는 해다. 지개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명례방 공동체(현재 명동 성당 자리로 천주 교인 집합 장소)에서 배운 것이다. 몇 번밖에 가지 않았지만 지개 마음에 깊게 남아있는 기도였다.

응봉산 팔각정에 퍼지는 햇살. 서성원 Ⓒ

◆ 낮은 땅에서 엎드려서 살아온 이들에게 새로운 하늘 열리다

지개는 오늘은 일이 없다. 설날이어서 그렇다. 이런 날 매사냥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지개는 일출을 볼까 했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응봉산 아래 인간 세상을 내려다본다. 감상한다. 시간이 흐른다. 햇살은 밝음과 온기로 세상에 퍼져나간다. 
돌멩이, 인간, 낙엽 부스러기 그 어느 것도 구별짓지 않는다. 지개는 이런 세상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감사하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보라가 나타났다. 놀랍고 반갑다.

“야, 응사님 집에 계실 텐데 어떻게 나왔니?”
“그러게. 심부름 가는 길이야. 신촌에.”

전관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동네를 신촌이라 불렀다. 
“여긴 신촌 아니잖아.”
“네가 여기 있을 것 같아 한 번 와봤지. 뭐, 내가 방해를 했나보다야. 갈 게.”
“아니, 아니, 새해 첫날부터 왜 이러실까.”

지개가 보라를 안으려고 다가섰다. 
“워워, 일곱 자 거리두기, 지켜야지!”

한 해 전에 평양에서 괴질이 크게 유행했다. 십만 명인가 죽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성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면 전염된다.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경계한다. 그런 세상이다. 

숲이 우거진 고갯길을 넘을 때, 귀신보다 무서운 게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다. 그런 말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외진 산속이 아니다. 
그럼에도 괴질이 퍼지면 가장 두려운 게 사람이다. 조정에서는 일곱 자 거리두기를 하라고 성화를 낸다.

“미안 미안, 알았어. 새해잖아, 으~응, 선물 줄게.”
“선물?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술 준다면서, 입술, 크큭, 뭐 또 그런 짓 하려고?”
“하하, 일곱 자 거리두기, 지켜야지. 저기 강 건너 땅 있잖아. 저거 너한테 줄게.”

지개는 한강 건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길? 나한테 준다고? 왜 주는지 이유나 알자.”
“저기에도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올 테니까.”
“뭔 개소리야.”
“옛날에는 사대문 안에도 빈 땅 많았대. 지금 아니잖아. 왕십리까지 집이 들어섰지.”
“그래서 강 남쪽에, 그냥 강남이라고 하자. 강남까지 집이 들어올 거라고? 말도 안 돼. 강북이라면 모를까.”
“강북이 동네로 가득 채워 질 거야. 그러면 강남이 새로운 부자 동네가 될 테고. 후회하지 말고 줄 때 받아 둬.”
“이럴 때 보면 그 말이 맞아.”
“그 말이라니?”
“사,기,꾼!”
“뭐야?”
“그런데 그게 네 놈 매력이니 어쩜 좋아. 어쨌든 해가 바뀌었는데 나에게 땅 사줄 돈은 마련해야지.”
“나한테 줄 서게 될 거야.”

중랑천 방면에서 바라본 겨울 응봉산. 서성원 Ⓒ

지개 얘기는 이랬다. 매사냥을 배우고 익힌다. 소문이 난다. 그때 지개는 개인 매사냥을 한다. 지개와 매사냥을 하고 싶은 이들이 돈 보자기를 들고 와서 사정, 사정한다. 매사냥 좀 같이 하자고. 지개는 그럴 자신이 있다고 큰소릴 친다. 

지개의 계획이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무렵에는 너나없이 매사냥을 하려고 했다. 전에는 매사냥은 장안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였다. 그러다 양반입네 하는 사람들도 들판으로 나섰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돈 잘 쓰는 이들이 따로 있다. 그들은 난전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양반네들과 마주치지 않은 곳에서 그들만의 매사냥을 하려고 했다. 지개는 그들을 통해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기를 찾아와서 줄을 서게 하겠다는 것. 

보라는 눈을 반짝이며 지개의 말을 들었다.
“보라야, 너 이름부터 바꾸자. 해도 바뀌었는데.”
“미친. 다들 예쁘다는데 뭔 소리야.”
“응사님이 왜 널 보라라고 했는지 생각해 봤니? 널 보라매로 생각한 거야.”

생후 1년 전후의 매를 보라매라고 한다. 길들여서 사람이 데리고 있으려면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아, 그러고 보니 네 말이 맞네, 맞아.”

보라는 어떤 결정의 순간이 왔다는 걸 느꼈다. 지개와 함께 하면 한곳에 머무는 생활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곳에 매여 사는 답답함 또한 없을 것이다. 깃 아래로 흐르는 바람을 느낀 매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듯, 보라는 응봉산 아래로 흐르는 새로운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보라는 새해 첫날, 새로운 하늘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참매와 일출, 서성원 Ⓒ

매사냥터에서 사진 사냥 출사지로 이름난 응봉산

참매형상 서성원 Ⓒ

매사냥은 넓은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이 유리하다. 그래서 조선시대부터 응봉산은 매사냥의 메카였다. 지금은 매사냥이 아닌 사진 사냥터로 유명하다. 
최근이다. MBC 저녁 8시 뉴스 시간에 응봉산에 바라본 서울 풍경이 나왔다. 앵커 뒤편의 배경 화면이었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풍경과는 맛이 다르다. 방송국 카메라맨이 귀신같이 알아낸 곳이리라.

사진작가들이 응봉산을 찾는 이유는 뭘까. 낮에는 낮대로 좋고, 밤에는 야경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출, 일몰 사진까지 가능하다.
응봉산은 사진작가가 올라야 하는가? 천만의 말씀. 응봉산은 95.3m이다. 남산이 262m다. 산을 오르는 데 부담이 없다. 그런데도 전망은 아주 그만이다. 
정상에 팔각정이 있고 응봉산과 관련 역사를 안내하는 시설이 잘 마련해놨다. 화장실은 두 곳이다. 봄에는 개나리가 유명해서 수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응봉산 한편에는 응봉산 인공암벽 공원이 있다. 오르는 길에 벤치도 있다. 출렁다리가 있지만 좀 짧다. 

응봉산을 오르는 방법은 다양하다. 내가 권하는 길은 경의중앙선 응봉역을 이용하시라는 것이다. 응봉역에서 정상까지는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이 코스를 추천하는 이유는 오르는 길에 중랑천, 서울숲을 조망하기 좋다. 하산은 금호스포츠센터 방향(한강)으로 해도 된다. 아니면 서울숲 공원 가는 길로 내려가도 된다.  

승용차로 응봉산에 오는 분은 어느 주차장 이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스릴을 원한다면 응봉산 주차장을 이용하시라. 길이 좁고 아찔해서 어지럽다. 승용차로 등산하니까. 반면에 금호스포츠센터 주차장을 이용하면 안전하다.

서성원 작가
itta@naver.com

 

 

 

 

 

 

 

 

 

일출 전 응봉산에서 바라본 풍경. 서성원 Ⓒ
응봉산 일출, 팔각정 정상의 소나무와 함께하는 일출. 서성원 Ⓒ
응봉산 팔각정에 퍼지는 햇살. 서성원 Ⓒ
중랑천 방면에서 바라본 겨울 응봉산. 서성원 Ⓒ
응봉산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 아침 햇살이 퍼지고 있는 응봉산. 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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