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문화원과 함께하는 "사진으로 보는 성동 100년"
성동문화원과 함께하는 "사진으로 보는 성동 100년"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1.01.14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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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물이 변했다. 웃음과 사랑만은 변하지 않았다
사진1 사진제공 임정숙. 뚝섬한강변(1980년대초)
사진1 사진제공 임정숙. 뚝섬한강변(1980년대초)

땅과 물이 변했다. 웃음과 사랑만은 변하지 않았다

2021년 1월 13일 현재 우리는 애타게 코로나19가 물러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누렸던 '당연한 일상들'을 찾고자 합니다. 
사람들 만나고, 카페와 식당을 찾아 맛난 음식과 커피를 마시고, 차와 비행기를 타고 도로와 하늘을 누벼 먼 곳으로 가고, 새 음식, 새 풍경 그리고 돌아와 이웃과 친구들과 그 경험을 자랑하고도 싶습니다. 
사람들이 가득 찬 영화관에서 공명하며 희로애락의 감탄사를 뱉고, 축구와 야구장에서 지축을 울리는 함성을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이 실은 어떠했던 것인가를 찬찬히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전파되면서, 사람들은 위와 같은 '일상'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발견된 것들이 있었습니다. 
푸르고 맑은 하늘이 돌아왔습니다. 밤하늘에서 은하수를 찾았다는 사람들의 보고가 줄을 이었습니다. 

아빠는 술자리에서, 엄마는 모임에서, 형과 언니는 학원에서 돌아와 식탁에 둘러 앉았습니다. 그리고 잊혔던 '일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숲으로 가는 산책, 자전거로 떠나는 마을길 마실도 늘었습니다. 가족과 절친한 이웃과 내 동네를 다시 보고,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동구 근현대사진 이야기전> 열한 권을 어느날 손에 얻었습니다. 어느날 집에서 차근차근 책장들을 넘겨보았습니다. 
지금은 없는 것, 지금과는 달라진 여러 가지가 보이더군요. 첫째 놀란 건, 그 시대 사람들 중엔 살진 이들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이 넉넉한 아저씨들도 날렵하고 홀쭉했습니다[사진5 1967년/사진6 1966년/사진7 1980년]. 
아이들은 흙장난을 하고, 집바깥에서 놀았습니다[사진4 1977년/사진3 1968년]. 인터넷도 핸드폰을 쥐고 사는 요즘 모습과 달랐지요. 

성동구에서 이미 사라진 여러 곳도 있었습니다. 풍광이 멋졌던 닥나무의 산지 저자도[사진5 1967년]는 사람들이 자주 소풍도 가던 곳이었습니다. 넓고 길다란 그 섬은 강남에 아파트를 지으며, 한강 개발을 하며 흔적이 없어졌습니다. 827년 통일신라 흥덕왕 때 지어진 1천2백여 년 된 안정사[사진9 1987년]도 헐렸습니다. 철거 당시 발견된 마애불은 아직 무학봉 아래 남아있다 합니다만…. 
변화도 있습니다. 현재 장안동중고차시장의 단초를 볼만한 용답동 정비소[사진8-1982년].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보았던 연두색 포니가 서 있습니다. 

도장과 명함 간판을 크게 내걸었던 저 가게[사진2 1963년]는 현 행당1치안센터 근처입니다. 도장과 명함은 이제 공인인증서와 큐알코드로 자리를 내줄 것입니다. 

개발도 되지 않았고, 강둑으로 강변북로니 88올림픽대로니 하는 차도도 없던 한강 풍경[사진1·1980년대초]입니다. 
부인은 돌에 올라섰습니다. 키가 더 커진 부인과 남편은 이쪽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사랑과 웃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진4는 뚝섬유원지입니다. 1977년, 아마도 어느 이른 봄날의 사진일 것입니다. 영구치가 나겠죠? 앞니는 빠져있습니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그 시대에 사람들은 더 자주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였습니다. 사진7은 한양대학교 교정입니다. 1980년경. 대학은 활짝 열려있어 휴일엔 대학으로도 주민들은 나들이 갔습니다. 비치볼 하나 들고, 멜라민 구두 신고, 무엇보다 넓은 돗자리와 간식 가방 들고, 모자를 눌러썼습니다. 캠핑용 의자가 없어도, 아이스박스가 없어도, 충분히 나들이는 즐거웠을 것입니다. 사진에 없는 사람, 아버지는 이 편에 서있습니다. 사진5는 저자도입니다. 1967년경. 뒤로 보이는 곳은 현재 한남하이츠가 들어선 옥수동이랍니다. 하얀 모래 백사장이라 모두는 맨발입니다.

6의 사진은 1966년의 뚝섬입니다. 청년들이 아이들처럼 놀고 있는데, 모두는 뱃살 하나도 없습니다.
 <원동업=성수동쓰다 편집장>(3bigpicture@naver.com)

사진2 사진제공 김일상. 행당1치안센터 근처(1963년경)
사진3 사진제공 이윤주. 성수동 쌍용아파트 자리(1968년경)
사진4 사진제공 이원길. 뚝섬유원지(1977년경)<br>
사진4 사진제공 이원길. 뚝섬유원지(1977년경)
사진5 사진제공 신옥화. 저자도(1967년경) <br>
사진5 사진제공 신옥화. 저자도(1967년경) 
사진6 사진제공 이춘익. 뚝섬(1966년경)<br>
사진6 사진제공 이춘익. 뚝섬(1966년경)
사진7 사진제공 박명훈. 한양대(1980년경)<br>
사진7 사진제공 박명훈. 한양대(1980년경)
사진8 사진제공 김수환. 용답동정비소(1982년경)<br>
사진8 사진제공 김수환. 용답동정비소(1982년경)
사진9 사진제공 이인자. 안정사(1987년경)<br>
사진9 사진제공 이인자. 안정사(1987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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