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멸치를 다듬는다(2)
<소설> 멸치를 다듬는다(2)
  • 성광일보
  • 승인 2021.01.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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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소설가
김근당/소설가
김근당/소설가

몸은 구십 도로 구부러져 있고 눈알은 회색으로 퇴색되어 있다. 천적에게 쫓기어 정신없이 어딘가에 쑤셔 박혔을 것 같다. 남자는 난감하다. 뱃속의 검은 똥을 떼어내려면 몸을 똑바로 펴야 하는데 몸을 펴면 부러질 것 같다. 

망설이던 남자가 들고 있던 멸치를 다듬지 않은 바가지에 놓고 다른 멸치를 집어 든다. 그놈도 바싹 마른 몸이 비틀어져 있다. 살아온 세월이 힘들었다 말하는 것 같다. 수많은 난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멸치들은 가지각각이다. 큰 놈, 작은 놈, 굽은 놈, 똑바른 놈, 비틀어진 놈, 딱딱한 놈, 부서진 놈, 똑같은 놈은 하나도 없다. 바다에서는 모두가 같은 것 같지만 모두 다른 모습이다. 

남자는 사람 사는 모양도 멸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세대에 살지만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고 한 지역은 물론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한 가정에서 큰 형제들도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청준도 그런 의도에서 병신과 머저리를 썼을 것 같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서로 다른 아픔을 안고 사는 형과 아우의 이야기다. 
형은 전쟁을 몸소 겪었고 거기다 적군의 지역에서 헤매다 탈출한 경험이 있고 아우는 전쟁 경험이 없다. 형은 어린 시절 사냥 나가는 사람들을 따라가 피 흘리며 도망가는 짐승을 보았고 적지에서 탈출 과정에 동료 병사를 죽인 경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리에서 손을 땅에 놓고 엎드려 구걸하는 어린 소녀의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지나갔다. 
아우는 무기력해서 사랑하는 여자도 잡지 못하고 화실을 운영하는 화가이면서 그림도 그릴 수 없다. 왜 그런지 이유도 모른다. 그러면서 형과 갈등을 겪는다. 둘의 갈등은 경험과 관념의 차이에 기인한다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것 같다. 

두 형제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일제 말기의 격변기에 태어났을 형제다.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실존을 파헤친다면 좀 더 근원적인 문제까지 파고 들어갔어야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남자는 여전히 멸치의 뱃가죽을 찢어 똥을 빼낸다. 바싹 말라 부스러지는 똥은 얼마 들어 있지도 않다. 살아 있는 내내 배가 고팠을 것 같다. 남자는 동생들을 생각한다. 성격이 여리고 어리석어 세상에서 자기 밥그릇을 찾지 못했다. 남자는 그런 동생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몰랐다. 끈끈하게 달라붙은 생각이 마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당신은 부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여자가 다듬는 멸치에 눈을 고정한 채 뜬금없이 묻는다. 뼈가 들어 있는 말 같다. 

“부모에 대해……?”

  남자는 여자가 묻는 의도를 알 수 없다.
“불만 같은 거 없어?”

여자가 달리 묻는다. 남자가 자신의 부모에 대해 말하거나 불평하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있지.”

남자가 쉽게 대답한다.
“뭔데?”

여자가 의외라는 듯이 남자를 바라본다. 
“마음 놓고 기댈 수 없었다는 거.”
“기댈 수 없었다니?”

여자는 남자의 대답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럼 뭐?”
“뭐 다른 것은 없어? 원망 같은 것이나……”
“없는데. 원망이랄 것이 있나. 어머니 아버지의 운명이고 어쩔 수 없는 시대였는데.”
“운명은 무슨 운명이고 시대는 또? 어느 부모는 그런 시대에 안 살았나.”
“가난하고 척박했던 환경.”
“그 시절에는 사람 사는 게 다 그랬지. 뭘? 얼마나 척박했다고.”

여자는 남자의 말에 수긍할 수 없다. 자기 핏줄이라고 억지 변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에게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몰라.”

남자는 잘라 말한다. 절대로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사십 년 가까이 살면서도 불평불만과 비난만 했다.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온 어머니 아버지를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속정이 깊어 말은 안 해도 자식들을 위해 속을 태우며 살아온 어머니 아버지였다. 

남자는 아버지 어머니와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형제자매와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 아내는 그런 부모를 무능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쏘아붙였다. 남자는 가슴이 아팠다. 뜨거운 염천에도 매일 남의 집 논일을 하고 추운 겨울에도 밥사발 속 종지기에 새우젓을 싸가지고 가서 공사판에서 언 밥을 먹으면서 하루 종일 일하던 아버지였다. 남의 집 일을 할 때면 남들보다 두 배나 많은 짐을 지었다. 마을에서 녹두장군이라 불렸다. 

어머니는 땡볕에서 하루 종일 남의 밭일을 했다. 겨울이면 남의 집 부엌일을 도와주며 쌀이나 돈을 받아왔다. 남자는 그렇게 살았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억한다. 

“모르긴 뭘 모른다고? 당신 어머니 얼마나 모질고 냉정한데.”

여자가 늘 하던 말을 또 한다. 
“어머니가 모질고 냉정하다고?”

남자는 가슴이 답답하다. 그만큼 보아왔으면 알만도 할 텐데 또 다시 터지는 비난이다. 
“그래! 그 잘난 당신 어머니.”

여자가 쏘아붙인다.  
“우리 어머니? 못나고 어리석지. 사람 사는 도리도 모르고……”

남자가 여자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말을 대신한다. 자기 생각만 꽉 들어차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지. 냉정하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당신 어머니는…… 그런 생각 안 들어?”

여자의 속 깊은 앙금에서 또 다시 검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여자도 어쩔 수 없다. 자신에게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도 시골에 가면 소 닭 보듯 했던 시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된장 간장은 고사하고 푸성귀 하나 싸줄 줄 몰랐다. 거기다 자기 자식들을 큰아들에게 맡겨놓고 말 한 마디 없었다. 친정에 가면 맨발로 뛰어나와 사위를 얼싸안는 친정어머니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머니가 얼마나 속정이 많은데. 어렸을 때 자다가 눈을 떠보면 헌 부채로 모기를 쫓으며 앉아 있기도 했고, 남의 집 콩밭을 매다 개똥참외를 발견하면 남몰래 치마폭에 감추었다 가져다주기도 했고……”

남자는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다 말 하지 못한다. 몸이 약한 아들을 위해 소의 생피가 좋다고 도살장에 데리고 가서 뜨끈한 피를 얻어 먹이기도 했고 죽어가는 막내 동생을 업고 십 리 읍내까지 뛰어가기도 했었다. 무능한 부모 때문에 고생하는 며느리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뭐가 그래요? 당신도 모질고 냉정한 어머니처럼 나에게 대했잖아!”

여자가 목소리를 높인다. 가슴 속 앙금에서 검은 꽃이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모질고 냉정하게 대했다고… ”

남자는 아무리 말해도 여자의 생각을 돌이켜 놓을 수 없다. 결혼하고 칠 년 가까이 여자를 고생시켰지만 그 후로는 여유 있게 살았다. 진급도 남 못지않게 했다. 은행에서 운영하는 부동산에 적은 돈을 넣어 돈도 좀 불렸다. 

그동안 아내는 외식을 집 밥 먹듯 했고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부러워한다는 친구들을 안락한 승용차에 태워 딸애가 예약해준 콘도에 놀러 다녔고 해외여행도 여기저기 다닐 만큼 다녔다. 

경제권도 손에 쥐고 돈을 어떻게 쓰는지 말하지 않았다. 남자는 잔소리를 들어가며 용돈을 얻어 써야 했다. 학교 동창회나 직장 퇴직자 모임에서도 회장을 맡으라고 아우성이지만 여자가 쪼이는 용돈 때문에 고사하고 있었다. 

“그럼. 그것도 몰랐단 말이야? 하기는…… 자기 생각대로 산 사람이니까.”
여자가 또 다시 남자를 몰아붙인다. 남자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떻고?”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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