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음악이 있는 풍경
<수 필> 음악이 있는 풍경
  • 성광일보
  • 승인 2021.01.2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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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옥 / 수필가
곽미옥/수필가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주 금요일에 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만났다. 감동의 선율을 선사하는 시각장애인 연주단이 용인시 동천동 G아파트의 입주 1주년을 기념하여 자그마한 음악회를 열었다. 아마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입주민들에게 베푸는 따뜻한 배려였으리라.

아름다운 음악으로 여러분과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베이스 톤 목소리의 아나운서는  연주자 모두가 입주민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는 개회사를 시작으로 진행했다. 저녁 무렵의 햇살은 하루의 끝자락을 아쉬운 듯 잡고 있는데 습기를 머금은 서늘함이 무더위를 밀어내고 있었다. 

첫 곡으로 절대음감을 지닌 시각장애인 이아름이 솔로 곡 <알라딘>을 부를 때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신기한 듯 1열에 앉아 감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또 다른 흐뭇한 풍경이었다.

요즘은 놀이터에 모여 함께 뛰노는 아이들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고 했던가. 개구쟁이처럼 뛰어 놀던 많은 아이들이 잔디밭 맨 앞줄에 모여앉아 관람하는 모습이 귀엽고 정겹다.     

다음 곡은 어둠 한가운데를 누비는 기적 같은 선율의 빛을 보여준 쥬페의 <경기병 서곡>으로 놀랄 만큼의 연주 실력을 보여주어 모두에게 벅찬 감동을 주었다. 

2003년 창단된 세계 유일의 시각장애인 전문 연주단 '한빛예술단'은 장애를 극복한 삶을 연주를 통해 장애 인식 개선뿐만 아니라 배려와 나눔의 문화를 펼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 공연단의 특별한 점은 지휘자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연주자들은 수신기를 귀에 착용하고 지휘자가 보내는 음성 신호에 맞춰 연주를 한다고 한다. 악보는 사전에 연주할 곡을 모두 외웠다. 마치 백조가 우아한 몸짓을 위해 수면 아래서 두 발을 분주하게 움직이듯이 엄청난 노력을 하기에 비장애인들은 상상조차 못할 만큼 혹독한 연습을 한다고 한다. 소리로 세상을 비추는 그들의 음악이 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이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재즈왈츠 2번>연주에서는 아이들 몇 명이 흥겨운음악에 맞춰 춤까지 추는 광경이 벌어져 엄마들이 놀라 손을 잡아끄는 모습도 유쾌했다. 

다음 곡은 검은 마스크를 쓴 봉사자들의 손을 잡고 입장한 보컬 이아름과 테너 박영필의 합창으로 감정을 서로 나누듯 노래하며 마주보는 이아람의 표정은 한편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듯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거리두기하고 마스크 착용하라는 사회자의 안내 목소리도 하나의 선율이 되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계속해서 집시풍의 멜로디와 어우러져 경쾌하고 신나는 곡인 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이 연주되었고,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과 끝 곡으로는 영국의 지휘자 루이스클락의 명곡모음 메들리 <후크온 클래식>을 감상했다. 서로의 얼굴표정은 볼 수 없지만 멋진 하모니를 이루며 즐겁게 연주하는 풍경에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한 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흩어지는데 아이들과 부모들이 우르르 몰려간 푸드 트럭 앞에는 긴 줄이 있어 먹고 싶었던 찹쌀 츄로스는 포기해야 했다. 
공연을 본 소감을 올리라는 홈페이지에는 많은 공감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셋째 임신 중인 맘이라는 주민은 태교에 소홀했었는데 공연 듣는 내내 태동이 엄청났다는 응원 글을 올렸고, 창문너머로 내려다보는 음악회는 취업준비로 힘들었던 딸에게도 큰 힘이 돼 주었다는  소감 글이 있었다. 

또, 음대생이라는 주민은 같은 음악을 전공하면서 늘 불평불만이 많았는데 오늘 공연을 보고 자신을 반성했다며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악보를 완벽히 외워 서로 호흡하며 연주하는 모습에서 눈물 났다고 했다.

한빛예술단의 공연은 아름다운 선율이 메말랐던 나의 가슴에도 촉촉이 단비를 내려주었다. 형식적인 틀에 맞춰가는 음악이 아닌 청중들에게 진심으로 감동을 선물한 공연은 그동안 내가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문화체험이었다. 

장애를 극복하고 놀라운 연주를 들려준 한빛예술단의 단원 모두와 입주민 모두에게도 삶이 아름다운 공연으로 늘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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