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구정(舊正)이 아니라 '설?설날'
<수필> 구정(舊正)이 아니라 '설?설날'
  • 성광일보
  • 승인 2021.02.0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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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식/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최운식/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성동문인협회 이사

지난 연말에 친구들이 모여 점심을 먹은 뒤에 다음 달 모임을 언제 할 것인가를 상의할 때였다. 
한 친구가 2월 둘째 주는 '구정'이 낀 주여서 복잡하니, 한 주 전이나 뒤에 만나자고 하였다. 

이 말이 나오자마자 옆에 있던 친구가 웃으며 “'구정'이 뭐야. '설'이라고 해야지!”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이 일이 있은 뒤에 만난 사람이나 TV에 나오는 사람 중에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을 '구정'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설은 음력 1월 1일로, 한 해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우리나라 최대 명절이다. 새해의 첫날이란 뜻으로, 한자어로는 ·원일(元日)·원단(元旦)·원정(元正)·정일(正日)·세수(歲首)·연수(年首)라고 한다. 또, 새로운 해의 첫날이니,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여 맞이해야 한다는 뜻으로 신일(愼日) 또는 달도(00)라고도 한다. 

설의 어원에 대하여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설은 '설다'에서 파생한 말로, '익숙하지 않은 새해의  첫날'이란 뜻이 있다고 한다. '섧다'에서 온 말로, 한 살 더 먹어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도 한다. '사리다'에서 파생한 말로,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와는 달리 설을 쇠면 한 살 더 먹게 되므로,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여 '살'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설에 대한 기록을 보면,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隋書)」와 「당서(唐書)」에 “신라에서는 매년 원단에 서로 경하(慶賀)한다.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日月神)에게 배례(拜禮)한다.”고 하였다. 「삼국유사」 권1 「사금갑(射琴匣)」조에는 신라 21대 비처왕(毗處王, 炤知王이라고도 함)이 쥐·까마귀·돼지의 도움으로 받은 서찰에 적힌 대로 거문고의 집을 쏴서 궁주(宮主)와 정을 통한 중을 죽였다. 

그 후 해마다 상해(上亥, 첫 돼지일)「상자(上子, 첫쥐일)」상오(上午, 첫말일) 일에는 만사를 꺼려 근신하였다. 
정월 보름에는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주었다. 이를 민간에서는 '달도'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에서 설의 유래를 알 수 있다. 그 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쳐 오면서, 설은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큰 명절로 지켜왔다. 

역법(曆法)에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한 태양력(太陽曆),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태음력(太陰曆),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모두 고려하여 만든 태양태음력(太陽太陰曆, 음력이란 말은 이를 가리키는 것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태양태음력을 써 왔으므로, 음력 1월 1일이 설날이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1896년 1월 1일(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 고종 32년)부터 태양력을 받아들여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설은 전과 다름없이 음력으로 쇠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사용하면서, 양력 1월 1일을 새해의 첫날로 정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우리의 전통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음력 1월 1일에 설을 쇠지 못하게 하고, 양력 1월 1일에 설을 쇠도록 강요하였다. 이때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 하고, 그에 대응하는 음력 1월 1일을 '구정(舊正)'이라고 하였다. 그 결과 신정을 쇠는 사람이 생겨나서 그 수가 조금씩 늘어갔다. 

일제는 우리 민족이 설에 떡국을 비롯한 명절음식을 만들어 먹고, 설빔을 입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설 무렵이면 떡 방앗간을 폐쇄하고, 설빔으로 입고 나오는 어린이들의 새 옷에 먹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설을 지키려는 우리 민족의 뜻을 꺾지는 못하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이어졌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적인 설과 신정을 명절로 쇠는 이중과세(二重過歲) 풍속이 생겨났다. 정부에서는 이중과세는 낭비가 많다는 이유로 설을 금하고, 신정을 권장하였다. 국제적 추세에 맞추어서 신정에 쉬고, 설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일해야 국제수지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그러면서 신정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음력 1월 1일을 전통적인 명절로 지켰다. 그래서 세찬을 준비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며, 설빔을 입고 세배하며 덕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설날을 전후한 여러 가지 민속도 행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귀성(歸省) 행렬이 전국으로 퍼지는, 이른바 '민족대이동'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정부는 국민 다대수가 명절로 여기는 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공휴일 또는 비공휴일 지정 문제로 몇 차례 오락가락하던 정부는 1985년에 설날을 '민속의 날'이라 하고,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이 명칭은 어색하고 궁색하여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이에 맞춰 신정 공휴일은 하루로 축소되었다. 이때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70∼80년 만에 설날을 되찾았다며 떠들썩했었다. 그에 따라 설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달라지고, 설은 추석과 함께 2대 전통명절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였다.  

이처럼 구정으로 일컬어졌던 '설?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명을 찾기까지는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와 함께 진통을 겪었다. 어렵게 찾은 이름인 '설, 설날'을 일제에 의해 '신정'의 상대적 개념으로 쓰던 '구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명절 설을 폄하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설을 구정이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는 '설, 설날'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두고 구정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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