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멸치를 다듬는다(4)
<소설> 멸치를 다듬는다(4)
  • 성광일보
  • 승인 2021.02.0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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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소설가
김근당/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회원

이제 이만큼 살고 있으니 옛날 일은 잊었으면 싶지만 그게 아니다. 사사건건 가슴을 쑤시고 들어온다. 그러나 여자는 털어버릴 수가 없다. 다시없을 젊은 날을 망쳤기 때문이다. 험난한 바다 속에서 지지리도 못나게 살다가 구부러지고 비틀어진 멸치처럼. 

꿈 많은 처녀 시절이었다.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다. 남자와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행복을 설계하고 싶었다. 직장에서도 나왔다. 신혼 생활을 시작할 방을 사당동 산꼭대기에 있는 허름한 집에 얻을 때도 불평하지 않았다. 남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부엌을 임시로 만든 작은 방과 문간방, 그렇게 두 개를 얻어 문간방에는 시누이를 두고 겨울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부엌이 달린 작은 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아이도 생겼다. 장래가 있고 행복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난 어느 날 남자가 시골에서 중학교 일학년에 다니는 시동생을 전학시키자고 했다. 
문간방에 시누이와 함께 기거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머릿속에 박힌 어리석음을 빼내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경쟁력을 키워주자는 것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생각이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비와 늘어난 생활비가 남자의 봉급에서 나갔다. 하는 일이 없는 시누이는 어딘가로 나가 저녁때야 들어왔다. 

그러면서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터졌다. 시누이가 구두를 말없이 신고 나가고 코트도 입고 나갔다. 
어느 날은 장롱 문 열쇠를 부수고 옷을 찾아 입고 나갔다. 혼수로 해온 장롱이었다. 남자가 시누이를 타이르자 오빠는 너무한다고, 나에게는 옷도 한 벌 사주지 않고,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도 없고, 언니가 날 얼마나 무시하는지 아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주인집 사람들과 이웃집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여자는 창피하고 억울했다. 

그 후로 시누이는 시골로 돌아갔지만 시동생은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보내며 계속 학비를 대야 했다. 그 와중에 적금을 들어 모은 돈으로 시골에 농토를 사주었다. 배울 기회를 놓치고 시골에서 무력하게 사는 바로 밑의 남동생에게 그나마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한남동으로 금호동으로 산비탈 월세 집으로 이사 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였다. 시동생이 배가 동산 만하게 불러 동서와 함께 왔다. 시어머니가 형에게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본점 과장이었던 남자는 고심 끝에 전무이사에게 말씀드려 동생을 간에 권위 있는 대학 병원에 입원시켰다. 국내 최고의 간 전문의가 있는 곳이었다. 의사는 술에 간경화가 심하고 복수가 찼다고 했다. 

남자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입원비와 치료비를 대주었다. 여자도 죽어가는 시동생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으며 생활하기에 힘이 들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퇴원하고 시골로 내려간 시동생이 이번에는 목에서 피가 올라온다고 다시 찾아왔다. 의사는 또 다시 술을 먹으면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시골로 내려간 시동생은 또 술을 먹는다고 했다. 

여자는 남자와 돈 문제로 말싸움하는 날이 많았다. 남자는 동생이 불쌍하니 사람답게 살도록 도와주자고 했고 여자는 우리도 아이들과 살아야 된다고 했다. 남자는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돈을 벌어 앞으로 잘 살도록 해주겠다고 사정했고 여자는 제발 나를 좀 봐달라고 했다. 그런 와중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결혼할 때 받은 금반지를 팔아 장례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남자가 그렇게 하자고 사정했다. 

또 일 년이 지난 후, 시누이 결혼에 장롱을 해주자고 했다. 붙여먹을 땅도 없는 가난한 집으로 시집가는 동생이 불쌍하니 어떻게든 도와주자고 사정했다. 사글세 집에서도 돈이 필요하니 전세로 돌려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나가달라고 했다. 

둘째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원수 같았다.  
“이러려면 왜 결혼 했어? 당신 말이야! 그 잘난 동생들하고 살지. 내 인생은 뭔데. 내 인생 돌려놓으라고!”

여자가 악을 쓰며 대들었다. 남자는 마음이 처참했다. 
  “거지꼴에 사람 사는 도리도 모르는 네 어머니 아버지. 너도 똑같은 놈이야. 알았어!”

여자가 악에 받쳐 막말을 쏟아냈다.  
“뭐가 어쩌구. 어째!!”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의 얼굴에 손이 올라갔다. 
“그래 새끼야. 도와주면 도와주는 줄 아나, 지 새끼들을 맡겨 놓고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나. 왜 지 새끼들을 너한테 다 맡기는데!”

여자도 남자의 가슴을 쥐어뜯었다. 남자의 흰 셔츠가 찢어졌다. 남자는 여자를 이리 밀치고 저리 밀쳤다. 여자는 남자의 가슴을 박박 긁었다. 세 살 경애가 방구석에서 자지러지게 울었다. 단칸 월세 방이었다. 집 주인이 나가라고 소리 질렀다. 여자는 집을 뛰쳐나갔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오빠와 함께 사는 엄마 집으로는 갈 수 없었다. 밤길을 무작정 걸었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발길질했다. 자지러지게 울던 큰애가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았다. 

멸치는 이제 다 다듬어졌다. 남자는 먼 길을 걸어온 것 같다. 밖은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이제 비는 그친 것 같다. 잘 다듬어진 멸치들이 양재기에 수북이 쌓여 있다. 갖가지 모양이던 멸치들이 하나 같이 정갈하다. 머리와 내장은 깔아놓은 신문지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험난한 바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움직여야 했을 멸치들이다. 먹이 사슬의 위쪽에 있었더라면 좀 더 여유 있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을, 멸치나 사람이나 처해진 운명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청준도 그런 주제로 병신과 머저리를 썼을까? 형은 그렇다 쳐도 아우는 왜 머저리인지 알 수 없다. 선천적인 아픔이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의 말미에 아우는 머저리인 원인을 영영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남자도 머릿속에 박혀 있는 것이 있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처럼. 살아오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만 여동생과도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좀 더 좋은 길을 찾아주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착한 동생이었는데, 가난하게 살다 병을 얻어 일찍 죽었다. 남동생도 그랬다.

결국은 술에 빠져 죽고 말았다. 모두가 생긴 대로 살았다 갔다. 남자는 독서모임에 나가면 병신과 머저리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여자는 다듬어진 멸치를 이리저리 뒤적여본다. 혹시나 못난 것들이 들어있지 않나 싶어서이다. 모두가 잘 다듬어진 멸치들뿐이다. 지저분한 것들은 모두 제거되고 남은 것은 뼈와 살뿐이다. 단백질과 칼슘의 보고다. 여자는 가족을 위해 맛있는 반찬을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살아온 만큼 농익은 손맛을 더할 것이다. 여자가 멸치 양재기를 들고 일어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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