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의 역습
능력주의의 역습
  • 정성은 기자
  • 승인 2021.02.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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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광진투데이 편집국장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정성은/광진투데이 편집국장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정성은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으면 배달하고 있겠어요?' 
배달 기사를 상대로 막말을 한 유명 어학원 관계자의 갑질 논란이 뜨겁다. 처음에는 강사의 배달 갑질 사건으로 알려졌지만, 학원 측의 해명에 따르면 해당 인물은 셔틀 도우미로 근무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과 문제의 본질은 그 인물이 영어 강사냐, 셔틀 도우미냐 혹은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인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배달 노동자들에 대한 막말과 갑질 이슈는 성적을 기반으로 한 능력만능주의에 빠진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적주의, 업적주의, 실력주의로도 불리는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원칙을 뜻한다. 

다시 말해,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능력은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어떤 대학을 나왔으며,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느냐로 평가되어왔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맹모삼천지교를 불사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교육에 열을 올렸다. 대학 나온 내 아들, 딸들은 대학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당신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대한민국의 높은 교육열로 나타났다.

노력을 통해 좋은 대학에 진학을 하고,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 되어 궁극적으로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되리라는 기대가 팽배한 시기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2021년을 살아가는 지금, 길을 가는 누군가에게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다면 과연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까. 개인의 노력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능력이 있으면 그 능력 발휘를 통해 계층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 그것이 아직도 존재하는가? 이미 많은 이들로부터 그런 믿음이 깨어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취와 성공이 도덕적으로도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능력주의의 승리자들은 내가 누리는 이 성공이 나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 능력 덕분이라고 믿는다.

능력주의 그 자체는 일견 매우 공정하고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문제는 오늘날 만연한 능력주의적 폭정과 교만이다. 능력주의는 승자의 오만함과 더불어 패자의 굴욕감과 자괴감을 정당화한다. 

또한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아, 내가 능력이 없어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는 패배감을 정당화한다. 마찬가지로 네가 그렇게 사는 것은 네가 능력이 없어서, 네가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승자의 경멸을 내재한다. 마치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이 본인이 3루타를 친 것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주 인용했던, 롤링 스톤즈의 유명한 노래 <You can make it if you try ? 노력한다면 해낼 수 있어>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잔인한 문구가 되고 있다. 

노랫말 그대로, 내가 노력한다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은 우리에게 보장되는 것인가? 그리고 그 노력은 책상 앞에서 펜대를 굴리며 컴퓨터를 만지는 노동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작동을 위해 이뤄지는 모든 노동의 존엄성을 보장하는가? 노동의 존엄성 다시 말해 일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되, 경제적 접근을 넘어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만큼 배달, 택배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비단 필자의 삶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시민들이 감염 예방 수칙을 잘 지킨 덕분에 일반 감기 환자의 수는 대폭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포장, 배달 등으로 각 가정에서 버려지는 쓰레기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국민의 생명, 안전과 사회기능 유지를 위해 핵심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로 보건, 의료, 돌봄 종사자, 배달업 종사자, 환경미화원, 제조·물류·운송·건설·통신 등 영역의 대면 노동자를 필수노동자라고 한다. 의사 선생님과 환경 미화원, 우리가 두 직종에 대해 갖는 인식은 어떠하며 그들의 사회적 처우는 어떠한가. 사회의 공동선(the common good)에 기반한 보상, 그리고 필수노동자에 대한 깊은 정책적 고민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곧 민족의 명절 설이다. 설 연휴 사나흘 동안 엄청나게 쏟아져나온 쓰레기를 집 밖으로 내다 놓으며 '어휴~ 무슨 쓰레기가 산더미 같네.'하고 놀라는 순간, 그 쓰레기를 처리하는 노동을 담당하는 분들에게 감사와 안녕을 기원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또 한 번쯤은 나를 대신해 갖가지 위험을 감수하고 내가 먹을 음식을 따뜻하게 전달해주는 배달 기사님들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작은 인사를 건네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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