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아버님에 대한 회고
<수필> 시아버님에 대한 회고
  • 성광일보
  • 승인 2021.02.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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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아 / 작가
배경아·경북 예천군 출생·안동대학 가정학과 졸업·광진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광진문인협회 회원
배경아
·경북 예천군 출생
·안동대학 가정학과 졸업
·광진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광진문인협회 회원

응급실에 누워 계시던 아버님은 수척해진 얼굴에 코에는 산소 줄을 꼽은 채,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산소 줄이 빠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해서 연로하신 시어머님 대신 내가 아버님 곁을 지키게 되었다.

아버님은 계속 산소 줄을 빼려고 하셨다.
“아버님, 이 줄을 빼면 안 돼요. 큰일 나요.”하고 말씀드리곤 손을 내려드렸다.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다가는 다시 손을 올린다.
거추장스러워 그랬을까? 아파서 그랬을까, 아니면 이 세상과의 연결 고리를 스스로 없애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까? 눈으로 물어 보었지만, 아버님은 미동도 없었다.
손을 잡아 보니 가죽만 남은 깡마른 두 손등은 온통 붉은 자줏빛으로 변해 있었다. 링거 주사 자리를 찾느라 그랬던 모양이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검사를 해야 하는데 주삿바늘을 찌를 곳이 없단다. 한참을 애쓰던 간호사가 나가고 두 번째 간호사가 와서야 발등에 링거 바늘을 꽂을 수 있었다. 장에 구멍이 생겨서 급성 복막염이 심한 상태란다. 수술하지 않으면 위독하고 수술을 하더라도 구십 노인이라서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도 없단다. 복막염이면 엄청 고통스러웠을 텐데 아버님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수술을 기다리는 사이 아버님은 숨을 거두셨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영정 속의 아버님은 환하게 웃고 계셨다. 사십 대 초반으로 미남이시다. 평소의 멋진 아버님 모습이었다. 아버님에게도 저렇게 젊고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구나…
“에미야,”하고 나를 부르실 듯하다.

둘째 딸은 장례식장에 들어서면서 이미 울고 있었다. 얼마나 우는지, 돌아보면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딸을 보니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시동생과 손녀인 둘째 딸은 특히 많이 울었다.

“수민아, 그만 울렴. 할아버지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하시며 손녀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 같았다.
아버님은 육십 대 후반에 얻은 둘째 손녀에게 소나기 같은 사랑을 주셨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던 날, 갓난아기였던 둘째가 가엽고 아버님에게 미안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님은 그런 나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셨다. 다른 이에게는 맡길 수 없다면서 직접 손녀를 키우겠다고 하셨다. 모든 일에 철두철미하셨던 아버님의 성정을 알기에 믿고 믿겼지만, 얼마나 고생이 되셨을까 싶었다.

칭얼거리는 손녀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를 다니셨다. 잠투정으로 칭얼거리면 등에 업어 잠을 재웠다. 유모차에 손녀를 태우고 다니는 모습은 하루도 빠짐없는 일상이었고 동네에서 손녀를 키우는 할아버지로 유명했다. 

지극정성으로 손녀를 키우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며 사람들은 내게 말하곤 했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먹으면서 둘째 딸은 쑥쑥 자랐다. 아버님은 손녀와 초등학교를 6년 동안 같이 다니셨다. 수업 마칠 때쯤이면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집에 데려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동네 슈퍼마켓에 들러서 과자를 사 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둘째 딸 옆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교할 때면 손녀와 친구들이 앞에서 걸어가고 책가방을 든 아버님이 그림자처럼 뒤를 따르셨다.

아버님은 음식을 즐겨 하셨고 맛도 있었다. 가족들에게 자주 음식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중에 짜장면이 제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친정아버지는 평생 부엌에 들어오는 법이 없었는데 시아버님은 점심이나 저녁은 혼자 해결하셨다. 하루 세끼를 엄마에게 의지하는 아버지를 보았던 내게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아버님의 점심은 언제나 손녀와 함께였다. 국수를 좋아하셔서 점심은 국수나 라면을 드셨는데 이것저것을 넣고 끓이면 참 맛있었다고 둘째 딸은 회상했다.
둘째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가 늦게 마치니 할아버지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퇴직하고 적적하던 날들에 손녀를 키우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대부분을 차지했던 손녀와 함께했던 시간을 무엇으로 소일하셨을까? 텅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우고 그 허허로움을 이겨냈을까?

아버님을 보면서 노년의 외로움과 육신의 고통은 삶의 끝자락에서 누구나 겪어야 하는 필수요건인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다. 아버님을 떠올릴 때면 고마움과 슬픔이 함께 찾아온다. 내 살기 바빠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잘 챙겨드리지도 못했다는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아버님이 느꼈을 외로움, 적적함을 방관하지 않았나 싶어 너무 죄송스러웠다.

평생을 직장에서는 성실한 일꾼이셨고 가족을 위해 일하시며 무한의 사랑을 주셨다. 이제 고단했던 삶의 여정을 내려놓으시고 편안한 안식의 나라로 가셨다. 곁에 안 계시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나 살아계신다.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 금이야 옥이야, 손녀 키우는 낙으로 노년을 보내셨던 아버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님이 떠나신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스물다섯의 아름다운 처녀가 된 둘째를 볼 때면 아버님 생각이 더욱 많이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된 둘째를 보시면 얼마나 흐뭇하실까?

아버님의 한없던 그 사랑을 어이 잊을 것인가?
아버님! 아버님의 사랑을 늘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먼저 가신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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