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또순이 아리랑(1)
<소설> 또순이 아리랑(1)
  • 성광일보
  • 승인 2021.02.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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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성/성동문인협회 회원
기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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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철준이 실직한 지 석 달이 넘어서면서 미영은 뒷골 아픈 증상에 시달렸다.
일이 없어 트럭을 세워놓고 있는 줄 알았는데 주민센터 다녀오는 길에 만난, 신랑 후배 학신이
 “형수님! 철준이형 먼저 음주 걸린 거 벌금 얼마 냈어요?"

소리를 듣고 집에 와서 철준과 한바탕 싸운 뒤 화가 가라앉지 않아 청계천 수변로로 나왔다. 교회에서 기증한 쌀 1포를 주민센터에서 받아오는 중이었는데 길바닥에 쌀 포대를 패대기치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주방에 던져 놓고 나온 것이다. 

산책로와 자전거 길을 오가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저리 밝고 즐겁게 사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기구에 몸을 얹고 열심히 운동하며 미소 가득한 사람들도 내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자 너무 생활에 쫓기며 힘들게 살아간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계모 밑에서 중학교 때부터 부엌데기, 봉제공장에서 잡일을 했던 미영은 공장 재단사와 먼 친척인 철준과 결혼할 때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시골서 상경한 철준과 결혼한 뒤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한 살림이었지만 무척 행복하고 즐거웠으며 계모 밑에서 자라며 받았던 설움도 눈 녹듯 사라졌었다.

군 수송대 운전병 출신의 철준을 위해 잔업, 철야, 특근을 마다치 않고 억척스럽게 일해 트럭 할부를 갚아 나가고 있었고 금실도 좋아서 애를 내리 셋이나 두었다. 미영은 한 번의 잠자리마다 애가 들어서자

 “뭔 성능이 이리 좋은가?"하고 혼자 배시시 웃곤 했는데 신랑이 음주에 걸려 일을 못 하자 트럭 할부금과 월세, 애들 학원비와 생활비 등이 밀려 공장 출근도 안 하고 사흘째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다. 주인아줌마가 주민센터에 이야기해 줘 오늘도 쌀 20kg를 받아오다 신랑이 음주운전에 걸려 일을 못하게 된 걸 알자 처음으로 결혼을 후회하지만 한편 애들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맺힌다.

철준은 마누라 눈치 때문에 막노동일 하는 형을 따라 잡부로 따라다녀 봤지만 몇 푼 일당으로 동료들과 어울려 술 한잔 걸치면 집에 가지고 갈 돈이 없고 또한 운전만 하던 몸으로 철근, 벽돌 일을 하자니 체력이 따라 주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은 일을 못해 쉬지만 같이 일하는 잡부들과 어울려 마누라 시선이 고울리가 없다. 이번 8월은 장마로 겨우 8일밖에 일할 수밖에 없었다. 

애들 학원비가 밀려서 보낸 지 오래다. 원장은 그래도 보내라 하지만 집 보증금 이천만 원도 못 낸 월세로 제해 오백만 원 정도 남아 일할 기운도 없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비가 청승맞게 오던 9월 20일! 집 앞 골목 전봇대 옆 노 씨네 집이 시끌벅적해 누워 있던 미영은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경찰도 와 있고 119 소방대원이 들것에 사람을 싣고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미영이 생일날이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아줌마 무슨 일 났어요? 어이구 새댁! 저 집 세든 아가씨가 목 매달아 자살했데! 네에?"

미영은 앞집 아가씨와 대화는 없었지만 여러 번 마주친 일이 있어 어디서 보면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고, 길에서 수인사도 몇 번 해서 정확히 기억한다.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한다는 20대 후반의 그 아가씨는 핏기가 없이 늘 흰 얼굴에 병약한 모습이었다. 그 집 쓰레기 봉지에 약봉지나 약병이 자주 보여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는데 자살을 하다니. 당장 내 코가 석자지만 미영은 눈앞에 이웃의 한 생명이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과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비 오는 날이라 철준은 두 다리 쭉 펴고 안방에  태평으로 드러누워 있다.

그러고 있는 철준을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치밀고 있는데. 노 씨네 아줌마 남열 엄마가 불러 밖으로 나간 미영은 자살한 아가씨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순천(順川)이 고향인 아가씨에게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남자 친구는 지난겨울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더니 딴 아가씨와 사귀며 자살한 아가씨를 버렸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남자가 마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대학을 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워 살갑게 대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챙겨 주고 하다가 정이 들어 연인이 되었었다. 

젊은 나이에 당뇨를 앓으면서도 청년 뒷바라지를 하며 대학을 졸업시켰고 취직을 하면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탈북 청년은 학교에서 다른 여대생을 사귀어 졸업을 하면서 아가씨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아가씨는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매 자살을 했는데 외가 쪽 먼 친척이 와 화장을 했다고 한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했거늘 잘 알지는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 인생이 불쌍하고 서글프단 생각과 자본주의를 겪으며 여자를 버리고 은혜를 배신하는 것을 먼저 배운 탈북청년이 괘씸하기만 했다.  

외국 사람이 한국말을 배울 때 욕을 먼저 배운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탈북 청년도 못된 것을 먼저 배웠다는 생각과 어쩌면 자본주의의 삶이 그런 모습을 청년에게 보여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대의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패륜 범죄나 강력한 사건 사고가 일상화되어버린 이 시대의 끝이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우리 식구도 이대로 살다간 그 아가씨처럼 극단적인 일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구나 생각하니 쪽 소름이 끼쳤다.

미영은 갑갑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응봉산 팔각정에 올랐다. 갑자기 자기 꼴이 어떤가 보고 싶어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봤다. 화장기 없는 부스스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 모양, 머리에 꽃이라도 꽂고 다니면 영낙없는 미친년 꼬락서니다. 옷차림도 아들이 입던 낡은 운동복 티셔츠에 무릅이 튀어나온 츄리닝과 슬리퍼 차림이었다.
벤치에 앉은 미영은 작년까지 다니던 공장의 이만규 사장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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