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에서 우리나라 수도의 역사가 시작되다
뚝섬에서 우리나라 수도의 역사가 시작되다
  • 서성원
  • 승인 2021.02.2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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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18) 수도박물관
수도박물관 본관. 서성원ⓒ
수도박물관 본관. 서성원ⓒ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333 생존 법칙이란 게 있더군요.
숨을 쉬지 않으면 3분, 물을 마시지 않으면 3일, 음식을 먹지 않으면 3주를 버티기 힘들다는 겁니다. 사람에겐 물이 참 중요하죠. 사람 자체가 물이기 때문입니다. 체중의 70%가 물이랍니다. 근육의 75%가 물이고 심지어 뼈도 22%가 물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물로 보는 것'은 합당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물로 보면 왜 그렇게 불쾌할까요. 사람은 물이기 때문에 하루에 2-3L 정도의 물을 꾸준히 마셔야 합니다. 평생 70톤 정도를 마시게 된다고 합니다. 오늘은 사람이 마시는 물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수도박물관 내부 전시실. 서성원ⓒ

◆ 어느 산골 마을에서 상수도를 만들면서 벌어졌던 이야기

산골 마을까지 바람이 불어왔다. 동네 사람들은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슬레이트로 바꿨다. 마을 진입로를 넓혔다. 새벽종이 울렸으니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어야 한다고, 드센 바람이 불었다. 시멘트를 줄 테니 동네를 확 뒤집어놓으라고 채근했다. 산골 사람들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싶었다. 
높은 곳에 있는 샘물을 골라서 PVC관을 연결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집집마다 마당 한 켠에 수도꼭지 하나씩을 설치했다. 1가구 1꼭지였다. 그런데 투덜대는 이들이 나타났다. 샘물에서 거리가 먼 쪽 사람들이었다. 샘물 가까운 사람들 좋은 일만 시키는데, 같이 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샘물 수량이 온 동네 사람들이 쓰기엔 모자랐기 때문이다. 말썽이 있었지만, 공사는 끝났다. 아뿔싸, 저지대 사람들 집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콸콸 쏟아졌다. 반면에 샘물과 가까웠던 집의 수도꼭지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압이 낮아서 그랬다. 

야외 전시장. 서성원ⓒ

◆ 서울 사람들은 언제부터 수돗물을 마셨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수도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서울숲 공원과 한강 사이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서울 사람들이 수돗물을 마시게 된 시작부터 그 과정을 알려준다. 박물관 땅은 꽤 넓었고 건물들은 아담하다. 박물관 주위에 50층 건물이 있어서 더 작아 보였다. 봄처럼 따뜻하다 눈발이 날리던 2월이었다. 박물관의 주요 시설은 본관과 별관이다. 그리고 물과환경전시관, 야외전시장, 야외체험장, 완속여과지가 있었다.

1906년 취수관 설치 공사. 뚝섬의 한강에 설치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정수장

우리나라 상수도의 시작은 100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한제국시대다. 1903년 12월 9일 미국 기업인 콜브란(C.H.Collbran)과 보스트위크(H.R.Bostwick)는 고종황제로부터 상수도 시설과 경영에 관한 특허권을 받았다. 그 이후에 1905년 8월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Korean Water Works Co.)는 1906년 8월 초 공사를 시작하여 1908년 8월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을 완성했다. 1908년 9월 1일부터 완속 여과 방식으로 생산한 12,500㎥의 수돗물을 사대문 안과 용산 일대의 주민 12만 5천 명에게 공급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 상수도 역사의 첫 출발이다. 따라서 만약 '수도의 날'을 정한다면 9월 1일이 적격이다. 

박물관 입구. 서성원ⓒ

◆ 왜 뚝섬에 정수장을 세웠을까

수도 시설을 만들려면 한강의 물을 끌어들여야 했다. 그러려면 펌프를 돌려야 한다. 그 당시에는 이게 증기기관이었다. 나무를 태워야 했다. 강원도에서 뗏목으로 내려는 나무를 받는데 뚝섬이 유리했다. 뚝섬나루가 있었다.
그런데 수도를 설치하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19세기에 콜레라가 생기면 희생이 컸다. 한성 시민은 깨끗한 물을 원했다. 사람이 원하면 장사가 생겨난다. 이때 나타난 상인이 물장수다. 이들은 수상조합(水商組合)을 만들어 배급과 가격으로 장난을 쳤던가 보다. 그래서 수도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믿을 수 있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물을 사람들이 원하고 있다. 그래서 또 물장수가 나타났다. 그들을 물지게로 나르지 않고 페트병에 넣어서 팔았다. 그게 에비앙, 삼다수다. 세상은 이렇다. 달라지기도 하지만 비슷한 행태로 굴러간다.

▲서울에 상수도가 1908년에 들어왔다. 모든 사람이 혜택을 입은 것은 아니다. 물을 들고 가는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물긷기의 고단이 느껴진다. 사진에서 자세히 보면 행정구역이 성동구이고 1973년이다. 1973년까지는 지금의 광진구, 강동구, 송파구, 강남구도 성동구였다. 
▲급수차에서 가정으로 물을 긷는 모습인데 여성들이 물지게를 사용한다.
▲사진 촬영이 70년대다. 급수차에 '성동'이라고 적혀있다. 어린아이들까지 급수차 시간에 맞춰 나왔다. 한 통의 물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을 받기 위해 물동이가 줄을 섰다. 끝이 없다. 양산을 쓴 이가 있는 것으로 봐서 한여름이다. 서울이라고 하지만 산동네 사람들은 고단한 세월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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