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없는 양말 오늘도 허탕이로구나
짝 없는 양말 오늘도 허탕이로구나
  • 성광일보
  • 승인 2021.03.0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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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발이 조금 작다. 딸아이의 발도 저의 발을 닮았다. 그래서 딸아이가 가끔 제 양말을 신기도 한다. 저는 조금 두툼한 양말을 무지개 색깔별로 구입을 한다. 보통 2주일 동안 신을 수 있도록 넉넉히 장만을 한다. 일주일 동안 신었던 양말을 하루 날 잡아 세탁기를 돌려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처음 구입한 양말은 같은 색깔 같은 무늬에 맞게 모두 짝이 맺어져 있다. 옷장에 넣을 때 까지는 흐트러짐이 없다. 또한 제가 신기전까지, 다른 사람이 흩트려놓기 전까지는 온전히 가지런하다.

딸아이는 밤늦게 운동을 하러 나간다고 어두운 옷장에서 저의 양말을 한 켤레 두 켤레 꺼내간다. 얇은 스타킹 보다 두툼한 양말이 더 좋은가 보다. 그저 발이 편하면 그만이다는 생각에 색깔이나 무늬의 구별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두운 밤이라 구별하기도 어렵겠지만.

어느 날 옷장을 열어보니 양말은 쌓여 있는데 짝이 맞는 양말은 한 켤레도 보이지 않았다. 한 겨울이라 아래층 세대를 위해 세탁기를 돌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빨랫줄을 찾아보고 빨랫감 쌓아둔 바구니를 뒤집어 보면서 신을 만한 양말을 찾는다고 야단법석을 부려보았다. 안타깝게도 신을 만한 양말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어제 신었던 양말을 그대로 신을 수밖에 없었다. 바구니에 쌓여있는 세탁물을 한꺼번에 몰아넣고 세탁기를 돌리니 덜커덩 거리며 힘들게 돌아간다. 힘들어하는 세탁기를 보면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주인을 잘못만나 양말들은 하루하루 짝꿍을 잃어간다. 보름이 지나자 열 켤레의 양말이 모두 짝이 맞지 않았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혼자 신을 때는 아무 탈이 없었는데, 간혹 한두 짝 세탁기 통속에서 잠자고 있는 녀석이 있기는 해도,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다보니 정리가 깔끔하지 못하고 어지럽다. 저의 생각대로 반듯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저는 분명 오른쪽에 두었는데 며칠 지나서 보면 왼쪽으로 옮겨져 있다. 제가 착각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또 다른 주인이 자리를 옮겨 놓은 모양이다. 서로 짝을 잃고서 자신의 짝을 찾아달라고 부르짖듯 옷장을 쿵 쿵 두세 번 열었다 닫았다 해본다. 그러다가 서로 비슷한 색깔의 양말을 그냥 신는다. 어느 새 나도 짝을 분리하는데 동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 날을 그렇게 신다 보니 제대로 된 짝꿍이 있을 수 있겠는가. 새로 장만을 해야 하나 하면서 오늘도 세탁물 바구니를 뒤진다. 이제부터는 새로 사온 양말들이 제 짝을 잃지 않도록 꼭꼭 묶어두어야겠다.

처음에는 좋아 보이던 사람이 갈수록 실망을 안겨주면 싫어진다. 좋게 보이던 것들이 온통 거짓으로 보이고 흠으로 보인다. 첫 마음과 끝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시작하는 마음이 좋았으면 끝 마음도 좋아야 하겠지만 그 중간 중간에 다른 마음이 끼어드는 것이다. 민심이 떠나가는 것도 누군가가 대중의 마음을 흩트려 놓은 것이다. 여기에 있던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저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분명 누군가가 옮겨 놓은 것이다. 이를 알면서도 본래의 자리로 갖다 놓으라고 외치지도 않는다. 배고픈 사람들 앞에서 ‘쓸데없이 배부르다’ 하고 떠드는 사람을 보면서도, 하얀 것을 검다하고 검은 것을 하얗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우리는 모두 도긴개긴이라 여긴 듯하다. 그렇게 물들어가고 있다.

한 색깔로 일주일을 살아가면 지루하다고 다른 사람들이 일곱 가지의 무지개빛깔을 선물해주었을 것이다. 빨주노초파남보, 세상은 이렇게 수많은 빛깔과 색깔을 가지고 때로는 경쟁을 하고 때로는 동조를 하고 때로는 양보를 하면서 아름다운 무지갯빛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색깔이 수많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너 대로 나는 나대로의 빛이 있고 색깔이 있지만 순서를 지키고 원칙을 지키면 아무런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 발광체(發光體)가 되기도 하고 스스로 반사체(反射體)가 되기도 한다. 주고받음이 없다면 어찌 그 빛이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조화가 있는 질서는 아름답다.

한 평의 옷장과 한 뼘의 마음이 교차한다. 오늘은 짝꿍이 어울리는 양말을 신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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