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가 꿈꿨던 사랑
<에세이> 내가 꿈꿨던 사랑
  • 어효은 기자
  • 승인 2021.03.1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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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효은/기자, 작가
어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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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나는 어떤 사람과 사귀게 될까?” 고등학생 때 가끔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며 상상하곤 했다. 여중, 여고를 나왔기 때문에 십 대 때 남자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 고백을 받아본 적은 있지만, 연애를 한 건 아니었다. 대신 고등학생 때 선생님을 좋아한 적은 있다. 나 말고도 많은 친구들이 남자 선생님 한 명 정도는 좋아했다. 

하루는 좋아하는 선생님이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장실에 들어가 남몰래 울기도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처음엔 짝사랑을 했다. 기간은 2년 정도였는데 처음엔 친한 친구였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친구들을 도와주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점점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게 됐다. 

좋아하기 시작하니 그 친구의 말투, 걸음걸이, 웃는 모습,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평생을 함께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당시 그 친구에겐 여자 친구가 있었다.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도 고백할 용기가 없었다. 어색해져서 친구조차 못하게 되어 버릴까 봐 겁이 났다. 같이 그 친구를 짝사랑했던 친구는 세 번이나 고백해서 결국은 그 친구와 사귀게 되었다. 용기 있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다! 정말 맞는 말이다. 어쩐지 난 자신이 없었다.
보통 연애한 지 100일이 넘어가면 평생 갈 것 같던 하트뿅뿅 눈빛은 사라져 간다. 서로가 편안해지면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투에는 본인도 모르게 무시와 명령조, 비난이 묻어난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을 그리워한들 지나간 초콜릿 눈동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때로 돌려놓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잃어가고 더 외롭고 비참해졌다.

나만 바라보길 바랐기 때문에 다른 이성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만 봐도 질투가 솟구쳤다. 내가 건수를 물고 와 딱따구리처럼 쪼아대기 시작하면 애인은 해명하다가 지쳐서 결국엔 화를 냈다. 나중엔 거짓말을 하고 서로를 속이고 신뢰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나는 내 탓이라 자책하며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감정에 점점 더 괴로워했다. 상대에게 퍼붓듯이 사랑을 주었던 건 사실 내가 받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였다. 내가 주면 주는 만큼 나를 언제까지고 사랑해주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했다.

이런 사랑 방식은 많은 부분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것들이다. 엄마는 정말 외로워했다. 아빠 앞에서 눈치를 보고 불안에 떨었다. 우리를 키우느라 참고 또 참았다. 엄마는 사랑받고 싶었다. 따듯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사랑표현을 잘하는 남편을 만났다면 엄마의 미소는 꽃처럼 활짝 피었을 텐데. 

엄마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고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에 대한 불신감은 은연중에 서로를 깎아내리고 비난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애증의 관계로 뿌리내렸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불행한지, 커서도 정서적으로 얼마나 큰 괴로움에 시달려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 지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분의 탓이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을 때 서로를 만났던 것뿐이다.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보며 애인을 사귀게 되면 상대에게 애정표현을 잘하고 싶었다. 나의 문제는 그만큼 남자친구로부터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했다는 것이었다. 점점 나는 없어졌다. 상대에게 인정받고 의존하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상대도 큰 부담을 느꼈을 거다. 내 당당한 모습이 좋았던 건데 그 모습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불안해하고 애정을 구걸하는 모습에 질려 했다. 그럴수록 사랑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자책하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큰 걸 바랬던 건 아니었다. 내게 관심을 주길, 내 마음이 어떤지 물어봐 주길 바랐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같이 영화를 보러 가고 바다를 보러 가고 서로의 우주를 탐험하고 싶었다.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루는 상대가 좋아하는 걸 하며 서로를 계속해서 끊임없이 알아가고 싶었다. 영원토록 변화하는 우주이기에 매일 매일 함께 있어도 소박한 이야기가 정글처럼 자라나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지금 보니 꽤 큰 거 같기도 하다.

위에 나열한 것들을 하나씩 스스로 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내게 관심을 가지고 내 마음이 어떤지 궁금해하고, 물어보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변화하는 내면을 바라보고. 나를 알아가고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마치 어린 아기가 걸음마 떼는 연습을 하듯이. 여전히 많이 넘어진다. 그러면서 배워가고 있다.

집에 오는 길에 딸기가 먹고 싶어서 딸기를 샀다. 두 개를 사서 언니 하나, 나 하나 나눠 가지고 왔다. 따듯한 물로 먼저 샤워를 했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딸기를 깨끗이 씻어 하나씩 입에 넣는다. 두려웠고 지독히 고독한 시간을 보냈던 외로운 여자가 받고 싶었던 사랑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녀의 마음이 편안하길 기도한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진심으로. 
(lovewill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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