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먼저 보이는 시장을 아십니까?
사람 먼저 보이는 시장을 아십니까?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1.03.12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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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19)금남시장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

금남시장 안내도. 출처  금남시장 특성화 첫걸음시장 육성사업단<사진: 서성원ⓒ>
2021년에 금호지구단위계획을 성동구청에서 발표했다. 금남시장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 세상을 떠나는 이가 금남시장을 그리워한 까닭은

정호는 친구 병문안을 갔었다. 일산에 있는 병원이다. 진수 친구의 얼굴은 핏기라곤 없었다. 
“에이 새끼, 멀쩡하네. 퇴원하면 한잔해야지.”

마른 입술로 진수가 겨우 대답했다.
“술값, 니가 낼 거지?”
“알았어, 임마.”

이렇게 실없는 소릴 하고 있을 때 진수의 아내가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저이가 금호동에 가서 살쟤요. 거기서 뭔 일이라도 있었어요?”

정호는 딱히 아는 게 없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진수를 내려다보며 정호가 장난기 섞인 말투로 물었다. 
“너 임마, 거기서 예쁜 아가씰 만났었구나. 보고 싶냐? 데리고 올까? 어디 사냐?”

그리고 몇 개월 뒤에 진수는 뼛가루가 되어 금호동을 들렀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정호가 병문안 갔었던 곳은 국립암센터였다. 진수는 암 말기였다.
○      ○
진수가 상경해서 처음 살았던 곳이 금호동이었다. 달동네였다. 진수는 연탄배달을 했다. 쉽지 않았다. 산비탈 동네여서 지게질로 배달했다. 키가 작은 데다 몸이 약했던 진수로서는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식비라도 아끼려고 콩나물 반찬으로 버텼다. 그것도 떨이를 사려고 느지막이 갔다.  돌아오는 길이 괴로웠다. 붕어빵 장사 때문이었다. 금남시장 끄트머리에 있었는데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는 시간까지 버티고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콧속으로 파고드는 붕어빵 냄새는 너무나 달콤했다. 그곳을 지나려면 진수는 더 허기졌다. 통닭, 국밥, 순대, 찐빵, 떡볶이, 호떡, 순댓국, 뻥튀기, 파전, 고구마 튀김, 빈대떡, 수수부꾸미, 꽈배기, 전병, 떡, 냉면, 짜장, 짬뽕, 족발, 부대찌개, …. 시장에서 이렇게 먹고 싶은 것들을 뿌리치고 벗어났다 싶은데, 붕어빵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돈 벌기만 해봐라. 혼자 다 먹어치울 꺼다.'
어느 날인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지나치는데 붕어빵 장수가 그를 불렀다. 빵 하나를 내밀었다. 그 후에도 그런 일은 더 있었다. 터진 거라서 팔 수 없다면서.
“아저씨, 이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요.”

붕어빵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붕어빵 장수가 일부러 빵을 망가뜨린다는 걸 진수는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 동네에서 이상한 일은 더 있었다. 자취하면서 빨강 플라스틱 바께스에 쌀을 담아두고 먹었다. 그런데 쌀이 줄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범인은 자취 집 주인아줌마였다. 진수 몰래 한 줌씩 넣었다. 진수 역시 그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때는 가난하고 배가 고팠기에 모른 척했었다고 병상에서 말했다. 그러면서 병이 나으면 금호동에 살면서 금남시장을 다니고 싶다고 했었다. 

◆ 사람 많은 서울에서 만나지 못한 사람을 금남시장에서는 만나지

정호는 한남동에 산다. 거기에 집이 있다. 정호네 집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번쯤 돌아본다. 그럴 정도의 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정호 아내 잔소리가 심해졌다.
“아니, 왜 먼 데까지 다녀요. 숨겨둔 사람이라도 생긴 거요?”

정호는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술 마시는 데가 금남시장이다. 정호 아내는 그게 의심스럽다. 
“허허 참, 몇 번을 말해야 할까. 직장 다닐 때 존경하던 선배가 그 동네 살아. 그 선배랑 마시면 술맛이 나거든.”

사실은 아니다. 정호는 진수가 마지막으로 살고 싶어 했던 동네와 그 시장이 궁금했다. 그래서 정호는 종종 금남시장을 찾았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칠천 원짜리 순댓국 하나로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껄껄 웃는 사람들이었다. 사람 넘치는 서울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기자가 금남시장을 취재하러 간 날은 2월 26일 금요일이었다. 해 질 무렵이었다. 저녁 찬거리를 마련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반면에 식당들은 한산했다. 요즘 많은 동네에서 식당들은 브레이크 타임을 둔다. 

돈이 안 되는 시간에는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유독 한 곳은 사람들로 꽉 찼었다. 밖에까지 왁자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웬일인가 해서 주인에게 물었다. 
“정월 대보름이잖아요.”
응? 불금이 아니고 정월 대보름이라니 ……. 아직도 마음속에 달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 민족의 큰 별 백범, 마지막 족적을 금호동에 남기다

정부에서 전통시장을 지원하고 있다. 금남시장 특성화 첫걸음 육성화사업단에서 만든 홈피에 들어갔다. 여기에 금남시장 캐릭터가 있었다. '백범이'이다. 백범은 김구다. 
백범이 금호동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백범이 북한에서 내려온 전재민(이재민)들을 위해 금호동에 집을 지었다. 120채(600~800세대)라고 하니까 대단한 규모다.  이 주택을 후대 사람들은 김구주택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해성마트 주변이라고 한다. 금호4가 548-1이다. 

해방이 되었지만 김구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개인 자격으로 입국했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김구가 북한 이재민을 위해 어떻게 주택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유해가 들어올 때 봉환식을 가졌다. 그때 들어온 부의금과 장남 김신의 결혼축의금을 보태어서 주택을 지었다고 한다. 

김구는 1949년 1월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금호동에 교육 시설도 마련했다. 백범학원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초등학교 정도다. 4개 학년이고 6학급에 470명이 공부했다고 한다. 

김구가 이렇게 활동할 때 제보가 들어왔다. 암살. 하지만 김구는 믿지 않았다. 일본인도 자신을 살해하지 못했는데 동포가 나를 위해하겠냐며 무시했다. 
1949년 6월 26일 12시 36분, 육군 소위 안두희가 총을 쏘아 백범을 쓰러트렸다.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믿었던 동포 때문에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금남시장은 이런 아픔을 지니고 있다. 알고 보면 시시껄렁한 전통시장은 아니다. 그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 백범, 금남시장의 캐릭터 '백범이'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백범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제대로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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