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대중화 목표, 다양한 계층이 즐길 수 있는 국악 선보이고파
국악의 대중화 목표, 다양한 계층이 즐길 수 있는 국악 선보이고파
  • 정소원 기자
  • 승인 2021.03.25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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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판소리명인을 만나다 - 진민구 판소리

-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국악예술 선보여
- 국악의 대중화 목표, 다양한 계층이 즐길 수 있는 국악 선보이고파
- 국악엔터테인먼트 ‘국악의 봄’ 창업, 다양하고 젊은 음악을 ‘차세대 선진 국악화’시킬 것

진민구 소리꾼(31)은 (사)한국국악협회 성동구지부에서 다년간 일해오며 성동문화재단, 성동문화원, 성동구청 등 기관이 주관하는 행사들에서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국악예술을 선보여왔다. 그가 참여해왔던 작품은 많은 것이 있으나 대표적인 행사들로는 2019년 성동구 정월대보름 맞이 축제, 성동문화원 응봉산 개나리축제, 성동구청 주관 실버뮤지컬 내 삶의 노래, 성동문화재단 주관 태조 이성계 축제, 제100회 전국체전 기념 서울문화체전 한마당, 성동구 지역문화 창작 공연극 답깨비 축제, 성동문화원 창극 풍류9, 제 158회 성동문화마당 국악공연 풍월을 싣고 2 등이 있었으며 코로나로 힘들었던 2020년에도 성동문화원에서 진행했던 공연 풍류 10 등이 있었다.

그는 성둥구에서 활동한지 올해 5년차로 접어든 예인이다. 또한 국가무형문화재 제 5호 판소리 이수자로,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연희예술학부를 졸업하고 동대 한국음악학과 석사를 마친 후 제15회 공주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 제20회 전국판소리경연대회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 제13회 무안전국승달국악대제전 고법 일반부 ‘최우수상’ ,제2회 수림재단 동교인재상 ‘금상’ 등을 수상해온 실력자이기도 하다.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전통을 훌륭히 이수한 예인으로 인정받은 그가 활동범위를 넓혀 연극이나 소리극, 창극등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을 하고, 특히 성동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지역 내 예술인 발굴 면에 있어서도 큰 의의가 있다.

그가 첫 초청된 계기는 2016년 (사)한국국악협회 성동구지부 초청 공연이었다. 진 명창이 초청된 공연은 하루 공연이었지만 주민들의 뜨거운 호응과 관심을 바탕으로 인연이 되어 성동구지부장과 연결되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예술을 갈고 닦으며 우리의 소리를 주민들에게 들려준 셈이다. 다음은 진민구 명창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사)한국국악협회 성동구지부에서 일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2016년쯤 (사)한국국악협회 성동구지부에 초정되어 공연을 하러 갔었습니다. 하루의 공연이지만 반응이 대단했었지요. 호응도 대단했고 관심도 대단했었어요. 그 후 인연이 되어 자주 행사를 하러 갔었는데, 그 중 성동구지부장인 강승의 지부장님이 많이 챙겨주셨습니다. 여러 강의나 크고 작은 행사를 함께하면서 벌써 5년이 넘었네요.(웃음) 성동문화재단이나 성동문화원, 성동구청 등 기관이 주관하는 행사들을 많이 다니다 보니 성동구민동호인을 많이 마주치기도 했죠. 국악을 사랑하고 예술가를 존중하는 마음이 그 어느 곳보다 높았습니다. 저는 열심히 갈고닦은 예술을 들려드리고 동호인들께서는 많이 찾아와 주시고 배우러들 많이 와주시고 서로 상호 간에 마음이 잘 맞아요.(웃음) 꾸준하게 활동하고 좋아해 주시는 것 보니 아마도 5년뒤 10년 뒤에도 같이 지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소리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전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었습니다. 어디서 나온 곡인지는 몰라도, 텔레비전에서 혹은 라디오에서 몇 번 들어본 노래는 줄곧 따라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을까, 교내 동요 부르기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입상을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그런 저를 서울시 주최 대회에 보내셨고, 그 곳에서 우연인지 아닌지 입상을 하게 된 것이 본격적 계기가 되었지요. 그 즈음,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부터 박계향, 박송희 명창께 취미삼아 소리를 배우고 계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취미로 배우는 판소리의 매력을 너무도 느끼셨던 것인지, 내 자식 중 누군가는 판소리를 업(業)으로 삼고, 명창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노래 부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이 녀석이 판소리의 매력을 알까 하는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8년 전, 제 기억에는 날이 아주 좋았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한 손에는 옷가방을, 다른 손으로는 제 손을 잡고 잠원역 어딘가로 향했었습니다.

제 손을 잡고 걸어간 잠원역 어딘가가 바로 古.성창순 국창의 집이었으며, 저의 소리의 기준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선생님을 만난 것. 그것이 바로 제 소리의 시작입니다.

- 득음을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

득음(得音). 소리를 얻는다는 이 표현은 사실, 이제 겨우 이립(而立)을 한 경험도, 세월도, 소리도 부족한 31살 소리꾼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얘기입니다.

과거에, 연세가 많으신 명창 선생님들과 공연을 하면, 선생님들께서 우스갯소리로 “80살이 넘으니 드디어 판소리가 무엇인지 대강은 알겄구나”라고 하셨지요.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셨던 경지, 즉, 제가 명창님들의 소리에서 듣는 것만으로 느꼈던 그 짜릿짜릿한 득음의 경지는 저에게는 죽을 때 까지 나아가야 하는 목표이자, 제가 소리를 하는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현재도 오늘의 제가 가진 소리보다 더 나은 소리를 만들고자 저만의 독공(獨工)을 계속 진행중인 셈입니다.

운이 좋아서, 20대에 세 분의 선생님을 모시고 판소리 5바탕을 모두 사사할 수 있었고 어린마음에 단순히 전 5바탕을 다 배웠다 생각 했기 때문에 20대 중반에 들어서며 판소리 완창을 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 20대 중반에 너무나도 단순하고 어줍잖게 시작했던 완창이 제 소리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3~5시간이나 소요되는 판소리 완창은 연희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퍼포먼스입니다.

완창을 준비하면서, 하루에 8시간 이상 소리를 연습하고, 소리의 철학적 요소와 음악적인 요소를 머리와 마음으로 이해하고자 더 많이 공부하고 몸으로 풀어내고자 더 다양한 노력을 겸했음에도, 무언가 아쉬움이 남더랬지요.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렇게 아쉽다고? 자문도 하고, 폭포를 찾아가 목이 찢어질 정도로 폭포를 뚫고자 소리를 연습했습니다. 판소리에 대한 노력. 그리고 분석하는 방법. 그 순간에 정립된 모든 것들이 결국 저를 득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첫 발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 아직 저는 득음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똑, 똑하고 한방울 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결국 돌을 뚫듯이, 한 단계 한 단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노력들이 인생의 경험과 조화를 이룬다면, 아마 명창 선생님들의 연세쯤이 된다면, 선생님들처럼 언젠가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보는거죠.(웃음)

- 성동구 주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판소리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판소리의 매력이요? 음..어렵습니다. 물론 재미도 없지요.(웃음)

전공을 한 사람으로써 정확하게 저도 어렵고 재미없어요. 심지어 사설까지도 오래된 소설이라 어려운 말이 많지요. 주변에 전통예술을 전공하는 많은 사람들이 저와 똑같이 이야기 할거에요. 사실, 전통을 전공하고 고수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전통 고유의 멋을 지키며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요. 그러한 측면에서 판소리의 매력을 우선 창작국악에서 느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익숙한 단어를 사용한 가사들과 받아들이기 편하고 대중음악의 리듬감을 지니면서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곡을 만들어내는 모습, 그리고 이날치, 씽씽의 등장이 국악이 발전해 나가야 하는 하나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직은 예술인들 중에서도 창작국악에 대해 정통성을 의심하고 국악적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분들 역시 많지만, 개인적으로 창작국악 역시 국악의 갈래라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 판소리를 모르는 누군가가 국악에 대해 궁금해 할 때면, 저 역시도 창작국악공연을 추천합니다. 매력적인 창작공연을 보고 창작이 좋은 사람들은 창작국악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어느 순간 그 창작국악의 모티브가 되는 원곡이 궁금하다면, 전통음악을 찾아 들으면 되지요.

둘째로, 판소리는 1인多역의 소리극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능력이 탁월한 한국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도 알려져 있듯. 소리는 한의 정서가 담긴 우리 선조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죠.

지인의 초대로 외국 오페라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자막이 있었다하더라도 관객들은 자막보다 배우의 표정, 대사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음악적 선율로 울고 웃더라구요.

우리 판소리라고 다를까요? 오히려 더 풍부한 감정을 표현합니다.

때때로는 날 것 그대로의 단어와 묘사들로, 시시각각 변하는 장단으로 보는 이들의 호흡마저 건들지요.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뿐, 경험해본다면 오페라 못지 않은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자부합니다. 주민분들께서 경험해볼 수 있는 훌륭한 한국의 오페라를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싶네요.(웃음)

- 앞으로의 작품 계획과 포부는 무엇이신지요.

작년 3월, 국악인 여럿과 기획자 등 젊은 청년들이 모여 ‘국악의 봄’이라는 단체를 창업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전문국악예술가들과 경영/기획전문가, 하드웨어 전문가까지 각자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더욱 효율적인 퍼포먼스를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저희 국악의 봄은 ‘국악의 봄과 국악을 보다’라 모토로 국악계의 봄바람이 되기를 소망하고,

전문적인 공연기획과 아티스트의 체계적 관리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부분의 국악시장 속에서 ‘다양하고 젊은 국악’을 ‘차세대 선진 국악’화 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동구 주민분들,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국악을 만들어 시간과 장소에 관게없이 어디서나 듣고 볼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국악을 전통문화로 보존해야 되는 문화재가 아니라, 오페라, 뮤지컬에 비추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서울 어디서나 국악인 버스킹으로 분위기가 흥겨워지는 그런 음악이 될 때까지 계속적으로 노력하고 연구할 예정입니다.

명창이라고 부르자, 한없이 작아진다며 손사래를 치던 그였지만 마음 안에 포부는 원대했다. 담담히 말했지만 그 말안에 성동구 주민분들,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 국악을 대중화시키고 싶었던 그의 포부는 뜨거웠다. 성동구 안에 그와 같은 예인이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대담 정소원 취재부장 smartsowon@naver.com
기사 임태경 기자 practice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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