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제방은 언제 쌓았고 왜 벚꽃을 심었을까
송정제방은 언제 쌓았고 왜 벚꽃을 심었을까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1.04.08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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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itta@naver.com)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21) 송정제방 벚꽃
벚꽃이 만개한 송정제방. Ⓒ 서성원
벚꽃이 만개한 송정제방. Ⓒ 서성원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송정동

서울기상관측소 발표로는 서울의 벚꽃 개화일은 3월 24일이다. 1922년 이후로 가장 빠른 개화라고 한다. 내가 송정제방 벚꽃을 보려고 다니기 시작한 날은 2021년 3월 29일부터다. 그날은 11년 만에 황사경보였다. 이처럼 기후가 바뀌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세월과 함께한 사람들의 궤적으로 남은 송정제방 그리고 벚꽃. 꽃은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 송정제방과 벚나무는 어떤 세월을 거쳐서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을까. 성동교에 군자교 사이의 송정제방은 3.2km나 된다.

◆ 송정제방, 동네 주민의 기억

송정제방 벚꽃은 화려하다. 동부간선도로를 지나칠 때 차 안에서 바라보는 벚꽃을 보면 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제방 근처에 사는 분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그렇게 송정제방을 스쳐 갔었을 사람들에게 활짝 핀 벚꽃 풍경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것이었다. 그런데 몇 번에 걸쳐 벚꽃을 취재하면서 궁금했다. 제방은 언제쯤 쌓았을까. 왜 벚나무를 심었을까.

4월 5일 송정주민센터 앞에서 80대로 보이는 어르신을 만났다. 군자에서 태어났지만 송정동에 거주한다. 그분은 을지6가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서 다녔다. 기동차가 너무 복잡해서. 증언을 종합하면 이렇다.

제방은 40년쯤 되었다. 제방에 산책로를 만들면서 나무를 심었다. 뚝방 근처 마을은 ‘새말’이었다. 지금의 송정마을이다. 지금 송정동사무소 근처에 언덕이 있고 밭이 있었다. 근처에 축구장이 있어서 추석에 시합을 했다. 뚝방 수문 근처에 수신(水神)비가 있었다.

주민센터에서 강사를 하는 분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70년대에는 이 동네로 시집왔는데 뚝방이 덜 된 곳이 있었다.

송정제방은 언제 쌓았고 왜 벚나무를 심었을까

조선 시대에는 도성 안의 개천(청계천)은 준천(濬川)한 기록이 남아있다. 중랑천까지 관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랑천은 자주 범람했다. 일제 강점기 1917년에 개수 공사를 했다. 1924~31년 사이에도 했다. 1955년에 제방을 쌓기 시작했다. 1965년에 중랑천 개수공사를 했다. 1975년에 제방공사를 진행했다. 1980년에 중랑천 제방에 조깅 코스를 만들었다. 83년무렵 중랑천변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제방은 80년 전후로 완성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방에 어떻게 해서 벚나무를 많이 심게 되었을까. 장안동 제방에도 수령이 오래된 벚나무가 있다. 아마 비슷한 시기에 송정제방에도 심었을 것이다. 수많은 나무 중에 벚나무를 선택한 까닭은 알아내지 못했다. 봄에 화려한 꽃을 볼 수 있다는 매력에 이끌려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선택했을까. 80년부터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면서 벚나무를 여의도에 옮겨 심었다. 혹시 송정제방에도 그 벚나무가 왔을까.

일제 강점기 창경궁(창경원)의 모습, 벚꽃 천지다. <br>(출처 <a data-cke-saved-href=https://blog.naver.com/thefotos/2212533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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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경궁(창경원)의 모습, 벚꽃 천지다.
(출처 https://blog.naver.com/thefotos/221253340929)
1975년 5월, 중랑천 제방 공사.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br>
1975년 5월, 중랑천 제방 공사.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21년 4월 6일, 창경궁 춘당지에서 왕벚나무를 보았다. 일본 왕벚나무와 달랐다. Ⓒ 서성원<br>
21년 4월 6일, 창경궁 춘당지에서 왕벚나무를 보았다. 일본 왕벚나무와 달랐다. Ⓒ 서성원

 

◆ 벚꽃을 보고 사쿠라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어야

겨울이 끝날 무렵, 한꺼번에 폭발하는 벚꽃은 화려하고 화끈하다. 벚꽃놀이는 우리 생활 깊이 들어와 있다.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 하겠다. 벚꽃놀이(축제)는 일본인이 가져온 풍속이다.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면서 벚나무를 심었고 벚꽃놀이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니까 괜찮다고 여기면서 벚꽃에 대한 거부감을 무마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왕벚으로 알고 있는 벚나무는 사실은 일본 벚꽃이라고 한다.

벚꽃은 일본을 상징한다. 외국인들도 벚꽃을 보면 일본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벚꽃을 보면서 일본을 떠올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벚꽃에 얽힌 역사를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의 아픈 기억만 곱씹으면서 살 필요는 없다. 봄이면 한반도 곳곳에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우리는 꽃놀이를 즐긴다. 꽃잎이 눈처럼 후르르 떨어지면 또 봄날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한번 흘러간 물은 되돌아오지 않지만 역사의 강은 비슷한 일이 반복되기도 하니까.

◆ 송정제방에서 데이트하던 친구의 인생 역전 드라마

그는 성수동 자동차공장 수리공이었다. 숙소는 송정동에 있었다.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제방에서 여자친구와 만났다. 주머니 사정이 그랬다. 그렇게 제방에서 만나면서 세월이 갔다. 뚝방 주변이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도로가 생겨나고 자동차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저 차들, 누군가는 팔았겠지?”

“당연하지. 그게 왜?”

“차 만드는 사람이 젤 먼저 돈을 만졌겠지. 넌 순서로 볼 때 마지막이야. 당겨야 해.”

여자친구의 얘기가 그럴듯했다. 그렇다고 자동차 제조공장이 있는 곳을 다니려면 너무 멀었다. 그는 자동차 판매 대리점으로 직장을 옮겼다. 노력했다. 다행히 마이카시대가 왔다. 사람들이 차를 가지려 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팔았다. 성과가 뛰어나서 그는 본사로 불려갔다. 거기서 부장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계열회사로 나가서 임원을 맡았고 그쪽 대표이사까지 맡았다. 그는 지금 일산에 거주하는데 송정제방을 찾곤 한다. 그에게 송정제방은 축복의 땅이었다. 제방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기도 한다.

송정제방 벚꽃. Ⓒ서성원
송정제방 벚꽃. Ⓒ서성원
송정제방 벚꽃. Ⓒ서성원
송정제방 벚꽃. Ⓒ서성원
송정제방 벚꽃. Ⓒ서성원
송정제방 벚꽃. Ⓒ서성원
송정제방에서 벚꽃축제는 없었지만 동네 분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 서성원
성동구 꽃축제가 코로나19로 취소했다. Ⓒ 서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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