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명분
[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명분
  • 성광일보
  • 승인 2021.04.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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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기/시인, 칼럼니스트
김삼기
김삼기

철수네 가족이 이사하던 날, 철수 아버지는 이웃집 아저씨와 주차장 사용문제로 몸싸움을 하다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회사에서 퇴근한 철수는 이웃집 아저씨를 찾아가 "왜 우리 아버지에게 폭력을 가했냐?"며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며 치료비를 내놓고 사과도 하라고 따졌다. 
다음날 이웃집 아저씨는 철수 아버지를 찾아가 치료비를 주면서 용서를 빌었고, 철수 아버지도 흔쾌히 받아들여 서로가 화해를 했다.

그런데 철수가 아버지와 화해를 한 이웃집 아저씨를 계속 미워하고 마주칠 때 인사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철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싸움이나 다툼에서 이기는 사람은 싸우거나 다툴만한 충분한 명분이 있는 사람이다.
명분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힘이 있거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어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명분은 어떤 일에서 누가 보아도 떳떳할 만큼 내세울 수 있는 당당한 도리를 말한다.

철수가 이웃집 아저씨와의 관계에서 아버지에게 폭력을 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들 자격으로 따지고 치료비와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치료비와 사과 문제가 끝난 상황에서는 철수가 이웃집 아저씨를 미워해야 할 근본적인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당사자인 철수 아버지가 이웃집 아저씨와 모든 상황을 끝냈는데도, 철수가 이웃집 아저씨를 미워하는 행위는 올바르지 않다는 말이다. 
여기서 철수가 부모 편을 들면서 화해 후에도 이웃집 아저씨를 계속 미워하는 자신의 행위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걸로 착각하면 안 된다.
철수 아버지가 화해 후에도 이웃집 아저씨를 미워하고 있다면 몰라도, 이미 용서했다면 철수도 같이 용사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일 것이다.
우리는 명분 있는 싸움을 하다가도 명분이 약해지거나 없어지면 빨리 빠져나올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명분과 실리를 다 챙겼다느니, 명분을 챙기려다 실리를 잃었다느니, 실리를 챙기려다 명분을 잃었다느니, 이런 식의 편법과 꼼수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불편한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실리에 연연하지 않고 명분의 유무를 중요시 할 때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금 번 서울시장 범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경선을 앞두고 긴박한 상황에서 국민의 힘 오세훈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사울시 공동운영 및 합당 약속을 했다.
그리고 경선에서 오세훈 후보가 승리하자, 안철수 후보는 최선을 다해 오세훈 후보를 도왔고, 그 결과 오세훈 후보가 지난 4월 7일 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여기서 두 후보가 약속한 서울시 공동운영 및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 문제는 오로지 본선에서 승리해야겠다는 명분과 함께 경선에서 진 후보에게 배려 차원의 위로가 되는 명분과 경선에서 진 후보가 이긴 후보를 본선에서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이 숨어 있다는 점을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한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공동운영과 합당 문제를 긴박한 상황에서 급하게 약속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명분은 이미 불편한 명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 공동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단순히 국민의힘과 합당하는 것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안철수 대표가 명분이 약해졌거나 없어졌는데도 실리를 챙기기 위한 모습으로 비춰지면, 우리 국민이 안철수 대표를 우스꽝스러운 정치인으로 평가절하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최근 안철수 대표의 행보를 보니, 서울시장 경선 때의 불편한 명분에 연연하지 않고, 범야권이 모두 합쳐야 정권교페가 가능하다면서 내년 대선에서의 역할이라는 새로운 명분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당뿐만 아니라 사회단체도 실리를 챙기기 위해 명분도 없는 투쟁을 계속 이어간다면 우리 사회와 국민은 반드시 외면하고 말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분쟁과 다툼 속에 당사자들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 있는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단상]
혹시 이미 없어진 명분을 가지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래서 스스로 상처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는 오늘 하루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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