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어떤 제사를 지내고 있을까
대한민국은 어떤 제사를 지내고 있을까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1.04.24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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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22) 마조단터

말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던 마조단(馬祖壇)과 말을 사육하던 살곶이목장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어서 말이 안 나와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 한양대 서울캠퍼스 백남학술정보관 앞

21년 4월 9일 발표한 KF-21 보라매 전투기 (출처 한국항공우주산업)
21년 4월 9일 발표한 KF-21 보라매 전투기 (출처 한국항공우주산업)

◆ 쉽게 찾을 수 없었던 마조단(馬祖壇)터 표석

마조단터 표석 Ⓒ서성원
마조단터 표석 Ⓒ서성원

2020년 여름이었다. 마조단터를 확인하고 싶어서 한양대학교를 찾아갔다. 하지만 표석을 찾을 수 없었다. 휴대폰으로 검색한 뒤 겨우 찾아냈다. 대학 건물은 덩치가 크다. 그런데 마제단터 표지석은 작았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았다. 백남학술정보관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 갔지만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영화 <코코>에서 이런 말이 있었지 싶다. 죽음의 세상으로 갔더라도 누군가 그를 기억해준다면 죽은 것이 아니라고. 표석은 그 장소의 의미를 기억해 달라는 표식이다. 사람들이 봐주지 않는다면 마조단은 낡은 역사책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어질 때 그 쓰임새가 없어졌다. 그런 변화 속에서 마조단은 과거를 잊지 않으려고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거라면 다행이겠다.

마조단터는 행당산(산 이름이 맞을까) 꼭대기에 있었다.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 『목장지도』 1678년, 허목 편저. (출처 위키백과, 국립중앙도서관)

◆ 마조단(馬祖壇)은 어떤 모습일까

눈 내린 날, 지인이 한양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놓고 ‘철옹성’이라고 했었다. 고개가 끄떡여졌다. 실제로 행당산은 한양대 건물들로 빼곡하다. 평지에서 바라보면 유럽의 거대한 성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에 행당산에 꼭대기에 오르면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남동으로는 뚝섬(성수동)의 초원이 펼쳐지고 그 너머 한강까지 시원하게 보였을 것이다. 동으로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은 살곶이목장이었다. 지금의 광진구까지다. 그 너머에 아차산이 있었다. 행당산 꼭대기에서 과거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건물에 가려서 조망이 쉽지 않지만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내가 힘들어도 ‘성동 이야기’를 이어가는 까닭이기도 하다.

나는 마조단(馬祖壇)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그림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아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동대문외마장원전도(東大門外馬場院全圖)’를 어렵게 찾아냈다. 그 그림에서 마조단을 볼 수 있었다. 마조단은 작게 그려져서 자세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정말 반가웠다. 그리고 최열의 『옛 그림으로 본 서울』에서도 같은 그림을 찾았다. 책에 실린 그림이어서 마조단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설명까지 짧아서 아쉬웠다.

마조단터 주변, 한양대 백남학술정보도서관 앞에 있다. Ⓒ서성원
마조단터 주변, 한양대 백남학술정보도서관 앞에 있다. Ⓒ서성원

◆ 왜 국가에서 마조제(馬祖祭)를 챙겼을까

마조단(馬祖壇)은 마조제(馬祖祭)를 지내던 장소다.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마조제(馬祖祭)는 말의 질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말의 조상인 천사성(天駟星)에 지내는 국가 의례였다.

말의 수호신이자 조상신은 천사성(天駟星) 혹은 마조성(馬祖星)이다. 마조제는 고려 시대에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조선에 들어서는 국가 제례 체계에 소사(小祀)로 편입·분류되어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말을 다스리는 마조(馬祖), 말 기르는 일을 관장하는 신 선목(先牧), 말을 처음 탄 사람이자 말의 수호신 마사(馬社), 말에게 재앙과 질병을 내리는 신령 마보(馬步)가 제사의 대상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제사를 지내지 못하다가 그 이후에 이어졌다. 1908년(융희 3) 7월에 칙령에 의하여 산천(山川), 선잠(先蠶), 선농(先農) 등의 제례를 폐지하면서 제단들은 훼손되기 시작했다. 마제단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마제단의 크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고려시대에도 어딘가에 마제단이 있었다. 『고려사(高麗史)』「예지(禮志)」에 따르면 넓이가 9보(步), 높이가 3척(尺)으로 사면에 계단(四出陛)이 있었으며, 낮은 담인 유(壝)는 25보였다. 제사의 폐백을 태우는 요단(燎壇)이 별도로 있었다고 한다. 조선 1412년(태종 13)에 제단의 규모는 고려 시대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기록했다. 태종 때 사방이 2장 1척, 높이가 2척 5촌, 1유의 형태로 축소했다. (사방이 약 6.6m, 높이는 약 0.7m, 1유는 담장이 하나라는 것) 축소한 이유는 중국 때문이었다. 제후국의 규모에 맞추라고 압력을 받은 것이다.

마조단에 대한 기록은 성종 때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남아 있다.

왜 국가에서 말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을까. 소의 조상이나 돼지의 조상에게는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서 …….

근대의 교통수단이 나타나기 전까지 말은 군사용이면서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래서 국가에서 마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말은 전략 자산이어서 국가 정책으로 관리했었다.

마제단이 행당산에 세워진 것은 조선의 국립목장이 그곳에 있었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 살곶이목장(箭串牧場)의 한 모습

마제단의 모습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는 『목장지도(牧場地圖)』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1678년(숙종 4) 국가의 마정(馬政) 수립에 활용하기 위해 전국의 목장 실태를 한 권에 수록한 지도첩이다. 전국의 목장 통계와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것은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다. ‘살곶이목장’을 그린 지도다. 한자로는 ‘전관목장(箭串牧場)’이다. 그런데 왜 저런 제목을 붙였을까.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뜻인가. 진헌마(進獻馬)는 진상하는 말이다. 정색도(正色圖)는 실물과 같게 그렸다는 뜻. 조선의 왕에게 진상하는 말목장을 실물처럼 그렸다는 지도가 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진헌마(進獻馬)는 명나라 황제에게 바치는 말을 의미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이렇게 돼 있었다. ‘중국의 황제에게 바치던 말’.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살곶이목장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명은 조선에 왜 말을 바치라고 요구했을까. 명은 말이 필요도 했고, 조선을 견제하려고 그런 요구를 했던 것이다. 조선이 군마를 넉넉하게 갖지 못하도록 말이다.

여기서 조공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제후국이 황제국에 일정한 때에 예물을 바치는 것이 조공이다. 무역의 일종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부족한 것을 바치라고 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조선은 여진에서 말을 사들여 명으로 보내기도 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았으니 중계무역을 한 조선은 나라 곳간을 채워서 다행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진헌마에 대한 기록을 보았다. 또 할당된 처녀를 바치기 위해 벌어졌던 일들은 어떠했던가. 눈물겨운 역사다.

‘조선은 전국에 159개의 국영 목장을 설치해 최대 4만 마리의 말을 길렀다. 사육사와 수의사, 목동도 양성했다. 늘 군마의 조달이 문제였다. 말은 크게 전투용 말과 수송용 말로 구분되는데, 전투용 군마 한 필 값이 쌀 30가마가 넘었다. 남자 노비 6~7명 값이고, 자영농의 1.5~2년 치 생산량에 맞먹었다. 국영 목장 제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난을 거치면서 제주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쇠퇴했다. 조선 말기엔 5천 마리 정도 남았다.’ (노주석의 서울푯돌 순례기)

선농단 전경이다. 마조단도 이와 비슷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대한민국은 어떤 전략 자산을 만들기 위해 어떤 제사를 올리고 있는가

한양대 상징동물은 사자다. 살곶이목장 안으로 사자가 들어온 셈이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말들은 어떻게 될까. 마제단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꽃이 피는 아름다운 사월인데 나는 쓸데없는 망상을 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그래도 이게 현실이라면 어떡해요? 살곶이목장의 말들은 어떻게 되냐구요? 어쩌긴요, 눈물을 머금고 살길을 찾아야지요. 힘 있는 나라들이 손 내밀어 도와줄 거라고?

며칠 전에 최초의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 시제 1호기 출고식을 공개했다. 보라매가 하늘을 나는 그날이 오면 비로소 우리 하늘을 우리 손으로 만든 전투기로 지키게 되겠지. 유튜브에서 국산 전투기 생산에 얽힌 뒷이야기를 보았다. 록히드 마틴사의 갑질로 우리나라는 꽤 속앓이했고 뭉텅이 예산을 들여야 했었다고 한다. 독수리는 전략물자로 삐약이들을 견제해 왔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반도가 자기 나라의 역사라고 말하는 중국, 여전히 진헌마를 바치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마제단터, ‘진헌마정색도’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안예은의 ‘봄이 온다면’이나 들어볼까나.

그림 속의 마조단 모습. ‘동대문외마장원전도(東大門外馬場院全圖)’ 18세기 작가 미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동대문외마장원전도(東大門外馬場院全圖)’ 중에 마조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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