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또순이 아리랑(5)
<소설> 또순이 아리랑(5)
  • 이기성 기자
  • 승인 2021.04.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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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기라성
기라성

잠시 침묵이 있은 뒤 김사장의 목소리가 전화기에 흐른다.
“또사장! 솔직히 유쾌하진 않은데. 우리 물건 대는데 지장 안 주면 내가 관여는 안 하겠네. 알아서 하셔!”

왠지 뒤 느낌에 여운이 남는다. 일단 가져온 원단으로 샘플을 만든 미영은 광성헤어마트에 다시 들렸다.
“아니! 벌써 만들어 왔어요?”

꼼꼼히 훑어보던 사장이 
“잘 되었네요. 바느질도 꼼꼼하고 주름도 없이 아이롱이나 실밥 처리도 깔끔하네요. 좋습니다.”
“사장님 샘플은 만들었지만 사장님네 일은 못할 거 같아요!”
“아니 왜요?”
“제가 제일헤어마켓 일 고정으로 하는데 여기랑 경쟁사라 들었어요. 제일 사장님한테 도의상 아닌 거 같아요. 다른 데 한번 찾아보세요.”
“허허… 지금도 김미영 사장 같은 사람이 있어요? 제일에서 뭐라 합디까?”
“그건 아닙니다. 제일물건 지장 안 주면 상관없다 했는데 제가 불편해서요. 죄송합니다.”
공장에 돌아온 미영은 제일 김사장한테 광성일은 안 하고 제일헤어마켓 일만 하기로 했다고 카카오톡을 보내자 바로 전화가 온다.
“또 사장 고마워! 담달부터 공임도 좀 올려주려 하고 있었어!”
“오라이!”

 미영이 55번 버스에서 내려 교문리 돌다리 가는 160번 버스에 오르자 차장의 출발 신호와 함께 버스가 출발했다. 진학은 말도 못 꺼내고 중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제기동 영패션에 시다로 취직한 미영은 자꾸 감기려는 눈꺼풀에 잠이 들까봐 이를 악물었다. 먼저는 버스에서 잠이 들어 교문리 돌다리를 지나 덕소 원진레이온까지 가는 바람에 1시간을 걸어온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망우리 고개를 넘으며 딸기원까지는 악착같이 버텼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연두색 원진레이온 굴뚝이 보여 “아저씨 내려 주세요.” 하며 후다닥 내려 파김치가 되어 되돌아왔다. 그 후 아무리 졸려도 안 자려고 좌석에는 앉지 않고 서서오는 습관이 생겼다. 16 살의 나이로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며 봉제공장 시다로 일한다는 게 미영한테는 중노동이었다.

전태일이라는 재단사 오빠가 열악하고 불법적인 봉제 공장의 노동에 항거해 분신자살한 후 일하는 시간과 보수도 좀 나아졌다지만, 어린 나이의 미영은 월요일 출근해서 수요일쯤 되면 체력이 바닥나는 것이었다. 미싱사 언니들도 조금만 일이 밀리면 구박이 심해 화장실에서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고 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나 하고 부모 원망도 참 많이 했다. 월급 40 만원을 타다가 새엄마에게 갖다 주면 차비 포함 한 달 용돈 2 만원을 주는데 1달치 버스 회수권을 사고 나면 출출할 때 군것질할 용돈도 없다. 졸음을 참으며 돌다리에 내리니 바로 길 옆이 집이라 금방 방에 들어선다.
“다녀왔습니다!”

안방 윗목에 식은 밥상이 차려 있다. 상보를 걷고 찬밥이지만 허기진 뱃속에 허겁지겁 퍼 넣는다. 배춧국과 장아찌, 김치, 고추장에 마른 멸치 찍어 먹는 게 전부지만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생각한다. 늦은 저녁을 먹고 마당 수돗가에 나와 세수를 하면서 빨래 대야를 보니 빨랫감이 가득하다. 내일은 일요일이라 미영이가 빨래하는 날인데, 새엄마는 자기가 데려온 배다른 동생 선재는 손에 물도 못 묻히게 하고, 공장 일에 지쳐 있는 미영이만 부려 먹는데 아버지 때문에 찍소리 못하고 빨래를 해야 한다.
“미영아! 빨리 일어나 빨래하러 가! 이 년이 지금 몇 신데 아직도 자빠져 자 해가 똥구녘으로 쳐들고 오는 거 안 보여?”

지쳐 죽은 듯이 잠자는 미영을 일요일 아침부터 깨우는 바람에 안 일어날 수가 없다. 일요일은 잠 좀 늘어지게 푹 자는 게 소원인데 새벽부터 닦달하는 새엄마 때문에 빨래터에 가서 좀 쉴 생각이다. 이웃 새댁과 길 건너 수경 언니랑 빨래 대야를 이고 동구능 옆 빨래터에 도착하니 동구릉 옆 개울은 숲이 우거지고 인적도 뜸해서 무섭고 봄, 가을에는 추울 때도 있다. 지난겨울엔 고무장갑도 없이 얼음물에 빨래를 하다가 동상에 걸렸는데 지금은 가을이라 동상에 걸릴 일은 없다.

[동구능은 태조의 건원능 부터 경능(제 24 대 헌종,비 효현황후 홍씨)까지 9능 17 위의 왕과 왕후능이 안장되어 있다.
동구능이라 명명된 것은 철종 6년(1855) 8월 26 일에 수능(추존 문조, 순조의 장남)을 9번째로 모신 이후다].

빨래해서 짜 놓고 동구릉 입구 팻말을 읽어 보았지만 어려워 잘 모르겠다. 집에 가느니 여기서 좀 쉬었다 갈 생각이었다.  
새엄마는 상계동 박수무당집에 자주 가는데 오늘은 새엄마가 집에 있어서 일찍 가기가 싫은 것이다. 새엄마가 차라리 무당네서 살았으면 좋겠지만 어린 미영이 마음 한구석에 접어놓은 바람에 불과하다. 미영이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버지랑 왜 헤어졌는지 어디 사는지도. 한 번은 중랑천변 어디쯤에서 이모라는 아줌마가 손에 돈을 쥐어 주는 걸 안 받는다고 내던지며 울었던 어릴 때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중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 봉제 공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는 미영은 납품준비가 다 되자 공장을 나선다. 제일의 김 사장이 공임도 5%나 올려준 후 다리미질을 할 때 스팀 보일러 물에 박하 향료를 사용했더니 다림질 후 가운에서 향기가 나서 김 사장이 무척 좋아한다. 납품을 끝내고 돌아오며 열심히 벌어서 우리 애들만큼은 공부시켜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
“또 사장!”

집주인 남열 엄마가 급히 찾는다.
“큰일 났어! 우리 집 양반, 형사들이 끌고 갔는데 어떡해? 어디 다 알아봐야 할지 모르겠어! 나랑 경찰서 같이 좀 가자. 아는 형사도 있잖아!”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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