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그리고 '나'로부터의 사색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그리고 '나'로부터의 사색
  • 임태경 기자
  • 승인 2021.05.10 2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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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경/취재부 기자
임태경

20년 동안 하루같이 쇠창살이 달린 좁은 창문이 있는 방에 감시를 받으며 갇혀 살아야 한다면? 솔직한 심정으로 끔찍하다. 상상하기도 싫을뿐더러 직접 경험한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중에 신영복 선생님의 과거를 알고는 더, 많이 놀랐다. 감옥에서 무려 그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셨던 '신영복'선생님의 글은 도저히 교도소 사람이 쓴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이면 충분히 고통이나 증오와 같은 어두움을 마음에 키우셨을 수도 있는데 글에서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담백하니 진솔하게 자신의 심정을 풀어나가실 뿐이었다.

무기징역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분은 항상 긍정적으로, 옹골진 대나무처럼 자신의 지성을 다지는 모습을 잃지 않는다. 20년이라는 세월은 내가 태어나 여태껏 살아온 세월보다도 더 긴 세월인데도, 그 긴 세월을 교도소 안에서 보내셨는데도 어두운 암흑, 격정 같은 감정은 전혀 배어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는 무기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담담한 마음자세와 몸가짐에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났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은 소박한 일상에서 느끼는 깨달음이나 날씨의 변화에 따른 가족들의 염려에 답하는 내용이다. 작은 풀씨 하나가 옥창틀 위에 키워 올리는 생명에 대한 의지,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나무 끝에 앉은 새 한 마리에게 보내는 애정, 그리고 중간 중간에 사회 현실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얼마나 날카롭게 정곡을 찔렀던지 가슴 서늘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구절 구절 하나하나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을 만큼 우리가 삶에서 느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혹은 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어렵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말로 너무도 잘 표현해주심에 큰 감명을 받았다. 봐도 봐도 지루함이 없고 볼 때마다 똑같은 감동이 물밀 듯 밀려왔다. 단순한 눈물의 감동뿐 아니라 앎의 감동이랄까? 때론 다 표현되어있지 않지만 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신영복 선생님의 고충에 목이 살짝 메이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심에 그 구절 하나를 두고 몇십분동안 고민하기도 하고.. 정말 수첩에 적어두고 하나하나 외우고 싶을 정도로 하나같이 꼭 기억해야 할 명언들이었다. 

그분의 편지 속에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자주 언급된, 편지에 그려진 그분과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거인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감 새오할 중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부인과 그 때문에 고아원으로, 길거리로 떠돌아다니는 아이를 둔 사람, 평생 호강 한번 못해보고 자식 옥바라지 하는 늙은 부모, 지긋지긋한 감옥에서 나갔지만 재범 삼범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 이는 더 불행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이는 교도소가 사회적응을 도와주는 곳이 못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교도소는 그 보다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단순한 처벌과 격리 장소에 불과한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개화한다는 명목으로 들어왔지만 설령 다시 사회에 나갈 수 있다 할지라도 교도소의 '낙인' 이 벽을 만들어 사회적응을 막게 된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일생에 그와 같은 청색 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삭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과 거리를 두고 색안경을 끼게 되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구절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같은 수의를 입고 있는 우리들끼리도 처음 대할 때는 영락없는 '범죄꾼'의 첫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취업장이나 같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안 그 사람의 처지와 사정을 이해하고 나면 그에게서 느끼던 첫인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던가를 뉘우치게 됩니다. 청의 삭발이 얼마나 험한 인상을 만들어내는가를 절감케 합니다. 이러한 의상과 사람의 괴리를 수없이 경험하면서도 우리들 자신이 아직도 의상의 허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단느 점만 보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강고한 철갑 외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정말 본성이 사악해서 일생을 사회에서 격리당하고 감시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위 구절은 그런 사람들을 '의상의 허구'로 잘못 판단하는 것이라고 신영복 선생님이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번의 실수로,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회적인 원인이나 환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개화'되어 다시 사회에 나가 새사람으로 살고 싶어도 자신에게 씌워버린 '의상의 허구'를 벗을 수 없는 탓에 안타깝게 여생을 살아야 하는 현실을 꼬집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도,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많은 순간 법을 무시하고 싶고 죄를 짓기도 한다.

때로 육교를 건너기 귀찮아 무단횡단을 하기도 하고,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더 많이 건네주는 거스름돈을 모른 척 주머니에 찔러 넣기도 한다. 수억 수십억씩 부정한 돈을 잘도 삼키는 뻔뻔한 사람들을 보며 놀라는 것도 식상해서, 내 양심이 너무 보드라운 걸 한탄할 때마저 있다. 이 모두가 무엇이 다르다고, 누가 누구에게 단죄의 돌을 던지겠는가-, 던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언급하건대, 본성이 사악하거나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 단죄의 돌을 던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안타깝게 낙인이 찍혀버린 사람들에게 우리가 진정 '단죄의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또 그런 여부를 세세하게 가리지 못하고 무조건 격리/처벌이라는 고전적인 방식이 아직까지 수용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청의삭발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공개적인' 죄를 저지르지 않아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남의 일인 양 관조할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 국민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같이 해결책을 의논하며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에 대해 '사색'해보았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어떤 삶을 살았나. 나는 청의 삭발도 아니었고 자유로웠지만 삶의 소중함에 대한 감사는 그 분에게도 못미쳤다. 그 분은 그 당시 그렇게 내가 끔찍이 여기던 교도소 안에 계셨었었는데도 그렇게 감사했는데 나는 감사하지 못했다. 작은 풀씨에 두드러지게 애정을 나타내본적도 없고 삶에 대해 특별한 성찰을 해본 적도 없었다.  또 교도소 사람들에 대해서도. 죄를 지었으니까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했고 이미 교도소 들어간 이상 인생이 끝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영복 선생님이 '의상의 허구'를 언급하셨을 때 그렇게 찔릴 수가 없었다. 비단 '의상' 뿐만 아니라 모든 외적 조건에 다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별볼일 없다고 쳤던 사람도 성품과 같은 내적인 면을 떠나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명성을 얻는 사람이라 해서, 돈을 잘 번다 해서, 또는 다른 조건등이 첨가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더 높게'평가한다. 사람이 사람을 외적조건으로 색안경을 끼고 판단하는 시대, 사랑에 대해 말만 무성할 뿐 실은 얕은 가식과 허울로 뒤덮여 있는 사회, 나도, 우리도 청의삭발을 안 했을 뿐 '죄인'이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말 개화를 해야 하는 건 '우리', 제일 시급한 건 '나 자신'이 아닐까, 하고. 
<practice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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