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끝은 나의 시작이라네!
너의 끝은 나의 시작이라네!
  • 성광일보
  • 승인 2021.05.17 10:4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란교/성동신문 논설위원
 송란교

장대비 내린 후 마중 나온 햇살은 반갑다. 해가 뜨면 불거져 나오는 뱃살은 얄밉다. 반가운 마음이 시작하는 곳은 어디이고 얄미운 마음이 끝나는 곳은 어디인가?

뭍 사람들은 바다에 연한 땅을 땅끝이라 말한다. 그 땅끝 너머 바다에서 사는 사람을 바닷사람이라 부른다. 바닷사람은 바닷물이 닿아 있는 끝을 뭍의 시작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사는 사람을 뭍사람이라 부른다. 바다를 연하고 있는 땅, 땅을 기대고 있는 바다, 나는 어디에 서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바다만 바라보면 뭍을 볼 수 없고, 뭍만 바라보면 바다를 볼 수 없다. 그러면서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진리라 믿고, 보이는 것만이 정답이라 확신한다. 서 있는 자리에서 뒤돌아볼 여유가 없으면 뒤에 따라오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어찌 알까? 나의 시작점과 너의 끝 지점은 같은 지점이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너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만 다르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으니 시비만 늘어난다.

파도와 싸우며 헤엄쳐 보았는가? 마주하고 덤비면 파도는 그대로인데 내가 먼저 지치고 힘들어진다. 그 녀석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저 고약한 방해물이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이라 생각한다. 파도와 등지고 헤엄을 쳐 보았는가?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헤엄쳐갈 수 있다. 그 녀석은 방해물이 아닌 나를 등 뒤에서 밀어주고 있는 조력자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는 장애물이 누구에게는 동업자가 되는 경우가 어디 파도뿐이겠는가. 바람도 마찬가지다. 바람을 맞서 나가려 하면 힘이 들지만 바람을 등지고 걸으면 발걸음이 가볍다. 맞서는 바람은 쇳덩이처럼 무겁지만 등지는 바람은 깃털처럼 가볍다. 물건을 사고팔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비싸게 팔아서 기분이 좋고 너는 싸게 사서 기분이 좋다. 나는 싸게 사서 가격이 올라 비싸다고 생각해서 팔았으니 기분이 좋은 것이고 너는 아직 싸다고 생각해서 싸게 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이런 생각은 행복충전소에서 천사를 만난 것이다. 비싸게 팔아놓고도 싸게 팔았다고 투덜거리는 사람, 싸게 사고서도 비싸게 샀다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은 불평 제조기이자 불만 판매업자인 악마를 만난 것이다.

행복을 손에 쥐고서 행복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소중한 행복이라 아끼는 사람으로 갈린다. 같은 사건을 접하면서 누구는 불행을 생각하고 누구는 행복을 꿈꾼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의 씨앗을 키우고,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의 뿌리를 내린다. 인생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어느 곳에 서 있든 앞을 보는 사람은 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뒤를 보는 사람은 뒤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다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행복인지 불행인지는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결정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면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대접을 하게 된다. 악한 사람이라 생각하면 또한 악한 대접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대접을 하면 그 사람은 좋은 대접을 받았기에 나에게 좋은 사람으로 다가오게 되고, 내가 악한 사람으로 대하였다면 그 사람도 악한 대접을 받았기에 나에게 악한 사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도 햇볕을 주는 곳으로 얼굴을 내보인다. 햇볕이 있는 방향으로 길게 자라고 쭉쭉 뻗어 나간다. 식물도 주인에게 대접받는 만큼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 준다. 좋은 대접이 좋은 사람을 부르고, 불편한 대접은 불편한 사람을 부르게 된다. 불편한 대접을 받은 사람이라면 뭐가 좋아서 내게 좋은 대접을 해 오겠는가?

하나의 사물을 놓고 위를 보고 밑을 보고 좌를 보고 우를 보면 같은 사물이지만 다르게 보인다. 누구에게는 정상으로 보이고 누구에게는 밑바닥으로 보일 것이다. 끝과 시작으로 달리 보인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음에도 다르게 보인다면 마음을 다르게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조차도 고맙다’라는 생각과 ‘이것밖에 대접을 못 받네’라는 생각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재신 2021-05-18 20:06:25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